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오리 Oct 05. 2019

독립적인 복종

영화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학과 피학의 세계는 마치 보수적인 가치 속의 여성과 남성처럼 서로 다르지만 상대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 그것들은 한 몸이고 둘의 합은 마치 하나의 완결성을 띄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해해야만 그나마 우리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관에 턱걸이라도 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정상적인 것으로 낙인 되어 있는 가학과 피학의 세계를 우리가 이해 가능한 형태로써 매력적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BDSM을 다루는 여러 영화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를 더욱 갈망하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에 주력했다. 일례로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가 그러했고 ‘스티븐 세인버그’의 <세크리터리>가 그러했다. 그러나 ‘제이 피 발케아파’ 감독의 영화 <개는 바지는 입지 않는다.>는 그러한 기존의 소재적인 한계를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갈등과 성장을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결국 관객들이 그 성장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에 성공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외과의사인 주인공은 아내를 잃은 아픔을 가진 사내다. 슬하에 딸 하나가 있고 그 딸을 엇나가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의욕이 없는 삶,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만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혀에 피어싱을 하겠다는 딸을 따라 들어간 클럽의 지하공간에서 변태적으로 보이는 스테츄를 발견한다. 호기심에 손을 뻗은 찰나 누군가가 채찍을 그의 손을 향해 휘두르고 그녀는 바닥에 꼬꾸라진 그를 제압한다. 이후 그는 그때의 강렬한 경험을 잊지 못하고 다시금 그 공간을 찾는다. 그는 점점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변태적인 ‘놀이’에 집착하게 되고 그 ‘놀이’를 통해 아내를 잃은 상실감, 죄책감을 마주하면서 병적인 집착을 드러낸다.

 BDSM에 관한 인식을 일부러 제외하고 영화를 바라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영화는 아내를 잃은 주인공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서 로맨틱한 감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로부터 벗어난다. 지탱할 것이 없는 삶, 편부모 가장으로써의 고단함,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고 인정하게 되는 한 인간의 결심 혹은 다짐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소재의 강렬하고 자극적인 표면을 벗어나 ‘인간’을 비춰주는 영화라는 하나의 창구로써 그 역할을 넉넉히 수행한다.


-2019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