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랑한 육아 1>_육아의 시작은 대화입니다
부부의 대화가 가진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오늘의 기분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소소한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 되니까. 다들 얼마나 대화하며 살까?
육아의 시작은 대화라고 말하는 육아에 진심인 아빠, 개그맨 정태호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개그맨 정태호는...
많은 유행어로 안방극장을 사로잡던 개그맨에서 연극 제작자와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소문난 애처가이자 육아하는 아빠이다. 개그 프로그램 출연진과 작가의 러브스토리 주인공이었는데, 어느 자리든 아내의 좋은 모습을 전하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의 꿀 떨어지는 눈빛은 두 아이에게 옮겨졌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율이와 5살 시우의 아빠인 그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 메이트이자 엉뚱한 선생님 그리고 든든한 지지자로 함께하고 있다.
“결혼을 할 때도 그리고 서율이가 태어났을 때도 일부러 소문을 냈어요. ‘와이프를 너무 사랑한다’, ‘와이프는 멋진 사람’, ‘아이가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라고 떠들고 다닌 거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게 되면 저를 보는 하나의 필터가 생깁니다. ‘정태호는 가정적이다’라는 필터를 제가 만들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혹여 가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될 때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저를 가정적인 사람으로 바라보고 배려해줍니다. 저 또한 그런 모습에 맞게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연예인이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있다. 보통 개그맨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로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아닌 가정적인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버렸다.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그의 행동과 생각도 변하게 만들어버린 것. 마치 버릇이나 습관처럼 말이다. 자꾸 말하면 스스로 그렇다고 믿게 되고 계속 믿으면 사람도 상황도 변하게 마련이다. 실은 여느 아빠들과 비슷하다며 말하는 수줍은 말투조차 가족을 향한 무한 애정으로 느껴졌다.
“아이들과 무조건 지키는 약속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하나가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저의 모든 시간을 쓰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계속 습관처럼 지켜왔던 일이라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너무 당연한 일이 되었어요. 아내에게 시간을 좀 주자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고 해서 아내가 여유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어렵게 만들어 놓은 엄마의 규칙을 제가 바꿔버리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가끔’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한다거나 아빠가 아이들과 전적으로 놀아주는 날이 있다. 아이들에겐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한 군것질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날이자 그동안 못했던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이벤트 같은 날이다. 하지만 엄마에겐 휴식시간이라기보다 잔소리를 참아야 하는 시간이거나 남편에 대한 불만 게이지가 상승하는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일로 아내와 다투다 보니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왜 아빠들이 밤늦게 조용히 들어오지 않고 겨우 재운 아이들 깨도록 시끄럽게 들어오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그게 아빠들은 미안해서 그런 거예요. 미안한 마음에 늦은 시간에 짧게라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마음인데 엄마는 화가 나는 거죠. 겨우 재웠으니까, 혹은 잠자리 루틴이 바뀌어 버리니까.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그렇게 해결이 안 돼요. 차라리 깨어 있을 때 지치도록 놀아주는 게 낫습니다. 그렇게 습관을 만들어야 해요. 습관을 만드는 게 어렵지, 습관 되면 아이들과 노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오랜만에 놀아줘야지’가 아니라 ‘같이 놀아야지’라고 생각하면 덜 힘들어요.”
요즘 아빠들도 힘들다. 그래도 육아에 소홀할 수 없는 일. 생각을 조금 긍정적으로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과의 관계는 조금 더 가까워지고 아내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습관이 안 돼서 어려운 것이다. 육아를 어렵게 생각하면 끝도 없다. 아이와 함께 아빠도 그리고 엄마도 자라야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진짜 육아다.
“육아와 살림은 단순하게 남편과 아내가 할 일이 정해져 있거나 나눠지지 않아요. 집집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른데, 똑같이 나누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처음엔 서로 이해도가 달라 의견차가 있었는데 결국 대화로 해결이 되더라고요. 대화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는 거죠. ‘내가 주말에 아이들과 이렇게 놀게, 당신이 이거 해줘’ 이런 식으로요.”
아주 간단한 말 같지만,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위한 신뢰와 이해가 필요한 일인가. 육아와 살림은 누구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하다 보면 각자 잘하는 것이 보이고 부족한 부분도 찾게 된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각자 해결하면 사실 육아 분담으로 스트레스받는 일은 줄어든다. 대안 없이 문제 해결을 위한 일방적인 의견 수용보다는 대화가 먼저라는 말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선물했어요. 편하게 쉬라고.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거예요. 제가 선물한 하루를 집안일을 하며 보낸 거죠. 보이는 데 어떻게 안 치우냐는 아내의 말에 그날 좀 다퉜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이 좀 지저분하다고 우리 삶이 어떻게 되지 않고, 영양제 하루 안 먹는다고 아이에게 큰일이 생기지 않거든요. 이미 좋은 엄마인데,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만 노력해도 될 것 같았어요.”
‘보이는 데 어떻게 안 치우나’ 같은 아내의 말들이 남편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집과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여유조차 없는 아내들의 상황을 조금만 이해하고, 미안함을 담아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 그저 아내를 생각해서 하는 말과 행동이었는데, 현실 육아에서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아내와 부딪치면서 깨달아 버린 것이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생각하지 말고 바로 행동하라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집안일을 먼저 해버려요. 집안일에 짜증이 나는 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래요. 혼자 하기는 벅찬데 해야만 하니까. 그걸 바로 알아차리고 힘들지 않게 해주는 게 남편의 몫이 아닐까 싶어요. 아내가 좀 더 좋은 상황이 될 수 있게 어려움을 나누는 거죠.”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 있다. ‘아이를 보랬더니 진짜 아이만 보더라’는 말인데 육아를 대하는 엄마와 아빠의 시선의 차이에서 나온 말이다.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남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터. 괜히 지난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거나 서로에게 엄한 질문을 해서 입장 차이를 확인하지 말고 그의 이야기를 믿어보자.
"육아 분담은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하도록 엄마가 하는 일을 그냥 하면 됩니다."
“한국워킹맘연구소 tv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빠 육아인을 많이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육아 관련된 강의를 찾아보거나 책을 많이 읽기도 합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되돌아보니 현실 육아는 다르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솔루션을 찾았다 하더라도 내 아이에게 딱 맞지 않아요. 내 아이에게 어떻게 맞게 하느냐가 중요한데요. 이상하게도 우리는 가족 안에 있는 답은 찾지 못하고 검색창이나 타인에게서 답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좋은 정보를 얻었으면 우리 가족에 맞게 변형해서 활용하지 않으면 필요 없는 정보가 된다. 아무리 좋은 솔루션도 부모가 내 아이의 성격과 성향을 모르면 적용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한 아이가 ‘해는 어떻게 떠요?’하고 아빠에게 물었어요. 보통 아빠들은 설명하거나 책이나 영상을 찾아서 보여줬을 텐데, 그 아빠는 잠든 아이를 차에 태워 정동진으로 갑니다. 새벽에 아이를 깨워 해 뜨는 걸 직접 보여주려고요. 저런 아빠가 되고 싶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좋은 이야기인 줄은 알겠는데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현실에 타협하게 되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제가 육아에 전담하며 전부 케어할 수 없기 때문에 교육은 아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놀이는 제가 좀 자유롭게 놀아주며 역할 분담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의견 충돌이 있었고 매 순간 대화하며 해결해왔던 것 같아요.”
부모지만 모든 순간에 의견이 같을 수 없다. 서운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생긴다. 유난히 힘든 날 남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못 쳐줄 수도 있고, 지친 날 아내의 이야기에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다. 조금 지치고 힘들더라도 우리의 연결고리인 아이들의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워보자.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가정을 바라보는 아내의 고민을 들어주고, 이상적인 남편이 원하는 육아의 이야기도 들어주는 것. 가끔 시시콜콜하다고 생각되더라도 결국엔 우리 아이들과 가정을 위한 일이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부의 대화가 단절되어 가정을 위해 좋은 이야기를 듣고 와도 집에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연애할 때 같은 마음 챙김이 줄어들게 됩니다. 아이가 부부에게 찾아온 선물은 맞지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 1호는 남편과 아내였음을, 아이보다 먼저 나에게 다가온 선물은 당신이었음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아내에게 잘하면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처음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상 속 편견과 비난이 늘어나는 시대에 서로의 시선이 서로의 마음을 향해 있지 않다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가 행복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마을이 없는 요즘, 부부만이라도 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같은 마음으로 바라봐주어야 할 것이다. 서로 같은 곳을 보고 수없이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함께 성장하는 개그맨 정태호 가족의 미래는 얼마나 행복할까!
관찰자 입장에서 육아는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뜻깊고 유익한 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 육아는 녹록지 않습니다. 분명 행복하고 아름답지만, 힘든 걸 숨길 수 없습니다. 어떤 부부든 누구나 처음 가정을 이루고 나눴던 따스한 마음들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며 사방에서 아무 때고 침범하는 뾰족한 마음들과 험한 말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따스했던 마음은 점점 거칠어가지요.
부부가 서로 다독이며 이해하는 시간들이 있어야 거친 그 순간들이 다듬어집니다. 남편과 아내가 다르고, 엄마와 아빠가 다르며, 너의 가족과 나의 가족이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뾰족하고 거친 자극들은 점점 부드러워질 겁니다. 여자든 남자든, 엄마든 아빠든, 육아는 혼자 하기 어렵고 가정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서로 도우며 아이와 함께 해쳐나가는 것이 진짜 육아니까요.
평범한 엄마의 눈으로 육아를 대하는 아빠들의 진심을 바라봅니다. 그 이야기를 담아 연재를 시작합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칼럼 "아빠가 사랑한 육아"에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