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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칠이 Jul 14. 2016

밀라노의 운하 - 나빌리오 그란데

낮과 밤이 무척 다른 그곳

밀라노 포르타 제노바 기차역에 내려 조금만 걸으면 나빌리오 그란데가 있습니다.


나빌리Navigli는 작은 배나 운하를 뜻하는 단어 나빌리오 naviglio의 복수형입니다. 밀라노의 나빌리에는 이 나빌리오 그란데를 포함해 파베제, 마르테사나, 파데르노, 페레과르도 총 5개의 운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요. 이 운하들을 운송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단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관개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특히나 밀라노의 항구 역할을 했던 다르세나 Darsena에 연결된 나빌리오 그란데와 파베제는 지금 밀라노의 '가볼만한 곳'이 되었습니다.


낮과 밤이 무척 다른, 하지만 언제나 매력 있는 나빌리오 그란데

나빌리오 그란데를 따라 걷다 보면 개성 있고 독립적인 가게들이나 작품을 만들고 파는 예술가의 공방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아 잠시 서서 아침으로 카푸치노에 코르네토 하나 먹기도 좋고 낮동안 산책을 하기에도 나쁘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저녁에는 아페리티보 한 잔 하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낮동안 문 열지 않았던 식당들이 길을 따라 펴놓은 자리에 하루의 일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느라 엄청나게 북적거리는 모습으로 탈바꿈합니다.

http://dietagaia.blog.so-net.ne.jp/2016-01-04

진한 주황색 불빛을 비추는 가로등 아래에서 쉴 새 없이 입으로 손으로 말을 하느라 바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곳이 이탈리아이기는 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은 무슨 할 말이 저렇게도 많을까? 하고 진지하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의 긴장을 풀고 여유로운 저녁을 - 그것도 직장 외 사람들과! - 즐길 수 있는 도시의 삶이 부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모르긴 몰라도 등불축제를 구경하러 청계천에 온 관광객들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나빌리오 그란데는 밀라노에 여러 군데 있는 헌책방 리브 라쵸 Libraccio를 처음으로 발견한 곳이기도 합니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건물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새 책을 주로 찾을 수 있었고 나머지 매장에서는 중고 책들이 주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탈리아어로 책을 읽을 수는 없어서 몇 가지 외국어 소설에만 관심이 갔고 결국 한 권도 사지는 않았지만, 손때 묻은 헌 책을 구경하는 것이 쏠쏠한 재미였던지라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특히나 위층에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나빌리오가 정말 예쁘기도 해요.



여름밤의 다르세나


새로 태어난 밀라노의 부두, 다르세나


운하를 따라 동쪽 포르타 티치네제Porta Ticinese 방향으로 쭉 걷다 보면 다르세나 Darsena에 닿게 됩니다. 다르세나는 수 세기 동안 밀라노의 항구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이곳 역시 2015년 열릴 엑스포를 위해 재정비를 거쳐 밀라노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만남의 장소로 새롭게 태어났어요. 그래서 이름도 누오바 다르세나 Nuova Darsena, 새 다르세나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전부 그냥 다르세나라고 부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특히나 주말에는 열리는 행사들도 많고 사람 구경하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 재정비를 거쳐 다르세나는 명실상부한 밀라노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고, 특히 12월에는 '다르세나 크리스마스 빌리지'라는 행사가 열렸다고 해요. 아마 12월까지 밀라노에 있었다면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 대신 이곳에 놀러 갔겠지요.

누오바 다르세나와 가까이에 있는 피아짜 벤티콰트로 마죠 Piazza XXIV Maggio에는 식료품부터 시작해서 자전거까지 찾아볼 수 있는 시장이 열립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페리티보나 간식도 많고요. (사족으로, 이 광장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기념하기 위해 1924년 5월 24일 오크 나무를 한 그루 심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도 미리 알았더라면 직접 보고 올 수 있었을 텐데요..)



태양이 작열한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여름 날씨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바깥에도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이 조금이나마 부는 저녁에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내가 다르세나에 갔던 그 날 저녁에도 밤 10시가 가까워져 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나이를 짐작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나의 눈에는) 20대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층이 다르세나에 많이 모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연습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저 앉아서 수다 떠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지요.


다르세나에서는 재밌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듯이 보냉 박스에 물이라던지 음료수, 맥주를 가지고 나와서 파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얼음물이 들어있는 소위 바케스에 병맥주를 들고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앞을 지나다니며 연신 비라, 비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맥주는 3~4유로, 물이 한 병에 1.50 유로였던 것 같아요.




낮의 모습도 밤의 모습도 재미있기는 매한가지지만, 아무래도 비교적 활기찬 저녁의 나빌리오 그란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밀라노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 유명하다는 나빌리오의 아페리티보도 해 보고 시장에도 직접 가보고 싶네요. 아, 일단 젤라토 집부터 찾아 놓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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