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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칠이 Jul 11. 2016

독일에서 독일어 배우기?

베를린에 있는 어학원도 다닐만합니다.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중국어나 일본어가 흔한 고등학교 제2외국어 과목이 아니던, 그래서 많은 여학생들이 프랑스어를 배우고 남학생들이 독일어를 배웠던 그 시절 이후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만큼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았던 적이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남산으로 돌아간 괴테 인스티투트, 즉 독일문화원에 다녔다는 사람도 많고, 확실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개설된 코스의 개수나 강사도 늘어나지 않았나 하고 느끼는 중이었어요.


고등학교 제2외국어 수준 이상으로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아직 많지는 않습니다. 서울에 유명한 학원들이 몇 개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독일문화원이지요. 한국과 독일 간의 교류 행사를 하기도 하고 도서관을 운영하는 등 문화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다른 역할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축이 되는 것은 어학 강좌와 독일어 능력 시험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는 코스부터 중고급 코스까지 모두 개설이 되고, 그 수준에 맞게 가르칠 수 있는 인증받은 강사들이 있다는 것이 괴테가 가지는 장점입니다. 또 수업 자체가 웬만하면 독일어로 진행이 되는데다 수업이 문법이나 독해 위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큰 메리트겠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괴테에서는 수강료도 -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 감당할 만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괴테의 독일어 수업이 예전만 못한가 봅니다. 수강 신청 등 행정적인 운영 방식에서뿐 아니라 강사들의 능력에 있어서도 잡음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말이에요.


그래서 베를린에서 어학원을 다녔던 경험에 대해서 적어보려 합니다. 베를린에 있는 어학원도 다닐만하거든요.


KaDeWe가 있고 비텐베르크플라츠와 세계 시계가 있는 알렉산더플라츠 두 곳에 있는 도이치아카데미DeutschAkademie에서 2015년 12월 한 달동안 C1.2 코스를 수강했어요. 4주 인텐시브 코스로, 주 4회 3시간씩 진행되며 가격은 225유로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낀 12월이었기 때문에 저는 월~금 3주 + 1회로 같은 시수이지만 기간이 더 짧기는 했어요.)



사설 어학원에 대한 의심...

한국에서도 괴테가 아닌 독일어 학원을 다니는 것이 많이 꺼려졌습니다. 괜시리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독일에서도 대학교 부설 어학원이 가장 수업의 질이 좋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기도 했고요. 하물며 독일 현지에는 전 세계에서 유학생과 이주민들이 몰려들어올텐데, 이것을 노리는 수많은 사설 어학원들이 내실 없이 소위 '물 들어올 때 노 젓기'를 시전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또 독일어 공부를 하려는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어학연수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 어학원에 등록을 하는 이주민들이 적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스러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치아카데미

그런데 베를린에 있는 괴테를 알아보니 말 그대로 후덜덜한 가격에다 수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기까지 했습니다. 4주간의 인텐시브 코스가 1200유로를 훌쩍 넘어가고, 괴테를 통해 방이라도 같이 하나 구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550유로 정도가 추가됩니다. 가족과 여행 계획도 있고, 밀라노에서 모아둔 돈으로 어학 코스며 생활비로 쓰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무리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이지만 정말 이 정도의 값을 할까?


이미 베를린에 와 있다

영어든 독일어든,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굳이 어학연수를 떠나는 이유는 그 언어에 둘러싸여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마음만 먹으면 강의의 도움이 없이도 충분히 언어를 익힐 수 있는 환경이지요. 특히 기본기가 이미 있는 상태라면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어휘나 관용어구를, 지하철 역에 붙은 광고판에 사용된 언어유희와 같은 것을 접할 수 있기에 단순히 장을 보러 가는 것도 큰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매일같이 마트에 드나들었던 것은 사실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니까요. 진짜로.


이렇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수강생들

만약 사설 어학원 수업의 질이 의심했던 것만큼 낮다면 학원이 크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알아보니 수강생들이 굉장히 많고, 작지 않은 건물의 두 층에 걸쳐 강의실이 있었습니다. 수요가 많은 레벨의 경우 등록이 일찍 마감되기도 했고요. 어학원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방문했을 때, 입구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게시판에 방이며 교재를 사고 파는 쪽지들이 많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언어교환 탄뎀 파트너를 찾는 것도 많았지요. 이 게시판을 보고 의심스럽던 마음이 꽤나 줄어들었습니다.


저렴한 수강료

4주 코스에 225유로라는 가격은 수업에 100%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납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 외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더 용감하게 이곳에서 공부하기로 결정을 내렸지요.



그래서 다녀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수업이었습니다.

수강료를 보고 수업의 질 측면에서 분명히 타협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국적으로 저널리스트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전문 독일어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사의 수업은 훌륭했습니다.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와 어법/문법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수업에 포함시키려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다른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기 때문에 독일어 이외에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전해주었지요.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수강생이 요구하는 사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수강생들에게 수업의 방향에 대해 선택지를 주었고 남들과 다른 선호를 가진 수강생의 요구도 최대한 포용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 번은 글쓰기 과제를 제출하면서 수업 중 토론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그 점을 바로 반영시켜주었고 내 필요에 더 잘 들어맞는 수업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리고 학원에는 무선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는데, 개강을 함과 동시에 사무실에서는 수강생들이 한 달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계정과 패스워드를 나눠줍니다. 독일의 선불제 통신 요금제는 그 가격을 차치하고라도 한국에서 쓰던 버릇대로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무선 인터넷을 맘껏 사용할 수 있는 점도 좋았어요.


더불어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네시 반이면 어둑어둑해지는 겨울철 오후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놀 곳도 공부할 곳도 많았기 때문이어요. 근처 쇼핑몰에 있는 서점에서 책 구경도 자주 했고, 무제움인젤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다가 바로 옆 피셔인젤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들어간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시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맘 먹고 공부하러 가는 것, 아예 주 5회 수업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에서 더 다뤄주었으면 좋았을 부분을 시간 상 넘어가 버린 적이 한두 번 있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대학들은 외국인 학생들이 B2-C1 수준의 독일어 실력을 가지고 입학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통 테스트다프TestDaF에서 4정도의 성적을 취득하면 어학원에서 이어서 공부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한 달밖에 다니지 않은 이유도 C2코스에 대한 수요가 적기 때문에 수업이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한 시험을 거쳐서 다음 달의 레벨이 정해지는 시스템이 아니기에 출석을 하면 차근차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러 수준에 맞지 않는 반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현실적으로 한 달만에, 예를 들자면 B2.1 코스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도 다음 달 수업의 수준은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수강생들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본인이 상담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요.



굳이 무리를 해 가면서 괴테에서 독일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도이치아카데미를 통해 얻은 나의 결론입니다. 수업 자체도 만족스러웠지만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가까워진 것도 큰 소득이었고요. 어학원 다니던 때를 생각하자니 베를린이 무지 그리워지네요. 특히 되너케밥샌드위치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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