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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ug 19. 2024

아르바트에 남겨진 오쿠자바는 누구인가

삶을 노래한 소련의 음유시인 오쿠자바 이야기

모스크바의 옛 아르바트 거리는 문화예술 거리이다.

버스킹하는 사람이나 그림 그리는 예술가들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19~20세기 문학가와 예술가가 살았던 유서 깊은 공간이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출처: 저자 제공)


아르바트 거리를 걷다 보면 살짝 비뚤게 잡고 서 있는 동상을 하나 만나게 된.

'아르바트에 있으니 문화예술 관련 인물이겠지' 생각만 하며 관심은 두지 않았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불라트 오쿠자바 동상(출처: 저자 제공)


그런데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우리 정서와 너무 코드가 잘 맞잖아? (나도 나름 옛날 사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노래 감상을 위해 아래 화면 클릭]

출처: 유튜브 채널 Театральная студия при театре "Квадрат"


Грузинская песня 조지아인의 노래(1967) / 불라트 오쿠자바

Виноградную косточку в теплую землю зарою,  따뜻한 땅 속에 포도 씨를 묻고,
И лозу поцелую, и спелые гроздья сорву,  포도나무에 입 맞추며 잘 익은 송이를 따와,
И друзей созову, на любовь свое сердце настрою,  마음에 사랑을 담아 친구들을 부를 것이오.
А иначе, зачем на земле этой вечной живу.  그것이 이 영원한 땅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라오.
Собирайтесь-ка гости мои на мое угощенье!  나의 대접을 받으시오, 객들이여!
Говорите мне прямо в лицо, кем пред вами слыву.  얼굴 보고 말해주시오, 당신 앞 내가 누군지.
Царь небесный пошлет мне прощение за прегрешенья,  하늘의 왕께선 내 죄를 사해 주시리라,
А иначе, зачем на земле этой вечной живу.  그것이 이 영원한 땅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라오.
В черно — красном своем будет петь для меня моя Дали,  검붉은 옷 입은 나의 달리가 날 위해 노래할 거라오,
В черно — белом своем преклоню переднею главу,  흑백의 옷 입은 난 그녀 앞에서 고개 숙이리,
И заслушаюсь я и умру от любви и печали,  그리고 귀 기울이며 사랑과 슬픔으로 죽으리,
А иначе, зачем на земле этой вечной живу.  그것이 이 영원한 땅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라오.
И, когда заклубится закат, по углам заметая,  석양이 모퉁이를 따라 덮치기 시작할 때,
Пусть опять и опять проплывут предо мной наяву:  내 눈앞에서 다시 또 다시 떠다니게 해주오:
Белый буйвол, и синий орел, и форель золотая,  흰 물소, 푸른 독수리와 황금 송어가.
А иначе, зачем на земле этой вечной живу.  그것이 이 영원한 땅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라오.


노래만 봐도 단번에 조지아 출신임을 알 수 있는 그는,

바로 소련의 음유시인 불라트 오쿠자바(1924~1997)이다.




불라트 오쿠자바는 조지아인 아버지와 아르메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태어난 곳은 모스크바, 놀랍게도 그의 생일은 소련이 독일을 이긴 전승기념일인 5월 9일이었다.


불라트 오쿠자바의 어린 시절(출처: my.mail.ru)


불라트 오쿠자바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소련의 당 지도자로 활동했던 아버지는 거짓 밀고로 1937년 스탈린의 숙청 대상이 되었고, 어머니도 수용소로 보내지게 됐다. 그렇게 한순간에 인민의 적이 낳은 아들이 되어버린 불라트는 모스크바에서 트빌리시로 가서 할머니와 이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거기서 학교를 다니고 공장에서 일하며 시를 썼다.


청년 불라트 오쿠자바(출처: my.mail.ru)


하지만 17세가 되던 1942년 불라트는 참전을 자원했다. 6개월 동안 전선에 보내달라 지속 요청했다. 그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없었다. 그는 자신이 비록 인민의 적의 아들로 낙인찍혔지만, 그에게 하나뿐인 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고자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싶었던 이다. 결국 그는 대조국 전쟁 최전방으로 보내졌고,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전투에 참여했다. 다행히도 '총알은 피할 수' 있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남겼다.


'나는 총알을 피해, 필사적으로 돌진한다.
난 크림의 그을린 시체 위에서 다시 살았다.'


이로 인해 그는 전쟁과 군대를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썼고,

이는 후에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불라트는 트빌리시 대학교 어문학부에 입학했다.

학위 취득 이후에는 러시아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칼루가에 파견되었다. 당시 학생들은 불라트수업에 거의 빠지는 법이 없을 정도로 그의 강의를 모두가 듣고 싶어 했다. 그가 지은 시도 호응이 좋았다.


1950년대 칼루가 재직 시절 불라트 오쿠자바-가운데(출처: my.mail.ru)


1959년에는 자신의 고향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불라트는 어린 시절을 아르바트에서 보냈고 성인이 되어 모스크바에 다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시에서 자신을 항상 '아르바트의 이민자'라 불렀다. 이때부터 기타를 들고 자신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도 했지만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과 함께 그는 모스크바에서 출판사의 편집자, 신문사의 책임자로도 일했다.


1966년 출판사 옥상에서 불라트(출처: Мультимедиа Арт Музей, Москва)


불라트의 레퍼토리에는 200곡 이상의 노래가 있는데, 시와 음악은 모두 그가 직접 쓰고 작곡했다.

시인이나 가수는 있었지만 그는 이 둘을 같이 했다.


작가가 노래의 연주자가 되고 가수가 되는 것!

'음유시인', '노래하는 시인'...

그전까지 이와 같은 부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라트 오쿠바자가 최초 창시자였다.


작가가 부르는 노래란,
인생에 대한 심오한 생각, 어쩌면 비극적이고 신랄한 생각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노래는 비극적 생각과 신랄한 주제, 영혼의 들끓음에서 나온다.


비극적이고 신랄한 들끓음으로 인해 그의 노래는 흡입력이 있었다. 그속에서도 다소 절제된 다독임이 있다.

불라트가 공식으로 음반을 발표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노래는 유명해졌다.

공식 콘서트는 1961년 열렸고, 소련만이 아니라 유럽, 미국, 캐나다에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예술 영화 <나는 스무살>에 등장하는 박물관 저녁 행사에 기타 들고 노래하는 불라트(출처: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центральный музей кино, Москва)
항상 기타 들고 시로 노래하는 불라트(출처: m.ok.ru)


그는 80여 편 이상의 소련 영화 속 노래도 만들었다.

<포크롭스키 대문 Покровские ворота>에 나오는 "아르바트 노래 Песенка об Арбате"나 <사막의 하얀 태양 Белое солнце пустыни>에 나오는 "나리님, 행운의 여신님 Ваше благородие, госпожа Удача" 같은 곡들이다.


특별히 안드레이 스미르노프 감독의 영화 <벨라루스 기차역 Белорусский вокзал>을 위해 만든 노래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나의 승리 Нам нужна одна победа"는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겼다. 불라트는 자신이 최전방에 있을 때 참호에서 동료 병사들을 보던 시절을 떠올리며 노래를 만들었다. 그는 노래에서 말한다.


승리만 한다면, '그 값은 얼마든지 물겠습니다…. Мы за ценой не постоим….'


영화 <벨라루스 기차역>에서 노래하는 "우리에겐 하나의 승리가 필요해"(출처: 유튜브 채널 Киноконцерн Мосфильм)
유명인이 된 불라트 오쿠자바(출처: tass)


불라트 오쿠자바는 말년을 파리에서 보냈다. 1995년 유네스코 본부에서 한 공연이 그의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1997년 부인 올가의 품에서 사망한 불라트는 모스크바 바간코보 묘지에 묻혔다.

 

모스크바 바간코보 묘지에 있는 불라트 오쿠자바의 무덤(출처: dzen.ru)


불라트 오쿠자바의 영향력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1997년 '불라트 오쿠자바 국가 문학상'이 생겼다. 노래하는 시인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알렉산드르 고로드니츠키, 율리 킴, 알렉산드르 돌스키 등이 수상했다.


그리고 사망 직후 그에 대한 추모 법령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5년 후 2002년 5월 아르바트 거리 45번 건물 근처에 '노래하는 시인' 오쿠자바 동상이 세워졌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아르바트에서 보는 그의 동상이다. 조각가 게오르기 프란굴랸의 작품으로, 동상 높이는 2.5미터, 얼굴은 40대 당시 시인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동상 뒤의 청동 아치에는 그의 시에 나오는 단어가 새겨있다. 동상 뒤편으로는 불라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추억할 수 있는 그의 집 박물관이 있다. 과연 아르바트가 남긴 인물이다.


아르바트 거리의 불라트 오쿠자바 동상(출처: 저자 제공)
동상 뒤쪽에 위치한 오쿠자바 집 박물관(출처: kfh75.ru)
[아르바트 거리 불라트 오쿠자바 동상]
- 주소: ул. Арбат, 45(아르바트 거리)
- 찾아가기: 메트로 3∙4호선 Смоленская(스몰렌스카야)역에서 도보 5~7분


불라트의 친구들은 그를 '간디'라고 부르며 놀렸다고 하는데,

외모적으로나 생각하는 것들이 참 많이 닮아있구나 싶다.


"기도 Молитва"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그가 어떻게 인생을 대했는지 가늠하게 한다.

[노래 감상을 위해 아래 화면 클릭]

출처: 유튜브 채널 Trabantoslaw


신은 누군가에개 부와 돈을 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극심한 가난과 시련을 준다.

다소 불공평해 보이지만, 신은 각자가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한 지 또한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소망과 성취, 사랑, 보호에 대한 기도를 할 뿐.


Молитва 기도(1963) / 불라트 오쿠자바

Пока Земля еще вертится,  지구가 아직 돌고 있는 한,
пока еще ярок свет,  빛이 아직 밝게 비치는 한,
Господи, дай же ты каждому,  주여, 각자에게 주옵소서,
чего у него нет: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
мудрому дай голову,  현명한 자에게는 지혜를 주시고,
трусливому дай коня,  겁이 많은 자에게는 말을 주시고,
дай счастливому денег…  행복한 자들에게는 돈을 주소서...
И не забудь про меня.  그리고 나를 잊지 마소서.

Пока Земля еще вертится —  지구가 아직 돌고 있는 한
Господи, твоя власть! — 주여, 당신의 권세이니!
дай рвущемуся к власти  권력을 갈망하는 자에게는 주소서
навластвоваться всласть,  마음껏 지배할 힘을,
дай передышку щедрому,  관대한 이들에게는 휴식을 주소서,
хоть до исхода дня.  적어도 하루가 끝날 때까지.
Каину дай раскаяние…  가인에게는 회개를 주소서...
И не забудь про меня.  그리고 나를 잊지 마소서.

Я знаю: ты все умеешь,  난 알고 있어요: 당신은 모든 걸 하실 수 있음을
я верую в мудрость твою,  난 당신에게 지혜가 있음을 믿습니다,
как верит солдат убитый,  주검이 된 군인이
что он проживает в раю,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을 믿는 것처럼
как верит каждое ухо   그리고 듣는 귀마다
тихим речам твоим,  당신의 고요한 말씀을 믿는 것처럼,
как веруем и мы сами,  우리 자신도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не ведая, что творим!  믿는 것처럼.

Господи мой Боже,  주여, 나의 주님,
зеленоглазый мой!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나의 주여!
Пока Земля еще вертится, 지구가 아직 돌고 있는 한,
и это ей странно самой,  이것이 지구에는 이상할지라도,
пока ей еще хватает  아직 시간과 불이
времени и огня,  충분히 있는 한,
дай же ты всем понемногу…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 주소서...
И не забудь про меня.  그리고 나를 잊지 마소서.




불라트 오쿠자바는 어려서 부모가 소련으로부터 형벌을 받았고,

자신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 자원해 참가하는 등 영화 같은 힘겨운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과 인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

바로 시와 노래를 통해 깊이 있는 공감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그는 진정한 음유시인이었다.


2024년은 불라트 오쿠자바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하는 문화 행사들도 곳곳에서 열렸다.


한국문화원 주관 게르첸 집 박물관에서 열린 불라트 오쿠자바 탄생 100주년 기념 문화 행사(출처: 저자 제공)


기타 하나 들고 아주 소박하게 읊조리는 노래지만,

인생을 지내오면서 남긴 그의 울림은 지금도 여전히 아르바트 거리를 가득 채워가고 있다.


불라트 오쿠자바가 남긴 편지와 서명, 아내와의 사진, 티켓 등 전시물(출처: 저자 제공)



※ 원문 관련 영상 [노래하는 시인 불라트 오쿠자바]

https://youtu.be/CsMlQBaAOEQ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커버 사진 출처 : 저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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