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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Aug 17. 2020

직장인인 저의 부캐는 작가, 음악 프로듀서입니다.

직장인, 가장의 역할에 더한 생산적인 취미 두 가지


나는 40대 남자이며,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고, 퇴근하면 아들 셋 아빠, 여가 시간에는 작가, 음악 프로듀서가 된다.


'직장인'과 '가장'에 무언가 더하고 싶었다.


후배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인 중에 직장과 일을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형밖에 없어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원래 현실을 긍정하는 편인 데다가, 지나고 나서는 싫었다고 할지언정, 어차피 하는 일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 있다.


일과 가정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사측'이 물어도 나는 가정이라고 답한다. 나라는 개인에게 일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가장인 내가 일하는 이유는 입신양명보다 가족과 생활하고 즐기기 위한 것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


일주일의 하루나 이틀을 빼고는 7시 전후로 귀가하고, 집에 있을 때는 설거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빨래 널기, 막내 목욕 등을 담당하고 있다. 끝없는 가사와 육아도, 남의 돈 받고 하는 일도 애당초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다행히 즐겁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변함없는 생각이 또 한 가지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가장과 직장인으로만 살기는 아쉽다는 것이다. 생산적이면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싶었고, 그런 희망에 중요한 조건은 일과 가정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직장인과 아빠로서의 역할이 끝난 늦은 저녁과 이른 아침, 휴일의 여가 시간에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있다. 얼마 전부터 글과 음악을 담은 영상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 가지의 콘텐츠를 여러 매체를 통해 세상에 소개하고 있다.




부캐 1: 작가


본업은 샐러리맨(Salaried man)이면서 작가(Writer)이기 때문에, 나는 흔히 말하는 샐러라이터(Salawriter)다.


대중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학교 건물의 입구에 무가지인 <대학 내일>이 비치되어 있어서 즐겨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작은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 에세이를 즐겨 봤다. 평소에 일상에서 만나는 장면을 찍고 그때의 감정을 짧게 적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투고를 해 보았고, 늘 보기만 하던 잡지에서 나의 사진과 글을 볼 수 있었다. 나의 글이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을 처음 느꼈던 그때를 계기로 글 쓰고 매체에 기고하는 것은 생활이 되었다.


지금은 기업 웹진, 인터넷 신문, 브런치, 공공 기관의 소식지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주로 에세이와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직장 생활, ICT 기술, 복지 정책, 육아 이야기, 대인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형태의 소득이 발생하기도 한다. '글로 소득'이라고 부른다. 군대에서는 대민 지원으로 사과 수확을 도왔던 수기가 국방부 소식지에 실려 특별 휴가를 다녀왔고, 산부인과의 출산 수기 공모전에서 상을 받아 유모차를 받았다.


모 프리미엄 자동차 시승단에 선정되어 럭셔리 여행을 다녀왔고, 고가의 자동차를 장기간 시승했다. 모 대형 마트의 가족 모델로 뽑혀 상품권과 촬영 당시에 입었던 모든 의상을 받기도 했고, 회사 사내 이벤트에 당첨되어 1년 동안 지원을 받으며 가족 농장 체험도 했다. 이벤트 담당자들에게 들은 선정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사연이 가진 힘이 있었다.


에세이에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주로 다루고 있고, 독자들이 전해주는 공감의 말에 힘을 입어 또 다음 글을 쓰고 있다. 여러 소득 중에서도 진정한 글로 소득은 역시 '공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글감이 되고, 그렇게 쓴 글로 나와 가족이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이렇듯, 경험과 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산적인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 김강민 작가의 브런치 페이지 >





부캐 2: 음악 프로듀서


올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음원 열 곡을 발매했다. 나이 마흔셋에 음악 기획부터 작곡, 편곡, 음원 제작까지 혼자서 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노래를 너무 좋아했다. 대학생 때는 레코드점에서 일하고 싶어서 한 달 동안 문을 두드려 일자리를 구하기도 했다. 너무 좋아하다 보니 나에게 꼭 맞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채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오고, 직장인으로 사는 사이에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사이에 곡을 만드는 시도는 해 보았지만 너무 단순한 동요 수준에, 내 귀로도 다시 듣고 싶지 않은 곡밖에 만들 수 없었다. 타고난 재능은 없었나 보다.


지난해 1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문득 작곡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았다. 그다음 주에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했고 열 달 동안, 매주 월요일, 퇴근길에 들러 한 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막상 배우기 시작하니, 음악을 좋아하기만 했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주일에 한 시간이라는 짧은 레슨이었지만, 화성학 이론을 배우고, 기존 음악을 분석하며 좋은 음악 만드는 방법을 배워갔다. 6개월이 지난 후에는 컴퓨터로 음원을 만드는 과정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연습을 했다. 동요, 발라드, 댄스, 힙합, 트로트, 광고 음악을 만들어 보았다. 부족하지만 레슨 시간에 선생님께 들려드리고 지도를 받아 고쳐나갔다.


10개월이 지난 후에는 혼자서 멜론, FLO 등의 서비스에 발매할 수 있는 음원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40시간의 레슨을 마치고, 올해 1월에 첫 음원을 발매했다. 활동명은 공학 박사, 아들(Son) 셋(Set) 아빠라는 고유성을 담아 닥터 썬셋(Dr. SonSet)이라고 지었고, 지금까지 발라드, R&B, 시티팝, 동요를 발표했다. 20년 묵은 꿈을 그렇게 이루었다.


휴식, 정화, 치유, 안정, 사랑... 그런 감정을 담아 음악을 만들고 있고, 음악과 글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하고 있다. 음원을 사용하고 싶다는 크리에이터들의 요청이 있어 무료 음원도 공유하고 있다. 구독자는 800명에 가까워지고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 프로듀서 닥터 썬셋의 유튜브 채널 >


<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프로듀서 닥터 썬셋 채널 >



지난 7월 말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공익 광고에 나의 음악이 사용되면서 TV 방송에 처음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다른 뮤지션들의 제의를 받아 공동 작업도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된 간절함이 전해지는지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고 있고, 그에 힘입어 다음 곡을 준비하고 있다.




부캐에 임하는 마음 자세


일은 아무리 즐거워도 평생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즐겁고 생산적인 취미라면 기력이 남아 있는 동안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만드는 글, 음악, 영상은 컴퓨터 한 대에 간단한 장비들만 있어도 충분하다. 은퇴한 훗날, 좋은 장비들을 갖춘 멋진 개인 작업실을 갖는 꿈이 생겼다.   


내가 즐겁게 만든 콘텐츠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하던 취미다. 가정에서는 든든하면서 친구 같은 가장으로, 회사에는 책임감 있는 직장인으로, 여가 시간에는 생산적인 취미를 즐기고 있는 나는 아빠, 김강민 매니저, 샐러라이터이자 프로듀서 닥터 썬셋이다.




*인터넷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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