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토리노의 포르타 수사에만 있다고 합니다)
여름이 찾아오자 이탈리아에 살 기회를 잡은 김에 소위 '뽕을 뽑자'는 생각으로 휴무날이면 산으로 들로 또 시내로 나들이를 다니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한낮에 땡볕을 제외하면)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좋은 날씨이기도 했고 점차 일이 적응되면서 밀라노와 이탈리아라는 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나보다 앞서서 먼저 이곳 저곳 부지런히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나빌리오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해가 진 후 아페리티보 하고 저녁에 산책을 하러 가보고 싶었지만 여름의 해가 어찌나 길던지요. 그래서 이왕 가는 것, 아예 오전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를 한 잔 호로록 마시고는 나빌리오 그란데를 따라 서쪽으로 쭉 걸어 내려가다 보니 웬 시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Mercato Metropolitano
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시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습니다. 이름에 대도시가 붙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깔끔하고 현대적인 공간이었어요. 기차역 가까이에 있는 버려져있는 곳을 개조하고 밝은 색으로 칠해서 꾸며놓은 시장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외관이 화려(?)한 건물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피티가 정말 많은 곳이거든요.
그런데 이 곳, 이제는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문 연지 얼마 되지도 않아 100만 유로의 빚을 지고 결국 문을 닫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고 해요. 지난해 밀라노에서 엑스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는 매월 180만 유로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폐막 이후에는 이것이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워낙 좋아하던 곳이라 행여나 밀라노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꼭 브루스케타를 또 먹겠다고 생각했건만 사정을 모르고 갔다간 헛걸음을 할 뻔 했어요.
그래도 토리노 포르타 수사의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는 여전히 잘 되고 있다고 해요. 토리노는 피에몬테 주의 주도로 Cioccolato라는 초콜릿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니 토리노에 갈 계획이 있다면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이기는 해도 깔끔하게 꾸며놓은 건물 안에서 빵과 피자, 파스타, 채소부터 와인과 스테이크까지 이탈리아의 식재료를 사거나 요리를 먹을 수도 있고 저녁에는 길거리 음식 부스처럼 꾸며진 마당에서 세계 음식을 사다가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데 분위기가 참 좋아서 그런지 평일에도 와글와글 굉장히 활기찬 곳이었거든요. (모기도 같이 활기찬 게 문제였지만요...)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는 사과, 바나나부터 베리 종류와 무화과까지 다양한 과일을 판매하는 스탠드도 있었고 계란도 있었어요!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역 농산물을 가져다 놓고 판매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il pane come a casa mia" - 집에서 먹던 맛 그대로의 빵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것이 빵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이탈리아 역시 자기네 빵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 뿐만 아니라 요리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럽지 않은 이탈리아 사람이 없을 것 같만 같습니다 - 이곳에 들어갔을 때 맨 먼저 보이는 것도 빵이었지요.
슬로건처럼 쓰이는 말이 "il pane come a casa mia"라는 문구였습니다. 우리말로 적당히 옮기면 "어머니 손맛 그대로"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아직 시골에 사는 친척들이 있으면 휴가 때 놀러 가서 집에서 직접 만든 포카치아를 먹고 오기도 한다는데, 도시에 살다 보면 만들어 먹는 것은 둘째 치고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빵집이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슈퍼마켓에서 사다 놓고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내 가족이 시간과 땀을 들여 만든 예전의 맛을 그리워 하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구석에 있는 오븐에서 구운 빵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진열장하고 빵의 색도 잘 어울리고, 거친 글씨체로 가격이 쓰여 있는 칠판도 서로 잘 어울려서 보기에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면 두 번째 사진에서처럼 가지니 토마토니 하는 재료들을 올린 포카치아 종류도 있었습니다. 포카치아를 정~말 좋아하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입맛이 당기지 않아서 다른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브루스케타Bruschetta는 주 요리가 나오기 전에 먹는 안티파스토 중 하나인데, 겉을 바삭하게 토스트 한 빵에 (마늘을 갈아서 같이 굽는 경우도 있는 듯해요)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를 뿌려서 먹는 음식이라고 해요. 가장 흔한 종류는 토마토와 바질을 올린 것인데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데다 맛있기도 해서 여기에 올리브를 같이 넣고 자주 만들어 먹고는 했습니다.
토핑의 종류가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먹은 종류는 다른 곳에서 - 아직까지는 - 발견하지 못했어요. 토마토 말고도 주키니와 가지를 올린 것까지 세 조각이 나왔는데 예상 외로 맛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직접 만들 때보다 올리브 오일을 듬뿍 써서 손이 미끌미끌해지기는 했어도 토핑 종류도 각각 다르고 고소해서 질리지 않고 먹어치웠네요.
그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 주기도 하고, 접시 크기로 구분해서 샐러드를 담아주는 메뉴도 팔고 있었어요. 초록색 풀이 왠지 주를 이뤄야 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조미가 되어있는 것도 많고 쿠스쿠스나 보리를 이용해서 만든 샐러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 파스타도 종류별로 많았고요! 여기에서 파는 것은 먹어보지 못했지만 볼로냐에 갔을 때 공수해 왔던 토르텔리니Tortellini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마트 냉장고에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는 것보다 속이 알차게 들어있었고 부드러웠어요. (볼로냐 중심지에는 파스타 종류와 소스 및 다른 재료를 고르면 간단하게 자리에서 조리해주는 식당들도 많아요. 저렴한 가격에 간단하지만 든든하게 배 채울 수 있는 메뉴였습니다.)
또 이탈리아 아니랄까봐 이렇게 종류별로 여덟 병의 와인이 들어 있는 기계도 여러 대 줄지어 있었습니다. 한 잔씩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자판기였는데 마시기 가장 적절한 온도로 나오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세워놓은 모습을 보니 문득 색이 무척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로제 와인의 종류들이 보이는 빛깔은 범위가 넓기도 하고 고와 보였어요.
포르타 제노바 쪽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보내자는 약속을 잡았던 날에는 드디어 활기 넘치는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흔히 결정장애라던가 선택장애라는 말로 장난스럽게 표현하고는 하지요? 특히 "오늘 뭐 먹지?" 하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에 잘 나타나는 것인데, 아시다시피 선택지가 많을 때에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이 더 어렵잖아요. 이 날은 함께 한 사람들까지 모두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당연지사이지요.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에는 실내뿐 아니라 실외에도 판매 부스와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건물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주로 이탈리아의 상징적인 음식들이었다면 - 빵이나 파스타, 와인 등 - 외부의 풍경은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이었어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이탈리아 사람들도 방문객들도 많이 찾는 피자부터 시작해서 라자냐와 파스타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의외였지만 오코노미야키와 일본 맥주를 파는 곳도 있고, 수제 버거를 판매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달달한 케익과 과자가 모여 있는 트럭에도 눈길이 가고 소세지와 고기를 파는 곳 앞에서도 한참 서성이며 지나가는 사람들 손에 들린 음식을 보고 비교하면서 무엇을 먹을지 많은 고민을 했지요.
결국 네 명이서 고른 메뉴는 두 가지 피자 - 마르게리타와 앤초비가 올라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가지 - 와 버거 하나, 그리고 오코노미야키였습니다. 일본에서 생활했던 친구의 말로는 밀라노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정말 드물기 때문에 현지에서 먹는 맛에 비교할 수는 없더라도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에 올 때 항상 이곳에서 일본 음식을 먹는다고 해요. (제 입맛에는 오코노미 소스가 조금 더 있었으면 싶기도 하더라고요.) 모양도 삐뚤빼뚤하고 가장자리를 따라 그을리거나 탄 부분이 있기는 해도 간단한 토핑을 올린 이 바삭한 피자가 어찌나 맛있었는지요.. 시장이 반찬이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해도 말입니다.
날이 뜨겁고 손에 묻히고 싶지 않아서 이 날은 피했지만 이 날 저녁 야외에서 사실 가장 인기가 많아 보이는 이 왼쪽 요리였어요. 독일식 돼지 다리 구이인데 간단하게 돼지정강이Stinco di Maiale라고 적혀 있네요. 적당히 양념을 해서 전기통닭 굽듯 빙글빙글 돌려가며 굽는데 정말 군침돌게 만드는 빛깔이었어요. 동시에 이 부스에서 일하는 분들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토리노 포르타 수사에 있는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의 지점도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는 듯합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이왕 가는 것 초콜릿 축제 시기에 맞춰서 가고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도 들렀다가 오고 싶습니다.
이런 곳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금요일 밤에 여유롭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요리로 배도 채우고 함께 하는 사람들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은 아마도 밤도깨비 야시장이지 않을까 해요. 조만간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