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아닌 운의 영역에 들어선 뒤 마주한 좌절감, 그리고 요동치는 마음
라스베가스 현지 시각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오후 3시 48분.
미국에서는 꽤 큰 휴일/기념일(?)인 부활절을 하루 앞둔 토요일이라 어디를 가더라도 꽤나 분주하면서도 들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3월 마지막주였던 이번주 내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날씨는 주말이 되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하더니 토요일 아침부터 하루종일 온 하늘은 먹구름이 뒤덮혔고 비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좀처럼 그칠기세 없이 추척추척 내리고 있다. 평소와 같았다면 별로 달갑지 않았을 이 날씨가 이번 주말만큼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라스베가스 북서쪽에 위치한 한적한 동네의 한 카페에 있다.
이러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격렬한 킥복싱 수업을 한시간 듣고 건강한 점심 한끼를 하고서 깔끔하게 목욕재계까지 했다. 그러고도 오후 1시 정도되는 시간이었으니 날씨 핑계를 대고 집에서 시간을 죽이면서 어느 정도는 침잠한 상태로 시간을 그냥 소비하는 형태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으나 뻔히 예상되는 형태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라스베가스 전지역을 통틀어 평점도 좋고 조금 한적할 것 같은 카페를 찾았고 부활절 하루 전날인 토요일임을 감안해서 공식웹사이트와 구글맵에 표기된대로 오늘 정상영업을 하는지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한 뒤에 집에서 20여분 정도 운전을 해서 이 이름모를 동네에 한 카페에 왔다. 다행히 기대이상으로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한적하며 커피맛도 좋다. 이건 운이 좋은 걸까 혹은 내 탐색과 노력의 결과일까?
통창으로 된 이 한적하고 조용한 카페에 따뜻한 라떼를 한잔 시켜 비가 오는 밖을 내다보는 나의 주말은 겉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덧붙여 보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 주말 내 생애 첫 H1B 추첨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이 아닌 운의 영역에 들어선 뒤 마주한 좌절감, 요동치는 마음 그로 인해 파생된 사색의 시간은 꽤 가치가 있다.
먼저 노력과 철저한 준비로 여러 불가능의 영역을 계속해서 이겨내온 삶을 살아온 나로써는 근본적으로 H1B (미국 취업비자) 추첨제에 대한 깊은 증오와 회의감의 감정이 앞선다. 내가 자발적으로 걸어들어온 운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감정을 가질 자유와 그를 표출할 수 있는 권리는 있지 않나. OPT 신분으로 취업을 해낸 것, 그리고 회사로부터 H1B 스폰서를 받아서 추첨 신청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과 설득 자체도 녹록치 않은데 이젠 내 컨트롤의 영역이 아닌 '운'과 '확률'의 링에 올라선 나는 근본적으로 '도대체 얼마나 더 극복하고 해내야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이 판에서 강한 저항정신을 느끼며 시작된 이번 한 주의 감정은 그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시스템의 한계과 부조리함에 침잠된 몇 시간을 거쳐 나는 결국 인생 자체가 내 능력과 의도에 반하는 흐름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것임일 인정하게 되면서 최악의 확률로 내가 미국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게 되고 자력으로 그를 극복하게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면 그로써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닐거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상황조차도 결국은 소화해내고 받아들이고 극복해서 또다른 좋은 방향으로 전환해낼거라는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사고는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이번 주말은 익숙하면서도 약간은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그런 주말이다.
불가피하게 이렇게 차분하게 주말을 보낸 뒤 맞이하는 4월 첫째주에 내게 행운의 소식이 찾아들까.
혹은 나는 1여년을 더 기다리며 고군분투해야하는 운명일까. 혹은 그로부터 1년 더 마음고생하면서 외나무다리까지 갈 운명인걸까.
그렇지만 정말 답변을 들을 수 있다면 듣고 싶다.
정녕 나는 어디까지 노력해야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