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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Nov 26. 2019

이봐요 지금 당신 고장났어요!

그는 연극 내내 웃고 있었다

     

우리는 감정에 따라 웃고 울어요. 그런데 때로는 웃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고, 울적해도 힘을 내야하고, 화가 나지만 침착해야 해요. 그거 아세요? 요즘 성형외과에서는 주사로 입 꼬리를 올려주는 시술을 해준다고 해요. 처진 입 꼬리를 올려서 웃는 입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시술을 많이 받는데요. 매일 사람을 보고 웃어야 하니까, 힘을 덜 들여 웃고 싶어서라고 하네요. 그만큼 참 힘든 일이에요. 늘 웃고 있는 것 말이죠.     


오늘 저녁에 연극을 보러 갔어요. 활기차고 재밌는 연극이었지만, 내용에 집중하기는 힘들었어요. 맨 앞 좌석에 앉은 남자 때문에요. 그는 연극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계속 웃었어요. 계속, 꾸준히, 쉬지 않고요. 그 남자의 다양한 웃는 소리들이 연극 내내 배경음으로 깔리는 상황이었죠. 처음엔 낮은 목소리로 헛헛 거리면서 웃다가, 극이 고조되는 순간에는 학학 거리면서 숨넘어갈 듯 웃다가, 배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사를 주고받는 적막한 타이밍에서는 끅끅 거리며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소리를 내더라고요. 


배우들이 주고받는 슬픈 감정 사이를 그 남자의 웃음소리가
무참히 헤집고 다녔어요. 


다른 관객들도 그 남자를 한 번씩 쳐다보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웃지 마세요’ 하며 끌어낼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저 역시 한창 극에 몰입할 타이밍에 짜증스레 비집고 들어오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거슬렸어요. 뭐라도 던져서 저 사람을 기절시킬까, 하는 생각까지 남몰래 했답니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건 그 남자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 웃는 거예요. 남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걸까요, 아니면 웃기지 않은 상황도 웃기게 받아들이게 되는 병에 걸린 걸까요.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한 부분이 고장이 나서, 외부의 어떤 자극도 ‘웃기다’라는 신호로 전달되는 걸까요? 불가항력적으로 계속 웃을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가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죠.     


모든 상황 속에서 일반적인 감정반응을 할 수 없는 일, 또는 그런 장애. 


여기서 일반적인 감정반응이란 뭘까요? ‘일반적으로’ 웃어야 하는 상황, 울어야 할 상황이 있을까요? 어떤 게 웃긴 일이고 어떤 게 슬픈 일이죠? 뇌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화를 내야할 상황에 웃고, 슬퍼야할 상황에 괜찮다고 말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도 다 고장 난 거 아닌가요? 꼭 뇌가 아니라도, 그 어딘가가 말이죠. 우리는 어디가 고장 났을까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고 하던데, 


그 감기는 사시사철 찾아와서 누군가의 일상을 잿빛으로 만들어요. 배우들이 슬픈 감정 연기를 하는 도중에 큭큭 거리며 웃던 그 남자처럼, 우울증을 앓는 누군가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그 순간에 울고 싶은 충동을 느낄 거예요. 그러나 괜찮은 척 잘 참아내고 웃는 표정으로 속마음을 감추면 누구의 눈살도 찌푸리게 할 일이 없어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냥 고장 난 채로 조용히, 그 마음을 감추며 살아갈 거예요.      

우울증도 기침처럼, 재채기처럼,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밖으로 요란하게 터져 나오면 좋을 텐데요. 당신 잘못이 아니고, 당신은 그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게요.      


지금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맞는지 의문스러워져요. 요즘은 부쩍 그러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 눈에 밟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데, 연극을 보며 내내 큭큭거리던 그 남자가 과연 이상한 것이었는지. 비정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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