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 마케터 이야기
수학 문제를 풀듯 공식이 있어 그 방법만 잘 따르면 모두가 대박나는 그런 마케팅 방법이 있다면 참 좋으련만, 세상에 브랜드나 제품의 수가 다양한만큼 이를 알리거나 팔아야 하는 방법도 정말 다양한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제조사이고 일반 소비자가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누구나 한 번 쯤은 써 봤을 법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성수기가 있다는 것 외에는 무언가 이슈가 되어 매출이 한 번에 확 튄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소위 ‘한 방이 없는 분야’에서 마케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입사 후 처음 반 년 정도는 약간의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특정 시즌에 대한 이슈만 잘 타면 엄청 잘 팔릴 것이라던가, 온라인 광고만 돌려도 매출이 확 늘 것이라던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한 방'에 잘 팔리게 하는 유형의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마케터로써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 그 순간, 입사 면접을 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마케팅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소비자의 인식 속에 우리 브랜드를 각인시켜서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나는 답을 찾았다. 이 때부터 우리의 마케팅 방향은 '소비자의 인식 속에 우리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전환을 했다.
먼저 브랜드의 공식 SNS 채널을 정비하고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었다. 대행사에서 콘텐츠 기획과 채널 운영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기획은 직접하기로 했고,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 줄 디자이너를 한 명 섭외했다. 유입에 대한 욕심보다는 우리만이 줄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더 포커스를 맞췄다. 일상 속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프로그램 활용 방법에 대한 매뉴얼을 각각의 채널에 맞는 방식으로 콘텐츠화하여 업데이트 했다. 그렇게 2년 정도는 매주 영상 1편을 포함해 1-2개의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나갔다.
블로그에서 내보내는 콘텐츠를 상단에 올리기 위해 네이버 공식블로그 인증도 받고, 특정 키워드에서 우리 콘텐츠가 나올 수 있도록 연결시켜 노출시켰다. 비록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콘텐츠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 둘 꾸준히 쌓이다 보니 몇 만 단위의 조회가 나오는 콘텐츠가 생기기 시작했고, 특별히 강조했던 몇몇 제품에서는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건 '경험'이었다. 늘상 혹은 자주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제품(서비스)이 아니라면, 한 번의 경험이 최고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정도 콘텐츠를 만들면서 어느정도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가 눈에 들어올 때 쯤, 나는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할 때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고 활용하기까지의 여정에서 불편한 요소들을 체크리스트로 정리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즉각적으로 개선했고, 관련 부서의 협조를 구할 일은 필요성을 설명하며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물론 이 때 정말 중요한 것은 해당부서나 담당자의 상황과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브랜드에 대한 '경험'을 개선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팀 내부 혹은 타부서에 대한 이해함 없이 개선만 요구한다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방해자가 되기 십상이다.
'경험'에 대한 개선의 범위는 정말 다양하다. 제품에 대한 보완점을 모아 상품개발팀에 전달하여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개발자와 상의하여 공식 온라인몰에서 간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여 고객들의 결제 단계를 보다 편리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고객지원팀의 고객상담 내용을 분석하여 전화상담 이전에 검색단계에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콜 수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주문, 출고, 발주 등 생산/출고실의 시스템이나 고객지원 게시판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페이지도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끔 리뉴얼하여 내부 직원들의 '경험'도 개선할 수 있다.
어찌보면 남들 다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인력과 리소스의 한계가 있는 작은 회사에서는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수정하거나 개선한다는 자체가 매우 큰 도전이다. 특히 회사나 브랜드가 성숙기에 접어든 곳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한 방이 없다고 '인식'과 '경험'에만 모든 초점을 맞출 수는 없다. 마케터 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의 숙명과 같은 것이겠지만, 마케터는 끊임없이 '확장'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
우리 브랜드는 소재와 기능, 컬러 등에 대한 확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콘텐츠나 기획전,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는 전시회까지 기회가 닿을 때 마다 우리의 확장성을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방수가 되는 기능성 제품은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조금씩 그 포지션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작은 회사는 모든 부서의 초점이 매출 볼륨이 큰 메인 프로덕트에 집중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이미 잘나가는 제품은 마케팅팀이 아니더라도 영업이나 다른 부서에서도 충분히 이야기하고 알릴 것이다. 따라서 마케터는 브랜드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기대하며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 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