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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Dec 28. 2021

그렇게 찐 아빠가 된다

<아빠가 사랑한 육아 4>_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의 시간

사회에서 기대하는 역할에 맞춘 꽤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온 남자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아이가 태어나고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 떠졌다. 육아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최선호 작가를 만났다. 


최선호 작가는...

대기업에 다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의 발령지에 맞춰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네시아에서 전업 육아 아빠로 살았다. 그때의 일상을 <샐리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로 남겼다.  


 우연과 선택  

“숙취에 힘들어하던 주말 아침, 아내가 매력적인 해외 연수 프로그램 선발 안내문을 보여줬어요. 흔쾌히 도전을 응원했죠. 저는 별생각 없이 몇 개월을 보냈지만 아내의 도전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이 제 걱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휴직을 하고 가족이 함께 가기로 했었거든요. 망설이고 미루며 버티다 회사에 휴직 의사를 전했고, 소심한 제 성격에 직원들의 반응은 멘붕 그 자체였습니다.”


아내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가 최선호 작가에게는 뜻밖의 선택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남성 육아휴직이 그나마 자유롭다는 대기업에서도 휴직 의사를 밝히는 일은 엄청난 고민과 굳은 결심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휴직 선언 후 제가 받은 느낌은 암묵적인 압박이었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천성이 소심한 저에게는 쉽지 않은 나날이었어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스스로 무능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의 눈빛을 견디기 어려워 피했던 것 같아요.”

 

보통의 직장인은 타인의 시선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쉽다.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던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저 잘 쉬면서 육아를 하는 것이 아닌, 육아휴직의 이유를 스스로 정한 것이다.


<샐리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육아휴직의 가장 큰 목적은 낯선 환경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아내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틈틈이 생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면, 휴직이 누군가 희생하는 개념이 아니라 가족이 다 같이 윈-윈 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2년 동안 3개국 육아 

“아내의 첫 근무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였어요. 국제학교에 입학허가를 받는 과정도, 낯선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첫 출근보다 떨리는 첫 등교일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어른도 힘들었을 적응기간 동안 샐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도 못했어요. 툭하면 짜증을 내고 울어대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 잡기가 어려웠죠. 그때 다양한 육아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갔던 것이 지금까지 아이와 제가 소통하는 방식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육아는 먹고 입히고 재우는 과정이 다가 아니다. 특히 아이가 커갈수록 옆에서 채워주어야 하는 것들이 바뀐다. 아이와 나의 성향에 맞는 방식을 찾고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이 중요함을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자카르타에서 6개월의 시간이 흐르자 아내의 다음 근무지가 정해졌습니다. 여행으로 몇 차례 방문했던 홍콩이었는데, 막상 거주지가 되니 전혀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하지만 휘황찬란한 홍콩 하늘 아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든 게 리셋됐죠. 따뜻하고 정 많은 자카르타의 향수가 샐리를 울적하게 만들었지만 아이 특유의 적응력은 또 다른 추억과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저 역시 홍콩에서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하이킹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나갔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란 아이나 어른이나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가족이란 울타리가 있다면 서로 도우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다. 특히 육아는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가족의 소통과 협력을 토대로 현지의 친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만든 관계를 통해 아이의 관계도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육아의 중요한 역할이 된다. 


“세 번째 국가는 말레이시아였어요. 이제 초등학생이 된 샐리와 함께 저 역시 쿠알라룸푸르에서 가까운 대학교의 MBA를 도전했습니다. 일 년이란 해외생활의 경험이 생기니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나름의 육아 기준도 생겼어요.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언어, 종교, 인종이 공존합니다. 항상 샐리에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강조했는데, 이곳의 환경은 그 가치관을 직접 보여주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었어요.”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을 가진, 여러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야 안젤루는 ‘부모들은 이제 다양성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또 강함이 존재한다는 점을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가르쳐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샐리에게 바라는 열린 생각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자녀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이가 직접 겪고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때야 말로 다양성이 가지는 진정한 힘을 깨닫게 된다.  

Photo by Aliko Sunawang on Unsplash

 그렇게 찐 아빠가 되었다  

“결혼 전에도 남자나 의리 등의 표현이 오글거렸어요. 주변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는 했지만 저의 생각에 변하는 없었어요. 육아휴직 전에도 살림에 능숙하고 요리를 즐기는 아빠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부장적인 아빠도 아니었죠. 아내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제가 육아휴직을 선택해 살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이 샐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로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불합리한 상황들이 있다. 반대로 남자로 자라면서 주변에서 강요당하는 불합리한 상황도 있다. 이런 사회적인 상황들에 불만이 있더라도 대부분은 어쩔 수 없거나 원래 그렇다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것이 옳지 않음을 표현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간다. 


“딸이 태어나고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내의 상황을 딸아이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건데, ‘나중에 이 아이가 커서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시선으로 아내나 여자 동료들을 보면 이해가 되고, 샐리가 사는 시대에는 이런 상황이나 시선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샐리는 학부모 참석 모임에 아빠가 오는 것이 당연하고 도시락을 싸주는 아빠의 모습이 익숙하다. 세상에는 여자 일, 남자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아이는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도 생기지 않는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 세상이 되길 원한다면 일단 부모부터 바뀌어야 한다. 아이에게 성별의 차이보다 존중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니까.  


 맨 박스에 갇히지 않으려면 

“<A Call to men>이라는 TED 강연을 보셨나요? 작가님도 꼭 보세요. 맨 박스(Man Box)란 개념은 ‘남자’에 대한 집단 사회화 개념입니다. 감정을 드러내거나 두려움을 보이는 것은 남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남자는 여자의 보호자이고 여자는 소유물과 같다는 식의 개념을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사회가 주입을 시키고 있다는 말인데요. 남자는, 남자가, 남자니까 남자답게... 저 역시 어려서부터 계속 듣고 자란 말입니다. 의식을 하고 들으면 지금도 회사나 사회에서 무척 자주 들리죠. 맨 박스에 따르면 남자의 육아휴직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저 역시 남자라는 에고가 생각보다 강하고 맨 박스에 갇혀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추천으로 찾아본 강연은 엄청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강연자는 ‘저의 남자로서의 해방은 여성으로서 여러분들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다’라고 강연을 시작하며, ‘여자 같이 행동하지 말라고 하면 남자아이들에게 여자에 대해 더 이상 뭘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휴직 후 출국 전까지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녀오는 아이를 픽업하거나 놀이터에 데려가면 괜히 혼자서 창피한 거예요. 주변에서 ‘남자가 왜 저러고 있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 거죠. 결국 저 역시도 남자답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창피함의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출국했으니 타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자카르타 학교는 학부모의 참여 요청이 많았어요. 엄마들 사이에 가는 것은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저는 묻지도 않은 휴직 중인 제 상황을 설명하게 되더라고요. 아내의 회사 모임에 참석했을 때에도 내조 중인 저는 가족 테이블에 앉아야 했지만 직장동료 테이블에 앉아 대화에도 못 끼고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알고 나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그동안 나를 옭아매던 보이지 않는 맨 박스를 뚫고 나오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아빠의 힘이 느껴진다. 이런 아빠들이 그리고 엄마들이 많아진다면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선택을 강요받거나 맨 박스 적인 사고의 틀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민감하게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저 역시 맨 박스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아이와 함께 들었을 때는 말의 의미에 관해 피드백을 해줍니다. 또 샐리에게 ‘사람답게’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려면 저부터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갈 길이 멀죠.”  

 

 쪼잔함에 대하여 

“휴직 중에는 보통 저녁 6시쯤 되면 저녁을 준비합니다. 밥 먹고 설거지까지 끝나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기분이죠. 그런데 가끔 아내가 회의 중인지 연락이 안 되거나, 정확한 퇴근 시간을 알려주지 않고 둘이서 먹으라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되게 중요한 이슈인데 알아서 하라는 쿨한 반응에 더 화가 났어요. 샐리를 재우고 생각해보니,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알아서 다 하고 지금의 저처럼 화를 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입장이 바뀌고 보니 초라해지는 기분마저 들었었나 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대단하고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나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뀌는 일상은 누구에게나 혼란스러움을 준다. 하지만 그때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 한들 해결되지 않는다. 차라리 나의 과거를 돌아보거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것이 집안의 평화를 위해 더 필요하다. 


“육아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으니 육아 부심 같은 게 생겼어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나니까 내가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당연히 더 많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가끔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자카르타에는 Wacky Hair Day라고 특이한 머리 모양을 하고 가는 날이 있는데, 그날엔 고난도 머리 묶기 기술이 필요하죠. 또 아주 가끔 요리를 하는 아내가 제가 못하는 음식을 선보이는데 심지어 맛도 있을 때가 있어요. 가장 속상했던 날은 샐리의 친구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들었을 때인데요. 매일 샐리와 각자의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는 부녀 사이인데 그 중요한 일을 아내에게 먼저 하다니, 서운함과 복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제가 전업 아빠라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육아는 혼자 해낼 수 없다. 함께 해나가는 육아가 힘들지만 보람된 이유다. 육아에 매몰되다 보면 마음도 좁아지기 마련이라 가끔 넓혀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가 자꾸 독점적 육아 영역을 구축하고 싶었던 건,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불안감이었을지 모른다. 


“육아를 하다 보니까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복직에 대한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자카르타와 홍콩에서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와 아내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지냈던 것 같았어요. 불쑥 올라오는 불안감에 다툼이 생기는 것보다 나의 세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근처 작은 도시의 대학교에서 1년짜리 MBA에 도전했습니다. 솔직히 말레이시아 대학교의 MBA가 저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1년 동안 나의 세계가 되어준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중합니다.”


그가 처음 세운 육아휴직의 목표는 win-win이었다. 육아휴직이 누군가의 희생이 아닌 서로를 돕고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수시로 찾아오는 내적 갈등도 이어지겠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은 분명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줄 테니 말이다.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처음에는 제 육아휴직의 경험이 남들에게 공유할 만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있었던 에피소드를 정리하기에도 시간이 꽤 걸리더라고요. 더 재밌고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애니메이션 일을 하는 말레이시아의 친구가 생각나서 그림 요청을 했습니다. 에피소드를 쪼개서 그림과 같이 정리하니 그럴듯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편씩 SNS 채널에 올렸는데 호응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너무 즐거웠어요.”


우리 모두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같은 듯 보여도 전부 다르다. 출산과 육아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비슷한 과정 같아 보여도 모두 다른 세계다. 맞고 틀리고, 위대하고 하찮은 이야기가 없이 그저 다른 것이다. 


“복직을 위해 저만 먼저 귀국했어요. 샐리는 아직 엄마와 함께 말레이시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매일 같이 있다가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생기니까 처음엔 편했죠. 매일 챙기던 아이의 도시락이나 집안일을 할 게 없으니 시간도 남았어요. 아시겠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더라고요. 매일 보고 싶어요. 특히 밤에 운전하는데 눈앞의 불빛과 잔잔히 들리는 노래가 순간 갑자기 외로워요. 샐리와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아내와 아이가 너무 보고 싶고요.”


이제는 감정의 기복 없이 돌아볼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됐지만,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는 뒤죽박죽일 때가 많았으리라. 절절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일은 육아휴직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동질감과 공감을 주며 도움을 줄 것이다. 미약하게나마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샐리가 어른이 되어 가끔 꺼내보며 추억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이 되어주지 않을까.  


* 그의 책 <샐리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_말레이시아, 홍콩, 인도네시아 체류기>에서 더욱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나보세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웹 칼럼 "아빠가 사랑한 육아"에 연재된 글입니다.

http://www.betterfuture.go.kr/front/notificationSpace/webToonEdit.do?articleId=239&listLen=6&cateNo=109&positio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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