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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Nov 12. 2016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정명훈

베토벤 6번, 브람스 4번의 올해 최고 텐트폴 공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1월 2일 (수)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명훈 Myung-Whun Chung, conductor


프로그램

베토벤, 교향곡 6번 Beethoven, Symphony No.6 in F minor 'Pastorale', Op. 68

브람스, 교향곡 4번 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출처: 크레디아 홈페이지 (http://www.crediainternational.com)

===============================================================================더없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빚어낸 궁극의 '전원', 애끊는 감정을 구비구비 펼쳐놓은 '브람스 교향곡 4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왜 이들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지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한 명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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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의 내한 공연이 줄줄이 펼쳐지는 서울의 가을은 적어도 고전 음악 애호가들에게 일년 중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다. 지난 달 밤베르크 교향악단과 헤르베르트 불룸슈타트를 필두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정명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마이클 틸슨 토마스, 파리 오케스트라와 다니엘 하딩, 그리고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마리스 얀손스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서울의 가을밤을 각양각색의 감동으로 물들일 것이다. 그 중 최고의 메이저 공연, 올해 가장 핫한 공연은 단연 비엔나 필하모닉이 차지할 테다. 대중성으로 보나, 음악성으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최고의 흥행에 부족함이 없는 요소들을 갖추었다. 


흔히들 아름다운 선율을 표현하는 단어는 '황금빛'이다. 그리고 흔히들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꼽을 때에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가 꼽힌다. 그들의 음악은 정말로 황금빛이었다.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서울을 떠난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금의환향하였다. 


빈필에게 베토벤과 브람스는 한국인 밥상의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에 대응하지 않을까? 그 어떤 음악보다 자주 연주했고, 수많은 명연 명반을 만든 곡일 것이다. 실황으로도 종종 들을 수 있어 '사골'이라고까지 불리는 베토벤 전원과 브람스 4번, 특히 정명훈의 브람스 4번은 서울시향이 최근 3년간 주요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했던 곡이다. (혹지는 브람스 4번을 '예술의 전당 BGM' 이라고도..)  나의 기대감도 말할 수 없이 컸다. 기대감은 200% 충족되었다.


황금들판의 벼가 여유로이 흔들리듯, 부드럽고 조화로운 음색으로 시작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그 툭유의 분위기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곡이다.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으로 무장하더라도  이 분위기를 빚어내기가 쉽지 않아 의외로 실황에서 호연하기 쉽지 않은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빈필에게 이 분위기는 그냥 그들이 늘상 호흡하는 공기와도 같이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로 시작하는 김영랑 시인의 싯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소리의 조탁이 뛰어났다. 호른수석의 엄청난 실수가 있었는데 평소 음이탈이라던가 실수에 굉장히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하는 유리멘탈 관객인 나로서도, 스스로가 놀라울 만큼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음악의 완성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 졸졸 흐르는 시냇물, 비 온 뒤 숲속을 메우는 싱그러운 풀내음,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겨운 일상 등은 완벽하게 묘사되었다. 베토벤은 곡에 표제를 붙이면서도 연주할 때에는 묘사적 시도를 하지 않기를 바랐었다고 하던데, 연주를 이정도까지 잘 하면 그냥 무조건 묘사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같은 곡은 몇개월 전 도쿄 필하모닉의 연주로 들었었다. 그리고 정명훈이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며칠전 헤르베르트 불륨슈타트와 밤베르크 교향악단도 전원을 연주한 바 있다. 그 모든 실황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도쿄 필하모닉은 음악 전체를 그리지는 못하였었고, 블룸슈타트의 전원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고 때로는 호락호락하며 광폭하기까지 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면, 빈 필하모닉의 전원은자연에 대한 찬양 그 자체였다. 늘 투박하다고만 생각했던 바순이 이토록 부드러울 수 있음을 깨달았고, 푸릇푸릇하고 촉촉하면서도 감미로운 오보에와 클라리넷, 플륫의 앙상블이 기가 막힐 정도였다. 같이 연주회를 보러 간 친구들과 '꿀바른 목관'이라는 단어로 소감을 교환하는데, 모두가 박수를 치며 공감하였다.


2부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은 또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전원에서보다 브랍스 4번에서 정명훈의 개성이 더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이들의 교향곡 4번은 정확히 서울시향의 4번의 상위호환, 레벨업, 너프 ..였다고 보일만큼 정명훈의 색깔이 많이 드러났다. 정명훈의 브람스 4번 해석은 '애끓는 비통함'이라고 생각되는데 흐느끼듯 시작하는 1악장부터 애수에 젖은 2악장, 사정없이 통곡하는 4악장은 말할 것도 없고, 경쾌하려면 얼마든지 경쾌할 수 있는 3악장에서조차 어딘지 모를 애처로움을 남겨놓는다. 불과 40분 전까지만 해도 경쾌하고 나긋나긋하던 현 파트는 브람스 4번에서는 처연한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였는데, 깊게 깊게 울리던 피치카토도 놀라웠고, 감정을 듬뿍 담은 비브라토도 한몫했다. 세상에 이런 주법이 있었던가, 이게 정말 가능할까 싶을 만큼 엄청난 테크닉이었고, 이 테크닉이 전체적인 음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주 맞춤하게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이번에도 곡 초반에 타악기 주자가 악기를 무대에 떨어뜨리는 엄청난 큰 소음이 발생하였다는 옥의 티가 있었지만, 템포를 다소 늦춘 파사칼리아의 그 처연한 슬픔과 콘서트홀을 휘둘러버린 애절한 감정으로 인해 미친 듯한 카타르시스를 겪어내고 나니, 심지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까먹을 정도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음악의 완성도가 엄청났다.


앵콜로는 마에스트로가 직접 소개한 '사랑이 넘쳐 흐르는' 브람스 셋째 교향곡 3악장을 연주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음악은 휴가가 끝날 때 즈음이라거나 굉장히 회사가기 싫은 상황을 표현하는(...) 곡으로 자주 써먹곤 하였는데 마에스트로는 이 곡의 어떤 점에서 '사랑'을 발견한 걸까? 혹은, 그가 생각하는 넘쳐 흐르는 사랑은 혹시 로맨틱한 사랑이 아니라, 아득한 우주를 유영하듯 음악의 바다를 헤엄치는 그런 심오한 종류의 사랑이었던 것일까?를 생각하며 잠자코 음악을 들었다. 1부에서 대형 실수를 했던 호른 주자는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연주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 솔로를 선보였다.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한참이나 지속되었고 역시나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 1번을 또다시 연주하며 연주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합창석은 정말 단 한 자리의 빈 자리도 없었고, 1층부터 3층까지 관객이 빼곡히 들어앉아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이 연주회는 흥행이었고, 그 흥행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최상급 퀄리티의 연주였다. 악장간 박수, 안다박수, 기침도 거의 없을만큼 관객들의 매너 역시 훌륭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연주를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독일계 오케스트라들이 무두질을 엄청 하여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흐르는 가죽같은 느낌을 준다면, 이분들의 연주는 최상급으로 세공된 다이아몬드 같은 느낌이었다. 빈 필은 독일 오케스트라를 편애하는 나에게 '(하지만) 역시 최고는 빈필이었나..요....' 라는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듯 하다. 음악의 망망대해에서 나는 속절없이 부유하고 있고, 저 멀리 환하게 빛나는 빈필이라는 등대를 보며 나는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나는 계속 음악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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