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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리 Oct 07. 2019

과잉된 자의식의 변죽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 : 과잉된 자의식의 변죽

 영화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는 다큐인 듯 다큐가 아닌 듯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영화의 감독이자 출연진인 안무가 최승윤 씨는 영화 내에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한다. 최승윤 씨는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지원금으로 무용 공연을 만드는 일을 하기보다는 무용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영화는 영화의 전사를 스스로 설명하며 자신의 의도를 친절하게 밝힌다. 그러나 결국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는 감독이 이루고자 하는 의도를 단 하나도 성취하지 못한다.


 78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루하다. 영화가 지루한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숨어 있지만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장면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관객들은 주로 짧은 장면들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영화적 언어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긴 장면이 선사하는 영화 경험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만든 긴 장면’에서 영화의 다양한 언어를 흥미롭게 목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긴 호흡의 장면이 흥미롭지 않고 지루한 이유는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긴 호흡의 장면들에 어떤 주요한 포인트가 있는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 내에서 기계처럼 반복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최승윤 감독과 그 감독이 관찰하는 5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감독이 그 5명의 인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관찰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구조가 획일적이고 반복적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인물을 보여주고 감독 자신과 그들이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거리, 아파트 입구, 엘리베이터, 현관문 앞을 똑같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그들 한 명 한 명을 만난 감독이 그들과 ‘춤’에 관한 ‘영화’에 관한 자신들의 생각을 털어놓는 식으로 구성된다.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반복’을 구상한 건지는 알겠다.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에서 시인이자 버스 드라이버인 패터슨의 반복적인 일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미묘하게 다른 작은 것들을 포착하고 그 작은 변화가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반복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에서의 반복은 전혀 그러한 포착에 주위를 귀 기울이지 못한다. 개개별로 다른 인물들의 독특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즉흥적이면서도 핵심적인 포착을 하지 못한다. 카메라는 똑같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고 미세한 관찰을 시도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관찰하는 시늉을 하고 있을 뿐이지 전혀 아무것도 관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겉돌고 고루하고 원론적인 것이다.


 감독은 진솔한 질문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하는 질문과 대화들을 만들어 낸다. 거기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카메라를 너무나 신경 쓰고 있는 멋들어진 말들, 마치 기자가 던지는 것 같은 질문들 그런 것들을 통해 이 영화가 그럴싸하게 포장된 빈 통이라는 것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 2019 부산국제영화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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