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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시절이 언제였나 묻는다면 입시준비로 미술학원을 다니던 때가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한 장면을 꼽으라면 휴일 아침의 정경이다. 그날은 눈을 뜨자마자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50분가량 지하철을 타고 가 아무도 없는 학원 문을 열었다. 좋아하는 석고상 앞에 이젤을 펼치고 새하얀 2절 켄트지를 이젤에 고정시킨 뒤 능숙한 칼놀림으로 서너 개의 연필을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둔다. 그러고선 가만히 석고상을 올려다본다. 이윽고 쓱쓱 흑연이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형태를 잡고 음영을 넣어가는 나의 뒷모습이 기억 너머의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학력고사 시절 대학마다 입시전형에 정해진 여러 석고상이 있었지만 대개는 아그리파, 줄리앙, 비너스, 카라칼라, 니오베, 아리아스 중 하나였다. 나는 단연 아그리파를 좋아했다. 아그리파는 소묘를 시작하고 기본도형의 명암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 만나는 첫 번째 석고상이다. 다른 석고상에 비해 늙고 못생긴 얼굴상이어서 나는 만만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러나 2년여의 입시기간 중 가장 많이 그려본 석고상이 아그리파였음에도 그릴 때마다 어려워져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바로 그 지점이 이상하게도 나는 맘에 들었다.
참 재미있는 게… 소묘 입문자가 그린 아그리파는 하나같이 젊다. 아무리 닮게 그려보려 눈을 크게 떠봐도 이제 막 3개월이 될까 말까 한 우리들(나와 학원 친구들) 눈에 담긴 아그리파와 켄트지에 그려진 아그리파의 간극은 최소 30년의 세월을 넘나들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야 만 보이는 무수한 면들이 처음엔 보이지 않아서 또는 그릴 재간이 없어서 얼렁뚱땅 그려낸 이마와 볼, 눈과 입매는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가진 재능과 노력의 편차를 고려하더라도 대개 6개월에서 1년의 수련시간을 거치면 점점 켄트지 속 아그리파는 제 나이를 찾아간다. 그때서야 비로소 소묘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매일 아그리파를 바라보며 어제는 안 보였던 또는 보이지만 그려낼 수 없는 면들을 찾아 그려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좋다'는 표현만큼 그때의 감정을 뭉뚱그릴 수 있는 단어는 없는 듯싶다. 온전히 행복했다고 쓰기엔 코앞에 닥친 입시의 불안이 마음 한편을 쿵 누르고 있었고 즐거웠다 하기엔 내리 네다섯 시간을 반강제로 앉아 꼬박 그리고 나서 친구들의 그림과 비교당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짊어진 채 분초를 다투는 규칙적인 일과,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어쩌면 입시가 우선이어서 그 어떤 변수에도 휘둘리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지만), 그런 시간이 만들어 낸 실력, 그로 인해 아그리파를 비롯해 웬만한 석고상은 다 그려낼 수 있다는 유능함과 자신감이 길러지는 그때의 시공간을 나는 ‘가장 좋았다’는 문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하루도 변수 없이 지나가지 않는 일상을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껏 읽고 들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 앞날을 가늠키 어려워 하루하루를 꼼꼼히 각인하던 중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게 되었다. 주름진 이마, 처진 볼살, 말캉한 이중턱을 차례로 만져보는데... 그때가 생각났다.
30년 전에 비해 참 많은 면이 생겨났고 그 수만큼 음영이 졌다. 아그리파의 얼굴에서 느꼈던 당혹감을 이젠 내 얼굴에서 느끼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만만한 상대일 테고 또 누군가한테는 어려운 대상이 되겠군... 읊조리다 당당히 세월 앞에, 늙음 앞에 무릎을 꿇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