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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칼럼 Mar 17. 2024

죽고 싶긴 한데 ‘아내의 유혹’ 다음편은 궁금해


안녕하세요! 에디터 소서입니다 :)

이번 글은 현재 준비 중인 에세이 내용 일부입니다 :-) #많관부! 

드라마로 인생의 지혜를 배웠던 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1탄은 아래에 � 

https://brunch.co.kr/@soseo/33 



그럼 오늘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스타트!




2008년만큼 내게 가혹했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을 꼽자면 그해 11월이다. 수능을 처참하게 망하고, 진심으로 '죽을' 날만 꼽던 나를 살렸던 것은 누군가의 따스한 위로도 무엇도 아닌, 당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었다.


드라마 ost인 차수경의 <용서못해>부터 귀에 꽂힌다. 파워풀한 목소리로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라고 외치는데, 진짜 노래 듣는데 마음이 아프더라. 여기서 "너"를 수능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생각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졌다.


왜 나는 수능에서 역대 최악의 점수를 맞았는가. 대박은 아니더라도 최소 모의고사만큼은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어쩜 현실이 나한테 이렇게 잔인해?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수능 답지를 머릿속에 입력한 채 수능 당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시간은 '뒤로가기'는 커녕 야속하게도 앞으로만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나는 더욱 절망했다. 이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언어영역이 5등급이었다. 원래도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5등급은 수능에서 처음 받아본 등급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수능 첫 시간인 언어영역에서 이렇게 죽을 썼으니 다른 영역도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진 꼴이었다. 처참했다.


성적표를 봐도 봐도 등급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죽을까?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다. 수능 망해서 좋은 대학교 못 가면 그 것으로 인생이 망한다고 생각했던 열아홉.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꽉 막힌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그땐 그랬다. 수능 망해도 인생은 계속되고, 역전할 기회가 온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해 겨울, 진지하게 죽음을 고민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까. 방법을 고민하는데,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계속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팠다. 아픈 머리를 식히는 덴 생각 없이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게 딱이다. 그래서 그때 내가 택한 방법은 텔레비전을 트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드라마가 나를 살렸다. 그게 바로- 앞서 언급했던 <아내의 유혹>이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내의 유혹>은 엄청난 작품이다.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끊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 줄거리 자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자신을 배신한 남편 및 절친에게 복수하는 게 주된 흐름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 구은재(장서희)의 능력이 거의 '신'급이라는 점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구은재는 민소희로 위장한 뒤 복수를 위한 계획을 하나하나 준비해나가는데 이 과정이 진짜 장난 아니다. 구은재는 "할 거예요. 해보겠습니다. 해볼게요"라면서 모든 것을 다 해낸다. 불과 한두달만에 영어부터 프랑스어 등 온갖 외국어를 마스터하는가 하면, 승마와 골프 등 고급 스포츠까지 다 섭렵한다.



이 설정은 왜 나를 흥분하게 했는가.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 나도 "할거예요. 해보겠습니다. 해볼게요" 단 세 마디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뚝딱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는 너무나 무기력해져 어떤 것을 새롭게 할 힘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런 판타지같은 설정에 혹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죽기 직전 우연히 틀었던 티비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가 저런 능력을 가진다면 어떨까. 인생이 너무 짜릿하겠다- 이런 식으로.


드라마에서 구은재의 복수 과정이 너무나 통쾌하게 펼쳐지는 것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구은재가 마음 먹은 대로 전부 이뤄지는 것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못해 신이 났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그녀의 복수를 응원했다. 마치 실존 인물인 것 마냥.


그 당시 구은재는 내 친구이자, 또 다른 '나'였다. 나는 구은재의 복수가 어떻게 끝이 날지, 그녀가 어떻게 행복해질지 궁금했다. 그래서 죽을 수가 없었다. 죽고 싶긴 한데, 죽으면 '아내의 유혹'을 못 보니까.


드라마를 보지 않을 땐 변하지 않은 현실에 절망하다가도, <아내의 유혹> 시작 시간이 되면, 나 또한 드라마 속 세계에 살았다. 그렇게 한참을 살다 보니 어느덧 <아내의 유혹>도 끝이 났다. 다음편이 궁금해서 계속 살았는데, 결국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이것만 보고 죽어야지 싶었는데- 막상 드라마가 '진짜' 끝나니 죽기 싫어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어느덧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음의 상처에도 약이 필요하다는데, 내게 <아내의 유혹>은 후시딘이자 마데카솔이었다. 주인공의 시련 및 활약에 울고 웃으며 몰입하면서 나를 짓눌렀던 고통의 시간도 순조롭게 흘려보낼 수 있었던 거니까.


#아내의유혹 #복수극 #용서 #드라마 #입시 #고3 





https://brunch.co.kr/@soseo/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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