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롱지다 May 01. 2024

그리고 다시, 시작

2405010727

소개받은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앉아있는 자세만 보고도 단번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다는 듯 ‘서서 일하면 더 힘들 텐데...'라고 말했다. 높낮이 조절 책상을 산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어떻게 아셨을까나 궁금해하는 순간 선생님은 발목이 틀어져 있어 제대로 서고 걷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더 악화될 거란다. 그럼 발목은 왜 틀어졌나요? 물으면서 내심 '너무 오래 앉아 일해서 그렇다'는 답을 기대했었다.


"그거 선천적이에요! 한 오십 년 잘 버티다 탈이 난 거죠. 자, 보세요. 특히 왼쪽 발목이 바깥쪽으로 돌아가 있죠! 그러면 다리 안쪽 근육이 거의 쓰이지 않아서 약해져요. 약해진 근육에 세월이 쌓이면 무리가 오겠지요. 그럼 염증이 생기고 통증을 유발합니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관절염으로 양쪽 종아리가 바깥쪽으로 휘어져 O자 다리가 될 수 있어요. 밭일을 많~이 하신 할머님들처럼요."


선생님은 치료라는 말대신 '바로 잡으라'는 문장을 썼다. 긴가민가 의아한 내 표정을 살피던 선생님은 자신의 자세를 보라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당신도 허리 쪽 척추 3곳에 연골이 없지만 등받이 없는 바퀴 달린 의자에 잘 앉아 있다며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이게 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파악해서 적절한 운동을 하면 뼈를 보완할 근육에 힘이 붙으면서 통증이 사라진다. 무엇보다 자신의 진료와 운동처방을 잘 따라와 주면 대부분 3~4회 정도면 그만 내원해도 된다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선생님 참 멋지세요! 아니 아니 자세가 참 멋지세요!"




넉 달 전 회사를 휴직한 이후 무릎을 구부리고 펴는 동작에서 동반된 '헉'하는 아픔뿐만 아니라 걸을 때조차도 묵직하고 찌릿한 통증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한 인어공주가 육지에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눈물을 뚝뚝 떨어질 만큼 아픔을 느꼈다고 하던데 아마도 내가 느끼는 통증이 그와 같지 않았을까. 아무도 모르게 인어공주가 되어버린 나는 고된 회사일이 거북목과 복부비만과 골다공증을 불러 결국 직립보행의 권리마저 빼앗아 갔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자 복직을 생각하기만 해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암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도 아픈 건 치료를 해야지 싶어 병원을 찾아다녔다. 선생님들은 딱히 원인이 뭐라 단정해주지 않고 그저 내가 말하는 원인에 고개를 끄덕일 뿐. 회당 2~30만 원이 넘는 체외충격파와 도수치료만이 나을 수 있는 길이라며 실비로 환급받을 수 있으니 10회 이상을 권장했다. 그러나 치료 후 일시적인 차도만 있을 뿐 이틀을 넘기지 않고 다시 동일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물 흐르듯 사라졌다.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이 소개한 집 근처 정형외과병원에서 확신에 찬 젠틀한 용모의 선생님과 핸섬한데 건장하기까지 한 물리치료사를 만났다. 그들이 가르쳐준 대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걷는 방법을 연습하고 다리 안쪽 근육을 쓰는 운동을 3주가량 꾸준히 했다. 어느새 나는 말짱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다리를 들어보고 천천히 일어나 다시 앉아 보고, 허리를 돌리거나 발목을 돌려본다. 그 어떤 동작에도 이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았다. 대부분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래, 건강이 최고지!'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테지만... 나는 그보다 회사 일이 통증의 원인이라는 내 믿음이 '잘못된 전제'였음을 깨닫고는 한참 동안 멍해졌다.


어제는 복직 첫날이었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직장인처럼 까만 정장바지와 트렌치코트를 입고 출근시간보다 20분가량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휴직 전 사놓은 초록색 슬리퍼가 여전히 내 자리 한 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직원들은 따듯하게 맞이해 주었고 대표는 점심만 사주고 사라졌다. 발주처와 서너 번 메일을 주고받고 협력업체와는 줌 회의를 했다. 아무랄 것 없는 사무실 일상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갔다. 오히려 ‘누구의 남편, 엄마'라는 역할 놀이에서 벗어나 나로서 나를 오롯이 느끼는 시간이라 편안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잘못된 전제를 인정하고, 전제를 '바로 잡으니' 세상 풍경이 이렇게 달라지는 듯싶다.




지난 토요일 딸과 쇼핑을 하고 조그마한 파스타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있다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자 절로 이게 사는 낙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는 모르지.. 내가 일해서 너랑 네 오빠가 좋아하고 필요한 거 사주고 먹일 수 있어서 엄마는 참 좋다!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아니 괜찮아. 근데 엄마 이렇게 막 써도 돼? 보통은 말이야... 벌어놓은 돈에서 소비를 하잖아. 엄마는 왜 안 그래?  


"응... 이제 나 돈 벌잖아. 연말까지 깔아놓은 카드할부금이 있긴 하지만 뭐… 그게 또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 열심히 살아봐야지!”


(근데 그 카드할부금의 8할은 다 니 네 거야... 재수학원비, 피부과 레이저 치료비, 모발이식비)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과 필연의 작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