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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Aug 21. 2022

호주군 입대 이야기 - 3

압대하기까지의 관문들

호주군 입대 이야기 3


11월 초에 있었던 메디컬어세스먼트는 멜번 시티에 있는 호주군 리크루팅 센터 건물에서 진행했습니다. 기본적인 시력검사, 체중, 신장, 청력 검사부터 문진과 더불어 옷을 다 벗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검사하더군요. 그리고 기본적인 신체능력도 확인(푸쉬업, 스쿼트 등)을 했고요.


그런데 메디컬 어세스먼트를 하다가 생각보터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는 바람에 안해도 될 말을 꺼내게 됩니다. 병력을 물어보는 질문에 6-7살 때 차량에서 떨어져서 쇄골에 금이 간 적이 있다는 것과 10살 때쯤에 ‘알레르기성 자반’이라는 병을 앓았던 적이 있다고 말을 한 겁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어깨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었고, 또 알레르기성자반이라는 병도 그 이후로는 발병한 적이 없고, 어떤 알레르기 반응도 없었는데 이 두 마디 말 때문에 저는 어깨뼈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고, 알레르기성자반이라는 병 때문에 현재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걸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어깨뼈 엑스레이야 그냥 찍어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 제가 어떤 알레르기성 반응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먼저, 피부알레르기 반응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기 위해서 피부과 스페셜리스트에게 전화해서 예약을 잡으려고 했더니 11월 초에 전화를 했는데 가장 빠른 예약 시간이 이듬해 1월 중순이라는 겁니다. 그렇잖아도 지금 8-9개월 째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라 점점 지쳐가고 있었는데 예약을 기다리느라 2달을 허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알고 지내던 한국인 GP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더니 ‘피검사를 자세히 해보고 거기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내가 문제 없다고 편지를 써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피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가던 pathology가 아니라 다른 곳에 검사를 받으로 가게 되어서 안내를 받고 전날 부터 12시간 금식을 하고 아침 일찍 채혈을 하고 검사를 끝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어제 갔던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검사를 하다보니 피가 부족하다고 피를 더 뽑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다시 금식을 하고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오면 된답니다. 긴거민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서 피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피곰사가 나왔겠거니 하고 한국인 GP에게 갔습니다. 검사 결과는 딱히 나쁘지 않았고, 의사선생님이 편지를 써줄 수 있긴 한데, 피검사하는 곳에 의뢰한 것 중 몇 가지가 빠졌다며 다시 피검사를 해야 한답니다. 다행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pathology에 오늘은 사람이 있어서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수 검사를 받고 다시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서 다시 의사를 만났습니다. 평소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살짝 높게 나오긴 했지만 오히려 전체적인 평균보다 낮으니 괜찮을 거라며 알러지에 대한 소견서를 써주어서 그걸 스캔해서 군 지원센터에 보내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프로세스가 잘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전 달리기를 계속 했습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집 근처에 있는 푸티-호주식 축구-구장에서 달리기 시작했는데 구장을 한 바퀴 돌면 약 400미터 가량 되었기 때문에 한 바퀴를 뛰고, 다음 한 바퀴는 걷고-두 바퀴(800m)를 연속으로 뛰는 게 힘들었어요.- 다시 한 바퀴를 뛰었어요. 그렇게 끝. 일주일 동안 그렇게 뛰고 그 다음 주는 두 바퀴를 뛰고 한 바퀴를 걷고 두 바퀴를 뛰고.. 그렇게 조금씩 늘려가서 3개월 쯤 되니 다섯 바퀴(2km)를 뛰고 한 바퀴를 걷고, 다시 다섯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때 쯤 다시 빕테스트를 해봤더니 6.5가 나오더라고요. 그리고는 또다시 죽을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달리기가 조금 늘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조금만 더 노력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쯤 군 입대지원센터 메디컬파트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알러지 관련한 다룬 얘기는 없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기준보다 높으니 콜레스테롤을 어떻게 낮출 거냐고 계획을 짜서 내랍니다. 제가 피검사를 한 곳에서 두번 째 피를 뽑을 때 이런 부분이 살짝 걱정되었지만 ‘설마’하는 마음이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되니 그 검사소가 원망스러워질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계획은 마련해야 하니 다시 그 의사를 만나러 갔고, 의사 선생님은 군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이미 나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식단과 운동에 관련된 계획을 편지로 적어서 다시 주었고 전 그걸 가지고 다시 스캔해서 군 입대지원센터에 보냈습니다. 이제는 걸리는 게 없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는 동안에도 달리기는 열심히 하고 있었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 5개월 쯤 되자 5-7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고-물론 빠른 속도는 아니었음, 페이스는 6min/km 정도- 살짝 욕심이 생겨 한두 번 쉬고 10km를 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간이 지나 2021년 3월이 되었습니다. 달리기 실력은 조금더 늘어서 10km를 딱 60분 만에 뛸 수 있게 되면서 빕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따라서 더이상의 혼자만의 테스트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어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5-10km의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3월 20일쯤, 갑자기 입대지원센터에서 전화가 옵니다. 다음 주에 PFA(Pre-enlistment Fitness Assessment)가 잡혔으니 참석할 거냐고 물어봅니다. 만약 체력검정에 통과하면 4월 6일에 입대할 거라고 말해줍니다. 아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과이지만 너무 급박하게 다가오는 듯 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참여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어서 참여하겠다고 말하고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아내와 두 딸들도 기쁘면서도 슬프다고 얘기합니다. 길고긴 입대지원신청이 끝나지만 입대하면 당분간 떨어져서 지내야 하니까요.


입대를 하면 12주의 기초군사훈련-신병교육-이 있고, 그 후에 10주 간의 직업훈련-제 경우는 운전, 각 직종마다 훈련 기간이 다름-을 받고 자대로 배치되게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열심히 준비했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고 참여 의사를 밝히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3월 26일 PFA 당일,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체력검정이 있다는 시티 근처 Victoria Barracks로 갔습니다. 정문에서 임시출입증을 받기 위해 주어진 양식을 작성해서 내고 인솔자를 따라서 부대 내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같이 테스트를 받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13-14명 정도였는데 저 말고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살짝 한국인처럼 보여서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워낙에 내성적인 성격 탓에 쉽게 인사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테스트가 시작되었는데 진행을 하는 사람이 몇 번을 반복하여 너무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합격선을 넘으면 그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좀더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욕심이 너무 많은 듯- 팔굽혀 펴기는 15화가 아니라 40회를, 윗몸일으키기는 40회가 아니라 80회까지 하였습니다. 좀더 할 여력이 남았지만 달리기를 위해 체력을 조금 비축해 두자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윗몸일으키기를 끝내고 나니 잠시 휴식 시간을 주길래 이때다 하고 다른 아시안에게 말을 걸어 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분은 한국인이었고 제가 나이가 48세라고 하니 깜짝 놀라며 자기는 42세인데 자기가 제일 나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하고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며 반갑다고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그 한국인과는 나중에 호주군입대를 준비하는 그룹을 만들어 보자고 하며 연락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빕테스트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뛰고 있는 세 명의 몸좋은 친구들-나중에 알고 보니 코만도(특수부대)를 지원한 친구들-이 느긋하게 속도를 맞추길래 거기에 맞춰서 뛰었습니다. 래벨 5가 지나고 레벨 6이 지나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레벨 7이 되고 몇 번을 왔다갔다하니 7.5가 되어서 저는 거기서 멈췄습니다. 쾌거였습니다. 4.5에서 6개월 만에 7.5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입대를 위한 최종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입대 오퍼에 사인을 하라고 전화와 메일이 왔습니다. 문서에 싸인을 해서 회신하고 나니 이제 입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곧바로 입대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와서 입대 시 가져가야 할 물품 목록을 보내주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체력테스트가 목요일이었고, 흥분된 주말이 지나고 물품 준비를 하다 보니 일주일이 휘리릭 지나갔습니다. 그 주는 부활절이 있는 주라 금요일부터 입대 전날인 4월 5일까지 연휴였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입대를 하는 겁니다.


이렇개 해서 길고긴 입대 신청이 끝나고 4월 6일에 입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정적인 정부일을 찾아보자고 시작한 것이 군인이 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네요.


나중에 체력테스트 때 만난 분과 한인 ADF 단톡방을 만들어서 열심히 다른 분들과도 소통하고 있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입대하는 날부터 시작되는 애피소드들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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