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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Mar 07. 2017

이듬해

학교에서 뛰어놀다

2012년...

첫째는 멜번에 오자마자 2주 만에 학교에 가야했다. 하지만 둘째는 어렸기 때문에 이듬해인 2012년에 Prep이라는 학년으로 들어갔다. 호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이전에 Prep이라는 학년(올해부터는 Foundation이라고 바뀌었음)이 있어서 언니, 오빠(혹은 형, 누나)들이랑 같이 공부를 시작한다. 2006년 생이 2012년에 학교를 들어갔으니 한국나이로 7살이다.

둘째도 당연히 영어를 하나도 못했기에 친구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아빠된 도리로서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자는 것이었다.

그때는 아직 내가 영어공부를 하던 중이었고 어학원은 오후에 시작했기 때문에 아침마다 내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었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하면 하나둘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둘째-하진이보고 나를 잡으라고 하고 도망을 간다. 그러면 얼굴만 아는 친구들이 하나둘 나를 잡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나는 나름 운동을 잘 하는 편이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라 쉽게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이 늘어나고 7-8명이 되자 도망가는 것이 쉽지 않다.

건물 앞에 있는 농구장을 주로 도망다니다가 이내 건물 뒤로, 다른 건물까지 돌아다니며 숨가쁘게 달려야 했다. 내가 너무 빨리 달려서 아이들이 쫓아오지 못해도 재미가 없기 때문에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달려야 한다. 그렇게 10분에서 15분 정도 달리면 수업 준비 종이 친다. 한숨 돌린다. 처음엔 도망만 다니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부터 잡으러 다닌다. 도망 다닐 땐 쉴 틈이 없는데 잡으러 다닐 땐 요령껏 쉴 수도 있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이들과 이렇게 놀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된다. 내가 일이 있어서 아침에 아이들을 못 데려다주고 아내가 데려다 주면 그날은 친구들이 'Paul(내 이름)'은 어디있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당연히 그 친구들은 하진이의 귀한 친구들이 되었다. 나는 어지간한 친구들의 이름은 모두 외게 되었다.

그렇게 아침마다 뛰어다녔더니 몇 달이 지나자 살이 5-6kg이 빠졌다. 하진이에게 도움도 되고, 살도 빠지고... 일석이조의 이 일은 내가 취업을 해서 출근하기 시작할 때까지 거의 일 년 동안 계속 된다. 덕분에 친구들 엄마들과도 친해지게 되었고 지금도 그때 만났던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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