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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칼럼 Oct 18. 2022

시험관 시술은 부부만 가능하다고?

한국 저출생 문제, 선진국 사례에 답이 있다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이 시험관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 방송인 사유리가 지난 2020년,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낳았다고 밝히면서 한 말입니다. 그의 말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데요. 


한국에서는 비혼여성이 시험관시술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체외수정시술은 원칙적으로 부부관계에서 시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관련 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1) 시험관시술은 부부만 가능하다고?


대한산부인과학회(이하 학회)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권고에도 '비혼여성의 시험관 시술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개인의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학회에 해당 지침 개정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학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지난달 30일 인권위에 따르면 학회는 "제3자의 생식능력을 이용해 출산하는 것은 정자 기증자 및 출생아의 권리 보호를 포함해 논의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률의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인권위 권고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학회의 입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일단 현행법은 비혼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금지하고 있지 않거든요. 관련 법률조차 없는 시점에서 학회는 사회적 통념을 핑계삼아 비혼여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학회 입장에 대해 인권위는 "학회가 여성의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가 됐는지 여부는 학회가 권한 없이 임의로 단정해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유감을 드러냈죠. 


*현재 정부는 난임부부에게 정자를 제공하고, 임신 시술 과정에 드는 비용을 지원합니다. 다만 비혼여성은 ‘본인이 알아서’ 정자 공여자를 구해야 하는데, 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시술해주는 산부인과를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OECD 국가 대부분은 비혼여성이 공적 체계 안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가지는 게 가능합니다.


2) 한국 저출생 문제, 선진국 사례에 답이 있다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생 현상은 국내를 넘어 전세계의 걱정을 살 정도로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인구는 현재 5200만명에서 2070년 3800만명으로,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율은 약 71%에서 46%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간 한국사회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적 지원에 집중했는데,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이에 따라 이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거비와 교육비가 한국보다 더 많이 드는 일부 선진국들의 경우 출생률 또한 한국에 비해 높은 경우를 찾아볼 수 있어요. 과연 비결이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의 출생률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비혼 출산'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결혼 여부와 관계 없이 임신 및 출산 혜택을 주는데요. 이 덕분인지 2018년 기준 전체 출생아 대비 비혼 출산 비율이 60%에 육박한 바 있어요. 같은해 미국(39.6%), 스웨덴(54.5%) 등 다수 국가에서도 비혼 출산 비율이 전체 출생아의 절반 수준을 차지했죠. 이들 국가와는 달리 각종 혜택을 '법률혼 가정'에만 제공하는 한국에선 비혼 출산 비율이 2.2%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주제로 논문을 펴낸 미국의 국제경제전문가 역시 선진국 사례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비혼 출생률이 높다는 것은 '출산을 결정할 때 결혼 여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서도, 혹은 동성·비혼 커플끼리도 얼마든지 아이를 낳거나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pixabay


3) 저출생 문제 근본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구조


전문가들은 또, 한국 저출생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한국 사회 구조상 한국 여성에게 결혼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는데요. 이는 실제 통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19년 기준 맞벌이 가구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54분, 여성은 187분인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표'를 살펴봐도,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으로, 29개 조사 대상국 중 꼴찌를 기록했죠. 이는 OECD 평균(138분)의 3분의 1 수준인 반면, 한국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227분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매년 합계 출산율 최저 신기록을 경신하는 배경에는 여성이 독박 육아를 하면서 집안일도 혼자 다 해야 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죠. 


한국과는 달리 출생율이 높은 선진국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습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는 △남성의 적극적인 가사·육아 노동 참여 △워킹맘에 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 △정부의 적극적인 가족 정책 △육아를 마친 남녀의 취업 문턱이 낮은 유연한 노동시장 등의 특징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또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선 남성의 가사 및 육아 노동 참여율이 관건이라고 밝혔죠. 


한국의 저출생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결혼 여부와 상관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리고 남성의 가사 및 육아 노동 참여를 활성화하는 등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죠.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정부가 하루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네요. 


*출생/출산 어휘

-이번 글에선 '저출산(低出産)' 대신 '저출생(低出生)'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저출산'에 쓰이는 '산'은 '낳을 산'이라는 뜻으로 '저출산'은 여성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을 뜻하거든요. 전문가들은 해당 표현에 대해 인구 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어요. 


따라서 '저출산' 대신 '아이가 적게 태어난다'는 뜻인 '저출생'으로 쓰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수용해 이번 글에선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함께 보기 좋은 뉴스 

<‘저출산’ 아니라 ‘저출생’, ‘유모차’ 아니라 ‘유아차’죠>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851209.html 

-인권위 "대한산부인과학회, 비혼여성 '시험관 시술 제한' 지침 개정 권고 불수용"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225679?sid=102 

-비혼여성엔 시험관 시술 제한하는 의료계…인권위 “유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2047504?sid=102  

-"한국 여성에게 결혼은 '나쁜 거래'… 성평등 없이 출산율 반등 없다"[인터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699444?sid=104     

-[이슈 짚기] 비혼 여성은 시험관 시술로 아이 낳지 못하는 나라?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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