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라는 공상소설에는 ‘소마’라는 약이 나온다. 모두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고독과 갈등, 고뇌, 우울이 용납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소마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에서 구원받는다. '괜찮아'지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소마로 인해 안정적인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멋진 신세계. 이곳의 총통은, 소마를 거부하는 ‘야만인’에게 말한다.
“만일 불행한 우연으로 인해 어떤 불쾌한 사태가 일어나면 까짓것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도피시켜 줄 소마가 항상 준비되어 있네. 분노를 진정시키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 이 말이야.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두세 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
야만인은 총통에게 설득되어지지 않고 더욱 소마에 반감을 가진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변화를 위해 눈물이 따르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이곳에는 희생을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결국 야만인은 소마를 기둥으로 지어진 ‘행복한 문명’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택한다. (그마저 사람들은 흥미로운 볼거리로 여기고 내버려두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행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지만 행복이란 건 마치 오아시스 같다. 몇 걸음만 더 가면 이 지긋지긋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그 지점에 다다라면 오아시스는 또 저만치 물러가 있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행복이란 건 개인이 꿈꾸는 달콤한 미래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사는 우리는 행복에 영영 가 닿을 수 없다’라고,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소마가 있는 멋진 신세계에서는 불만족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도 없다. 소마 한 알이면 불편한 감정은 언제든 삭제해 버릴 수 있다. ‘행복’을 목적으로 사는 세상, 어떤 갈등도 도전도 사색도 격정도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또 다른 감옥이 되어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만드는 감옥 말이다.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만 ‘불행해질 권리’에 대해서는 보통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로 가면 힘들어.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이쪽으로 와.”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쪽으로는 영 길이 없어. 안 하는 게 나아.”
“너 정도면 행복한 거야. 감사한 줄 알고 살아야지.”
이런 말로 다른 사람의 ‘불행해질 권리’를 침범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지혜로운 조언 아니냐고? 문제는 불행해질 권리와 더불어 ‘다른 삶을 선택할 기회’도 막아선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마를 먹는 사람들의 모습에 위화감이 들었다. 그들의 생각, 행동, 대화가 인간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나도 야만인처럼 끝까지 소마를 거부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소마를 삼키고 있었다. 습관처럼 마시는 아이스커피가 그랬고, 퇴근 후에 마시는 막걸리가 그랬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라기보다 일에 대한 거부감이 들 때마다 습관처럼 마시는 아이스 커피는, 피곤하고 지쳐서 도망치고 싶은 몸뚱이를 데스크 앞에 계속 눌러 앉혀 놓는 각성제의 역할을 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 슈퍼에서 산 막걸리는, 오늘의 허무함과 회의감, 현실감을 잊고 스스로를 적당히 다독여 잠들게 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열심히 살았는데 공하하다’라는 생각도 모두 불편하다. 그래서 커피로, 술로 지운다. 이것이 나의 소마였다.
좋아서 마시는 것과 ‘필요해서’ 마시는 것은 다르다. 사실 나는 쉽게 배탈이 나서, 차가운 음료를 별로 안 좋아하고, 요즘은 기본 사이즈가 되어 버린 커다란 아이스 커피는 배가 불러서 다 마시지도 못한다. 그러니 이제 습관적으로 마시는 아이스 커피를 끊기로 했다.
요즘은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작은 잔과 잔 받침, 설탕, 티스푼이 함께 나오는 에스프레소를 보면 기분이 좋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짧은 글을 쓰거나 책을 조금 읽는다. 진한 여운이 있다. 제대로 시간을 누리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만족스럽다.
다시 질문.
나는 야만인처럼 ‘불편한 것’을 택할 수 있을까.
어떤 희생을 수반할 변화가 내 삶에 진정으로 필요할까.
삶의 안락함을 버리고 좁고 험한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서 쓴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쓴다.
인용한 책: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