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정도 타지에서 혼자 살았었다. 거기서 대학원도 다니고 직장도 다녔다. 가기 전까지 자취경험 제로의 서울 촌뜨기인 나에게 그곳에서의 시간은 따뜻하고 풍요로웠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계속 살 수도 있었을까 싶다가도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역시 그럴 수 없었을 거야 한다.
지금의 동네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이대 신촌 홍대 상수 연남 연희 이런 서대문 마포 일대의 동네들이 몹시 그리웠다. 아마도 내가 이 동네에서 엉망진창 하하호호 대잔치의 대학생활을 보내서겠지.
이 동네에 거리들을 걷다 보면 '아 저기 스타벅스에서 ㅇㅇ이 처음 만났었는데. 그때 우리 커피 주문하는 법 몰라서 캐러멜 마끼아또만 마심' '저기 그 자식이랑 갔던 곳이었잖아. 나 저기서 밤새 놀다가 다음날 시험 똥망했지.' '저긴 5차로 갔던 곳인데 저기서 새로 산 지갑 잃어버렸어ㅠㅠ' 그런 이야깃거리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 청춘이 곳곳에 산재한, 내 자아에 과다 지분을 가진 이곳이 좋아 서울에 올 때마다 더 간절히 마포 일대를 휘젓고 다녔다.
향수병이 짙어지던 어느 날 다시 서울에 올라와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모든 걸 다 접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짐했다. 서울에서 독립하는 첫 집은 꼭 마포에 얻어야지!
이후 예상치 못한 운명의 장난으로 서대문 마포에서 30년을 산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듬해 결혼까지 했다. 이 동네에 대한 애정만큼은 나 못지않은 남편과 나누는 동네 대화 패턴은 이렇다.
연트럴파크를 걸으며 내가 '여기 원래 철길 있을 때는 진짜 한가한 길이었는데, 레게치킨 빼고 다 바뀐 듯' 하면, 30년 터줏대감은 '저긴 원래 병수네 집이었어.' '저긴 내 동생 3살 때 읽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자리. '저 피자집은 원래 동교동 동사무소였어'한다. 가히 동교동 고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나는 앞으로도 쭉 이 동네에 살고 싶다. 내 삶에 아이가 생긴다면 언젠가 그 아이에게 말해줘야지.
'자, 여기가 네 아부지가 처음 자전거를 탄 곳 이래. 저기 저 냉면집은 엄마가 네 아부지를 처음 만난 곳이란다.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