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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Dec 29. 2022

힘든 날에는 사과를 먹는다

일상의 번아웃을 이겨내는 방법

"아! 사과!"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어둑한 새벽에 짐을 챙겨 나갈 때였다. 공항 셔틀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아슬한 시각. 나는 신을 신다 말고 친구네 냉장고 문을 열어 전날 밤 씻어 둔 사과를 챙겼다. 힘든 프로젝트를 끝내고 소진되었던 때, 기분 전환과 휴식을 위해 제주도로 떠나던 날이었다.


그 바쁜 시각 사과를 챙겼던 것은 그 사과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가져서였다. '나를 위한 선물' 같은 의미랄까.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워커홀릭'이라는 평을 듣는 나는 종종 지치는 줄 모르고 일을 하다 종종 번아웃을 맞았다. 그렇게 번아웃이 왔을 때, 그럼에도 아직 휴가를 떠날 수 없는 그런 타이밍에 나는 과일을 구매했다. 여름에는 수박이나 참외, 포도를- 가을엔 감이나 배를, 겨울엔 사과나 천혜향 등의 과일을 손에 들고 귀가했다. '반드시 과일을 구매하겠어!'라고 다짐했다기보다는- 그런 시기에 마트에 가면 나도 모르게 과일코너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근 전에 꼭 사과 반 쪽이라도, 방울토마토 한 알이라도 입에 넣고 집을 나섰다.


예전에는 단순히 바쁜 기간에는 외식이 늘고 정갈한 집 밥을 먹을 기회가 줄어드니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과일로 식이섬유를 채우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물론, 몸이 절로 알고 '식이섬유'가 많은 과일을 바라는 것도 맞겠지만, 요즘은 그 행위가 내가 나를 달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아직은 쉴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너를 잘 돌봐줄게. 내가 너를 이렇게 위하고 있어. 그러니 힘을 내!' 이런 메시지를 아삭한, 또는 즙이 풍부한 과육을 씹는 느낌을 통해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거다.


'어른'으로 불리고, 부모님이나 동료들에게도 더는 징징거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힘듦을 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 때면 자주 징징거리고 싶고, 우는 소리를 하며 마냥 기대고 싶지만- 사실 너무 과도하면 그 행위가 듣는 이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내 짐을 덜자고, 타인을 과도하게 괴롭힐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힘든 날에는 과일을 먹게 된다.


힘든 시간이 돌아왔다. 밥벌이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맡은 일을 잘해보고 싶은 욕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은 그 욕구가 내게 채찍질을 해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잘하고 싶은 것도 나고, 그 결과 너덜너덜 녹초가 되는 것도 나인 것을. '채찍을 휘두르는 나'도 잘 다독여 템포를 조절하고, 한편으로는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녹다운된 나'를 잘 다독이기도 해야 만족스럽게 삶을 꾸려갈 수 있을 테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귀갓길에 마트에 들러 7개 9,900원을 주고 크고 잘 익은 사과를 사 왔다. 점점 더 비싸지는 과일 값에 놀라면서도 나를 위해 이쯤이야! 하고 과일을 사 줄 수 있어 만족스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갈아 넣어 일을 해 돈 번으로 나를 달래기 위해 과일을 사는 아이러니라니!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런 아이러니가 가득한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사 온 겨울 부사는 아삭한 식감에 달콤한 맛까지 더해져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나는 또 며칠을 더 버텨내고 이 어두운 터널의 시간을 빠져나갈 수 있을테다. 사과의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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