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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Dec 21. 2021

집사람과 바깥사람, 그 오묘한 차이

<아빠가 사랑한 육아 3>_외교관 아빠의 주부 체험기

‘육아(育兒)는 아이를 기르는 과정인 동시에 나를 기르는(育我) 과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두 아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아내의 반복되는 휴직을 바라만 보던 한 남자가 선택한 육아휴직은 그에게 육아(育我)의 시간을 선사했다. 세계를 오가던 외교관이 스위스 시골에서 멋모르고 주 양육자를 자처해 주부로 거듭난 시간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유난히 하늘이 예뻤던 초가을 어느 날, 외교부에서 그를 만났다.


임상우 외교관은..

미국, 이라크, 콩코, 스위스, 브라질을 거쳐 인도양의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주재 대사로 근무한 뒤 국내로 복귀해, 현재 외교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육아휴직 후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고귀한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담아 <스위스 아이처럼, 스위스 아빠처럼>을 썼다.


  육아휴직을 명함

“아내와 저는 똑같이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아내만 커리어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휴직을 이어오며 가정을 지켜왔습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제가 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주어진 여건에 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 거죠. 어느 날 외교부 선배가 한마디 하더라고요. ‘아내도 같은 외교부 직원인데 왜 본인만 일을 하려고 하느냐, 뛰어난 사람 집에서 쉬게 하는 거 아니다’라고 하시는데, 미안함과 당혹감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사회 관습적인 분위기를 거슬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의식하지 않으면 원래 그렇다는 막연한 이유로 스리슬쩍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되니까. 으레 그래 왔으니 아내가 아이를 봐야지, 그러려면 아내가 휴직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각이니 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일도 하는 맞벌이 부부가 익숙한 가부장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결정적 계기로 한번 바뀐 생각은 보다 현명하고 현실적이 된다. 임상우 외교관 역시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을 합리화하기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에 걸맞은 선택을 했다.

그렇게 20년 차 외교관은 해외 대사관의 중견 관리자급 직위의 발령을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명함’이란 인사발령을 받게 된다.  


  스위스 주부 1년 차

“아내에겐 호기롭게 요리를 포함한 집안일에 대해서 일체 신경 쓰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으나 집안일이라고는 거의 해본 적 없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갑자기 주부로 변신할 수 있겠어요. 주부의 역할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훈련 없이도 닥치면 할 수 있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주부를 만만하게 본거예요.”


무엇이든 제대로 해보지 않고는 모를 수밖에 없다. 특히 육아와 집안일은 직접 해봐야,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티가 안 나는 일인지 알게 된다. 누가 주부의 업무 목록이나 강도를 알려준다면 선뜻 주부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는 그렇게 한국 주부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주부 1년 차가 되었다.


“서툰 칼질로 요리를 하느라 피를 보기 일쑤고, 마트마다 특징을 찾아 더 저렴한 프랑스 마트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열일 제쳐놓고 아이 픽업 시간을 맞춰 데리러 가는 데다, 집에서 보이는 바깥양반의 행태가 맘에 들지 않아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결국 주부로 변신한 지 한 달 정도 지나 예전의 목 디스크는 재발하고 손에 물이 닿으면 참을 수 없이 아프기까지 했어요.”


그의 책 <스위스 아이처럼, 스위스 아빠처럼>을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 부분이 꽤 많다. 웃음의 포인트는 아마도 ‘공감’ 일 것이다.

‘정말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주부로 살다 보니까 사무실에서 일할 때와 달리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회사처럼 출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눈 뜨는 시간이 출근이고, 잠드는 시간이 퇴근이었다.’란 부분은 아마도 오롯이 살림을 맡기 시작한 세상의 모든 주부들이 겪는 진통과 같았을 터. 직접 주부가 되어 겪은 주부 생활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그는 점점 주부에 대한 존경심이 드높아졌다.


“저의 어머니가 저에게, 제 아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대단한 희생 덕분에 제가 그리고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었던 거잖아요. 제가 2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아이 두 명을 키워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희생의 결과였단 사실을 몸으로 직접 깨닫게 된 거죠. 집에서 희생해야 하는 주부의 역할에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극한 직업인 ‘주부’라는 이름으로

“이라크에 파병한 자이툰 부대 내 연락사무소에 파견되어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개인 경호와 함께 이라크 북부 지역을 종횡무진 다닌 적도 있고, 수도 한복판에서 시가전이 발생하여 수백 명이 죽은 지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은 콩고에 발령받아 대사관을 창설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 주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설마 주부가 이보다 극한 직업이겠어?’란 안일한 생각을 했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부서 간 협조도 긴밀하고 판단이 명확해진다. 결과에 따른 책임도 본인의 역할 내에서만 해내면 된다. 하지만 육아와 살림을 해내야 하는 주부는 매 순간 엄청난 판단과 추진력을 가지고 결정을 해야 한다.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아이들의 건강이나 미래의 가치관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일이 꽤 많다.


“주부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을 매일 해내지만 사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인류 역사 내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저평가된 부류가 바로 우리의 엄마이자 아내라는 게 믿어지지 않죠. 2년밖에 안 되는 짧은 주부 생활이었으나 직장 생활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위기 상황에 직면했고 순간순간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으며 하루 일과가 끝날 때면 허투루 쓴 시간 없이 정말 최선을 다하여 하루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나의 담당 업무가 미래의 주역이 될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어떠한 일보다 중요하다고 가치 있음이 분명했죠.”


안타까운 건 이런 인식의 전환은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 국한된다는데 있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상상했던 대로 주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진다면 주부의 위상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전에 어떤 노동이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주부가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주부가 되고 보니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기득권을 갖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정말 내가 아무런 노력하지 않고 그냥 남자니까 누릴 수 있었던 일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부의 세계 즉 가정 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환경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유럽 특히 스위스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전통적인 사회로 꼽힌다. 특히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국가 중 하나다. 스위스 칸톤(스위스의 행정구역) 중 아펜젤러 칸톤은 1991년에 가서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을 정도.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집으로 와서 엄마가 차려준 점심을 먹어야 하고, 아이들의 픽업 역시 엄마나 할머니가 맡으며, 생일파티나 플레이 데이트 등의 약속을 잡는 것도 엄마들의 몫이니 아이들과 늘 함께 있는 아빠인 그를 보면서 스위스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본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2년 차 주부가 되었을 때 그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문화센터에 불어 강좌를 신청했다. 휴직 중인 남편이라 자기소개를 했더니 일제히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봤다는 에피소드는 유럽 각지에서 남편을 따라 이주해온 여성들의 의식 역시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집사람과 바깥사람이란 정체성

“주부를 선택하고 집사람이 되다 보니, 바깥사람이 이해가 되면서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오곤 했습니다. 퇴근 후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와도 엄청난 일을 하고 온 마냥 피곤해하면 못마땅했고, 특히 퇴근 후 집에까지 일을 싸 갖고 와서 밤에 일할 때는 서운하기까지 했어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것이 힘든 것은 이해되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바깥사람이 아닌 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어렵더라고요.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집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한국에서 매일 야근하던 수년간의 세월은 까맣게 잊은 채 야근하는 아내를 원망하기 바빴던 거죠.”


집사람이 되어 기다리는 신세가 되면, 바깥사람이 퇴근해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막상 돌아오면 반갑다가도 힘든 내색을 보이거나 소홀한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꾹 참았던 분노가 올라온다. 특히 집사람과 바깥사람의 정체성이 바뀌는 초반에는 성별을 막론하고 바깥사람의 행동거지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 개인의 사적인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회사의 문화 때문임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게다가 아내의 행동도 점점 바깥사람이 되어가는 거예요. 빨래를 아무 데나 둔다든가, 서랍을 열고 닫지를 않거나, 물병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물을 엎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사다 달라고 부탁한 물건을 잊어버리고 퇴근하는 일은 부지기수고, 아이 픽업을 부탁했던 날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던 날도 있었네요.”


집사람과 바깥사람으로 정체성과 역할 바뀐 이후 정작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내심 가사노동과 육아를 평가절하하며 밖에서 일하는 아내가 주부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


“서랍을 열었다 닫지 않은 것은 회사에서 부장님을 위한 보고서를 기안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기안이 잘못되어 부장님의 수정 요구가 왔는데 대답만 하고 안 고치는 사람이 있을까요? 서랍을 닫아달라는 요구에도 서랍을 닫지 않는 건 부장님의 수정 요구에 대답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거랑 같아요. 제가 보기에 기안과 서랍은 같은 가치인데 바깥사람인 아내가 보기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육아휴직을 스위스에서 하다 보니 세월의 분노가 차곡차곡 쌓인 주부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는 성역할의 차별을 떠나 가사 노동의 가치에 대한 편견에서 오는 서로의 입장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가 집사람이 되든 온종일 기다린 배우자를 충분히 배려하고, 과도한 요구에도 귀 기울여 조율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육아 분담의 비교우위론

“육아와 가사노동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맡아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보니, 업무처럼 역할을 확실히 나눌 순 없더라고요.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이지만 막상 현실에서 행동에 옮기는 건 힘들죠. 그래서 자신이 잘하는 것 중에서 비교우위가 높은 것을 맡으면 가정에 좀 더 기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제가 주방과 일상적인 집안 일을, 아내가 셋톱박스 같은 기계적인 부분을 맡아서 해왔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전과 달리 역할분담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를 양보하거나 포기하며 각자의 삶을 지키고자 하지만, 출산과 함께 균형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타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없다면 역할분담의 균형은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부를 경험하고 나니 정당한 평가와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좌절감과 분노를 부르더라고요. 주부들의 이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저처럼 극단적인 경험을 하면 인식의 변화는 바로 할 수 있지만, 모든 남편들이 그럴 수는 없지요. 남성 위주의 사회가 한 번에 바뀌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유럽의 경우는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어요. 절대 안 되는 일은 아닌 거죠. 천천히 사회 전체가 변하려면 치열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도출하고 그걸 토대로 어린아이들부터 교육을 시켜야겠죠. 우리와는 달리 지금의 신혼부부들은 마인드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도 이미 그 과정에 접어들었을지 몰라요.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필요해요.”  

 

 가족이라는 공동체

“작년에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부부가 모두 출근을 합니다. 감사하게도 장모님이 저희와 함께 지내시며 아이들도 봐주시고 식사도 챙겨주고 계십니다. 6년 만에 처음으로 식사 준비 걱정 없이 지내니 허전할 줄 알았는데 행복하더라고요. 역시 주부는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나 봅니다.”


그는 장모님 덕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환하게 웃으며 장모님의 배려에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가족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상황에 따라 역할도 바뀌고 가사분담도 바뀌게 된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 더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불편한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지 살뜰히 챙기면 앞서 생겼던 주부들의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올 일도 얼굴을 붉힐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스위스에 갈 때 만 6세였던 영민이가 중학생이 되었고, 만 3세였던 정민이는 초등 4학년이 되었습니다. 외교부의 특성상 주말이나 저녁시간이 자유롭지 않을 때도 많아요. 그럼에도 가능한 저녁 시간에는 아이들과 운동을 함께 하고, 주말에는 식사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컸다고 자신들의 세계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들 기억에 아빠는 밥 챙겨주는 아빠니까요.”


그는 최근에 아이들과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바로 주방을 자주 활용하는 것. 본인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칼을 잡고 요리를 시작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은 직접 만들어 먹고 좋은 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조금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칼 쓰는 법, 불 사용법부터 시작해 물을 끓여 스파게티 면을 삶고, 달걀을 삶아 에그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전수해주고 있어요. 할 때마다 잔소리는 계속되지만 미리미리 배워두면 좋잖아요. 저처럼 고생하지 않고 준비된 상태로 사회로 나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해결이 힘든 문제가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면 이익을 위해 회의와 설득을 거쳐 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 힘들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협상하고 타협하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가 평가절하 되고 주부의 인권 보장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약자로서 약속 외교를 이끌어내듯 어린아이들부터 변화된다면 아이들이 자란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미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 그의 책 <스위스 아이처럼 스위스 아빠처럼>의 모든 수익은 마다가스카르 고아원으로 기부되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주부로 지낸 2년간의 육아 일상과 아이들과의 좌충우돌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참고해주세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웹 칼럼 "아빠가 사랑한 육아"에 연재된 글입니다.

https://www.betterfuture.go.kr/front/notificationSpace/webToonEdit.do?articleId=236&listLen=6&cateNo=109&positio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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