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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Feb 03. 2022

느린 아이와 보통 부모

<아빠가 사랑한 육아 6>_아이 성장의 스페셜 리스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가 좀 특별한 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안타깝게도 별로 없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함께 가는 것뿐. 아들이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만화가 특유의 상상력은 아이의 노년까지 상상해내며 부부를 힘들게 했지만, 그들은 매일 수많은 대화와 공감으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정성 가득한 만화로 사회 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이정헌 만화가를 만났다. 


이정헌 만화가는..

웹툰과 출판만화를 기본으로 시사만화와 캐릭터 일러스트도 작업하고 만화 강의도 한다. <파락호 김용환>, <괜찮아요, 우리는 천천히 가족>, <함께 걸어요, 비단길>, <오각의 하늘> 외 다수의 작품을 그렸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한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만화가이자 해맑은 비단이 아빠다. 


 조금 천천히 느리게 자라는 아이 

“아마도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누구나 비슷한 과정을 겪으셨을 겁니다. 초반에는 충격을 받고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을 많이 하죠. 부모들마다 자신의 방법을 찾아서 어떻게든 이겨내 보자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과정 중에 틀리기도 하지요. 그러면 또 시도하고 다시 일어나고 또 앞으로 가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부모가 되는 일은 대부분 처음 겪는 일이기에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로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어떤 부모든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한다. 하물며 장애아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 부모 성장의 스펙트럼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집 앞 놀이터를 나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피하고 싶고 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 안에서 자라는 비단이를 보며 익숙해졌어요. 저희 역시 노력하며 배우는 것들도 많아서 이제는 힘든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이 작가는 좌충우돌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아이와 함께 살아갈 세 가족을 떠올리며 불안을 잠재웠으리라. 조금 더 천천히 세상을 알아가게 될 아이에게 불안이 퍼지지 않도록 말이다.   


 만화로 전하는 또 다른 세계 

“비단이를 키우며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보도 많지 않아 버거웠지만 비슷한 처지의 가족과 단체들의 도움으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도움을 받은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고민했습니다. 제 만화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이라도 바뀔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품들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시사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였지만 비단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 직간접적으로 장애와 차별에 대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그의 소개에 빠지지 않는 문구인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의 의미를 물었다.


“장애를 비롯한 소수자와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약자인 모두가 공동체 안에서 어느 정도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비단이를 비롯해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생각한 말이죠.” 


그는 아내와 함께 작품 활동도 해오고 있다. 비단이 육아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부부가 함께 시나리오를 짜고,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혀 <함께 걸어요, 비단길>, <괜찮아요, 우리는 천천히 가족>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편견과 불편한 시선 사이에서 육아를 하며 겪은 상처와 고통보다 아이를 통해 얻은 기쁨과 환희가 더 컷을 것이다.


“제가 최근에 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발달장애에 대한 얘기가 들어가고 인식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제 그림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발달장애에 대한 생각을 알리고자 해요. 그러면 인식의 높이가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비단이가 비장애인들의 세상에서 차별 없이 한 명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디딤돌 하나 놓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합니다. 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불편해하고 무서워할 수 있거든요. 저와 아내가 하는 작업은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Photo by Rod Long on Unsplash

 서로의 페이스메이커 

“직업의 특성상 일이 일정 시기에 몰립니다. 시기적으로 몰릴 때를 아니까 이제는 서로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눠지게 되더라고요. 일이 몰릴 때는 작업실에서 숙식도 해결하기 때문에 주말부부처럼 지낼 때도 있습니다. 오로지 아내가 육아를 전담하게 되더라도 저희 부부에게는 저희만의 소통 방식이 있어요. 어떤 방법이 비단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전제로 하고 대화를 하면 언제나 저희 가족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부부여도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고 맞춰줄 수 있는 사이가 되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수없이 많은 의견을 맞춰왔을까. 작은 다툼과 해결의 과정이 모여 서로를 이해하는 거름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부부의 원동력은 그들의 노력에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만큼만 만족하려고 합니다. 보통의 가족 구성원의 능력을 1이라고 하면 저희는 모두 조금씩 부족한 0.7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의 0.7씩을 더해서 비단이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방식이 저희 가정의 최선의 방법이에요.”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억지로 참고 해낼 수는 없다. 아이의 성장이 나의 생각과 달리 더디더라도 억지로 시킬 수도 없다. 모두 각자의 속도가 있고 방식이 있듯이 가정마다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최대한의 에너지를 서로에게 사용할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방법을 그들은 찾은 것이다.


“제가 밖에서 일하면서 돈을 버는 절반은 아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내가 아이를 키우는 절반의 노력은 제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집 안의 일과 바깥의 일을 구분 지어 역할을 나누기보다 우리 집에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지 고려했던 것 같아요. 육아를 하며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희에게는 아이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부족함 없이 제대로 받게 하는 게 조금 더 중요하다고 인지하고 있었거든요.”


재활을 위한 특수교육은 일반교육에 비해 비용이 높다. 내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육아의 방식을 결정하고도 남는다. 목표에 이르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 끈끈한 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족은 누구 봐도 이상적이죠. 저희의 상황에서는 지금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맡은 부분에서 노력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거든요. 제가 바빠도 일에 매몰되지 않게 아내는 비단이의 여러 상황을 매일 공유해줍니다. 전처럼 매일 함께 해주지 못해도 비단이에게 아빠는 꼭 있어야 하고, 지금 제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육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아도 긴 마라톤에 비유되곤 한다. 힘들어도 묵묵히 제 길을 뛰어야 하는 마라토너처럼 부모도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야 한다. 긴 육아 마라톤에서 앞서가는 사람이나 뒤처지는 사람보다 필요한 건 옆에서 함께 뛰어줄 페이스메이커 같은 서로가 아닐까.    


 비단이를 위한 스페셜 리스트 

“아빠는 역시 놀이 담당이죠. 요즘에는 게임도 자주 하고 밖에서 신나게 뛰어노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같아요. 비단이는 현재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알게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가 있을 거예요.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놀이로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노력해요.”


그는 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건이 되는 한 아이와 관련된 많은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다.  


“작업실에서 며칠 만에 집에 왔을 때 비단이가 실컷 놀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떤 특정한 날에 아빠가 꼭 왔으면 좋겠다고요. 약속한 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저는 겨우 약속을 지킨 것이라 크게 생각을 안 했는데, 비단이에게 그 일은 본인이 요청하면 아빠가 오는구나, 아빠가 오니 기쁘구나, 다음에도 아빠가 오면 좋겠다는 별거 아닌 일들에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특별한 일이 되더라고요.”


최근 비단이네는 주말농장 가꾸기에 열심이다. 불편함을 감수해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도전 중이라고. 그는 요즘 아내가 비단이 성장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간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 저희에게 가장 큰 목표는 비단이가 잘 자라는 것이고, 우리는 잘 자랄 수 있게 케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비단이와 함께 우리 부부도 성장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과정이 저희의 커리어가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 자체가 시나리오일 수 있기에 아내와 함께 비단이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놓칠 수 없고 작은 순간도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하는 말에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감사하니까.


“사실 저희 부부는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보다 어떤 상황이 되는지에 맞춰 움직이게 됩니다. 아이나 아이 학교가 저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아서 상황에 집중하며 관찰하고 있어요. 아직은 괜찮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다른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있을 수도 있고, 선생님과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모든 과정들을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그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뭉클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대와 좌절이 오갔을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통합이 힘들어질 겁니다. 비단이 스스로 느끼는 아쉬움과 답답함, 고립감이 분명히 있을 거라서 이런 마음관리도 같이 병행이 되어야 할 거예요. 그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너 힘들구나’를 알아주는 것이 최선의 지원이라고 생각해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헤쳐 나갈 이유와 다양한 방법을 미리 찾아두고 닥쳤을 때 겁내지 않고 함께 한발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낙관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부부는 오늘도 수많은 대화를 한다.   


 더 자주 보여줘야 공감할 수 있음을 

“제 작품에 발달장애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발달장애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더 알려질수록 따가운 시선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이건 개인적인 잘잘못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성숙도의 문제 같습니다. 그래서 더 알려지고 공감을 불러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뷰 섭외를 진행하면서 필자 역시 이런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알려지기 꺼려해 생각했던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던 것. 하지만 이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역시 발달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편견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높지 않다고 말씀드렸던 건 사람들이 알려고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희 쪽에서 숨기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애 가족은 주변에 알리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죠. 비장애 다수의 세상에서 당연히 소수자가 되는 상황과 감정들이 공유되어야 공감을 통해 비장애인이 무지하지 않은 상황으로 조금씩 변화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 공감도 필요하고 가정에서도 공감은 필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만났던 아빠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공감과 대화를 꼽을 수 있다. 자신의 상황만큼 아내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야말로 부부생활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많은 분들이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고 가정이 움직이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아는 것은 아내죠.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세요. 그리고 공감해주세요. 공감하는 수준만큼 가족이 잘 지내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 가족도 비장애 가족도 그저 아이를 키우는 보통 부모다. 부모로 살아가는 삶이 녹록지 않아도 힘들고 기쁜 과정이 오가는 똑같은 하나의 가정임을 이해하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웹 칼럼 "아빠가 사랑한 육아"에 연재된 글입니다.

https://www.betterfuture.go.kr/front/notificationSpace/webToonEdit.do?articleId=242&listLen=6&cateNo=109&pos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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