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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보여!"
점심을 먹는데 아들이 이 말을 툭 던진다. 엄마는 일할 때가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행복한가 봐 그러고선 씩 웃는다.
"그래 보여? 그런가! 요즘이 그런가 보네..."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나니 '행복'이란 단어의 뜻이 새삼 궁금해졌다. 세상에 흔하디 흔한 말 그러나 좀처럼 내 것이 되기엔 소원했던 그 단어가 나는 늘 낯간지러웠다. 그것은 늘 과거형이거나 미래형이었지 현재형인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랬나... 행복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부터 풍선과 신기루가 세트로 그려졌다. 짐작조차 못할 멋진 선물들로 가득 찬 거대한 풍선. 가까이 다가가면 싹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내 눈앞에 나타난 행복의 모양은 딱 그랬다.
[행복(幸福)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부풀어 오른 풍선을 팡 터트려 머리 위로 사라지는 수많은 선물 중에 작디작은 선물 하나를 겨우 낚아챈 느낌이랄까. 사전의 뜻은 의외로 소소했다. 그렇군. '흐뭇한 상태'라면 나는 요즘 꽤 행복한 상태가 맞다.
몇 주 전 키보드 위를 톡톡 뛰어다니는 손가락을 보고 웃음이 났다. 쭈글쭈글 주름졌던 손등과 손가락이 매끄럽고 윤기까지 반지르르 흘렀던 것이다. 썸에서 연애로 넘어가기 직전 남자친구(현 남편)가 나의 손을 슬쩍 잡았던 그때. 25살의 나의 손은 참 고왔다. 잡으면 착 감기는 보드라운 손맛까지 있어 내가 내 손을 잡아도 기분이 좋아졌는데 나를 사랑하는 이에겐 오죽했을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는 내 손을 잡으면 하루종일 잡고 싶어 했다. 바로 그 손이 내 눈앞에서 춤추고 있다.
20여 년 간 물기 마를 틈 없이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면서 손등의 힘줄이 불거지고 손마디는 남편의 결혼반지도 꽉 끼일 만큼 굵어졌다. 핸드로션을 발라도 거칠어진 피부결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는데 집안일을 완벽히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엄마모드의 강박을 버리니 어느새 20대 손이 찾아왔다. 남편에게 이 손을 내밀며 나는 최소한의 집안일만 하며 남은 생을 살겠노라 선언했다. 그는 '그러든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비단 스스로를 집안일에서 해방시킨 것만이 행복을 선사한 것은 아니었다. 아들은 복직 후 한결 편안해진 내 모습에 일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할 테지만 실은 쉬는 동안 일상을 입체적으로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니 해야 할 일과 하기 싫은 일, 하고픈 일의 명분이 정확히 보였다. 명분이 보이니 구분할 줄 아는 지혜도 덤으로 생겼다. 그리고 그 일들을 원하는 시간에 하면 되는 자유의지가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오늘의 흐뭇한 상태를 만들었다. 번외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 맘껏 징징거리거나 단호하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서 더 그렇다.
이젠 남편과 아이들 눈치를 살피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집밥은 하고 싶을 때 한다. 매주 시부모님을 뵈러 다 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데려가는 일도 하지 않는다. 수당 없이 회사대표가 아무렇지 않게 퇴근 무렵이나 주말에 일을 시킬 때 단박에 거절할 줄도 안다. 그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세상은 그런 법이다. 내가 하면 당연한 줄 알고 안 하면 또 그런 줄 안다.
그러니 누군가의 요구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것은 나의 선심인 것이지 나의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