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연극 내내 웃고 있었다
우리는 감정에 따라 웃고 울어요. 그런데 때로는 웃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고, 울적해도 힘을 내야하고, 화가 나지만 침착해야 해요. 그거 아세요? 요즘 성형외과에서는 주사로 입 꼬리를 올려주는 시술을 해준다고 해요. 처진 입 꼬리를 올려서 웃는 입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시술을 많이 받는데요. 매일 사람을 보고 웃어야 하니까, 힘을 덜 들여 웃고 싶어서라고 하네요. 그만큼 참 힘든 일이에요. 늘 웃고 있는 것 말이죠.
오늘 저녁에 연극을 보러 갔어요. 활기차고 재밌는 연극이었지만, 내용에 집중하기는 힘들었어요. 맨 앞 좌석에 앉은 남자 때문에요. 그는 연극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계속 웃었어요. 계속, 꾸준히, 쉬지 않고요. 그 남자의 다양한 웃는 소리들이 연극 내내 배경음으로 깔리는 상황이었죠. 처음엔 낮은 목소리로 헛헛 거리면서 웃다가, 극이 고조되는 순간에는 학학 거리면서 숨넘어갈 듯 웃다가, 배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사를 주고받는 적막한 타이밍에서는 끅끅 거리며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소리를 내더라고요.
배우들이 주고받는 슬픈 감정 사이를 그 남자의 웃음소리가
무참히 헤집고 다녔어요.
다른 관객들도 그 남자를 한 번씩 쳐다보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웃지 마세요’ 하며 끌어낼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저 역시 한창 극에 몰입할 타이밍에 짜증스레 비집고 들어오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거슬렸어요. 뭐라도 던져서 저 사람을 기절시킬까, 하는 생각까지 남몰래 했답니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건 그 남자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 웃는 거예요. 남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걸까요, 아니면 웃기지 않은 상황도 웃기게 받아들이게 되는 병에 걸린 걸까요.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한 부분이 고장이 나서, 외부의 어떤 자극도 ‘웃기다’라는 신호로 전달되는 걸까요? 불가항력적으로 계속 웃을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가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죠.
모든 상황 속에서 일반적인 감정반응을 할 수 없는 일, 또는 그런 장애.
여기서 일반적인 감정반응이란 뭘까요? ‘일반적으로’ 웃어야 하는 상황, 울어야 할 상황이 있을까요? 어떤 게 웃긴 일이고 어떤 게 슬픈 일이죠? 뇌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화를 내야할 상황에 웃고, 슬퍼야할 상황에 괜찮다고 말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도 다 고장 난 거 아닌가요? 꼭 뇌가 아니라도, 그 어딘가가 말이죠. 우리는 어디가 고장 났을까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고 하던데,
그 감기는 사시사철 찾아와서 누군가의 일상을 잿빛으로 만들어요. 배우들이 슬픈 감정 연기를 하는 도중에 큭큭 거리며 웃던 그 남자처럼, 우울증을 앓는 누군가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그 순간에 울고 싶은 충동을 느낄 거예요. 그러나 괜찮은 척 잘 참아내고 웃는 표정으로 속마음을 감추면 누구의 눈살도 찌푸리게 할 일이 없어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냥 고장 난 채로 조용히, 그 마음을 감추며 살아갈 거예요.
우울증도 기침처럼, 재채기처럼,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밖으로 요란하게 터져 나오면 좋을 텐데요. 당신 잘못이 아니고, 당신은 그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게요.
지금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맞는지 의문스러워져요. 요즘은 부쩍 그러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 눈에 밟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데, 연극을 보며 내내 큭큭거리던 그 남자가 과연 이상한 것이었는지. 비정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