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소리부터 시작하는 이유
떠수니한글놀이프로젝트 멤버를 모집하기 전에 가이드라방을 항상 엽니다. 라방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홀소리를 먼저 하는 이유입니다. 양평 발도르프학교 월세미나 한글 강의 수업에서 만난 공교육•방과 후•발도르프 기관 선생님들과 이 이슈를 놓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어요. 닿소리를 먼저 하신 분들도 많고 홀소리를 먼저 시작하는 분도 고르게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홀소리를 먼저 하는 게 더 좋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사실 닿소리부터 시작해도 문제되진 않습니다.
떠수니 프로젝트에서는 홀소리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그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분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 아이들 대부분 닿소리로 더 즐겁게 놉니다. 저희 아이도 그래요. 아이들은 어떤 대상을 본뜬 글자(닿소리)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홀소리와 다르게 닿소리는 온 세상을 담은 글자입니다. 글자를 나타내는 형태가 뚜렷해 글자와 관련된 이야기나 말놀이를 더했을 때 글자 형상이 머리에 더 잘 남습니다. ㅅ을 보면 산을 떠올릴 수 있지요. 다람쥐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도토리를 줍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ㄷ' 글자 형상을 아이들은 그려 봅니다. 다람쥐 노래도 같이 불러보지요. ㄷ 들어간 단어도 더 잘 떠올라요. 달팽이 끈으로 바닥에 ㄷ 자 모양을 만들고 걸으면서도 ㄷ 이야기를 회상하고 다람쥐 노래를 부르면 ㄷ이 아이 마음에 잘 들어갈 거예요.
그럼에도 홀소리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홀소리를 인고의 시간을 거쳐 닿소리를 만났을 때 자모음의 결합이 수월해집니다. 프로젝트 계획표에 보시면 알겠지만 글자 하나를 한 주 동안 만납니다. 한 주에 모음 한 글자를 만나지요. "아~~"하면서 그 느낌을 말해보고 "아- 아- 아-자로 시작하는 말"이라고 노래 부르며 단어를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리를 익히고 입모양도 확인합니다. 소리를 충분히 익히는 과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 프로젝트에서 소개되는 한글 감각놀이와 이야기로 'ㅏ' 글자 하나를 하루 종일 말합니다. 그러면 소리 노출을 집중적으로 많이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프로젝트에선 한 주씩 홀소리를 만나는 와중에도 지난 글자도 복습하게 됩니다. ㅗ, ㅏ, ㅜ, ㅓ를 다하게 되면 그 차이를 말로 또 놀거든요.
천지인(•, ㅡ, ㅣ) 석자는 물론이고 초출 모음(ㅗ,ㅏ,ㅜ,ㅓ)과 제출 모음(ㅛ,ㅑ,ㅠ,ㅕ) 모두 한 주씩 만납니다. 홀소리 하나하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과정입니다. 홀소리는 소리로 가지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살짝 지겨울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많이들 그만 두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인내의 시간을 가지고 더 정성을 들이면 각 홀소리에 담긴 소리와 모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닿소리를 만나야 더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부턴 홀소리와 닿소리를 어울려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즐길 수도 있지요. 홀소리를 잘 이해한 상태라 닿소리 진도에서도 'ㄷ'와 'ㅏ'가 만나면? 'ㄷ와 ㅜ가 만나면? 이렇게 물었을 때 아이가 정답을 맞힐 재미를 느낍니다. 홀소리를 나중에 익히면 그 홀소리 글자가 가진 본연의 특징을 느껴볼 시간이 줄어들 거예요. 초성 중성 심지어 종성까지 조합된 소리를 내기에만 바쁠지도 모릅니다. 글자 떼기를 위해 엄마의 욕심이 자꾸 더해질 가능성이 크지요.
홀소리를 어렵게 만나고 나면 닿소리를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어느 순간 글자카드를 꺼내 읽어달라고 하고 책 표지에 있는 글자를 읽으려고 애써보기도 합니다. 엄마가 한글 놀이를 재밌는 순간으로만 노력해오셨다면 글자 형상화 작업도 그 과정에서 꾸준히 이뤄지기 때문에 닿소리 때는 아이 어깨에 한글 날개가 달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제야 한글 세계에 빠지게 되지요. 낱말카드나 워크북을 들이밀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앞두고 있다면 닿소리 놀이가 마무리됐을 무렵 가볍고 조심스럽게 내밀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같이 놀이했던 내용을 복습도 해보고요. 엄마랑 정말 즐겁게 한글 놀이를 해왔다면 아이 마음이 조금은 열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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