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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Jan 24. 2023

회사를 좋아하면 안 되나요?

직이 아니라 업을 하라던... 동료의 말을 떠올리며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주제 중 하나는 D에 관한 것이다.


주중 내내 생각하고, 금요일 밤부터 끓어오른 생각이 토요일 오전이면 폭발하듯 넘쳐 오르고

일요일 오전 즈음 잠시 소강되었다가 일요일 오후부터 다시 끓어오른다.


대체 휴무를 포함한 이번 명절연휴 4일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를 만나 등산을 하면서도

"언니 그런데 지난주에 말이야, 내가 왜 D 때문에 화났냐면..."

"그런데 **은 우리가 그동안 소개하던 것과는 거리가 있거든, 그런데 계속하는 게 맞을까?"

"언니, 그런데 내가 성격이 진짜 너무 모난 거야? 궁금한 게 많아 묻는 건데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언니, (언니 말은 다 알겠고) 나 진짜 고민인데- 이렇게 복잡할 때는 어떻게 정리하는 게 좋을까?"

하는 식으로 등산이야기를 하다가, 점심 메뉴 이야기를 하다가 자꾸만 D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누가 들으면 D는 최근 좋아하게 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 법 하지만... 놀랍게도 이 D는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다. 주중에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우리 팀의 업무와 유관부서 협력 업무, 그리고 회사의 문화와 전략 방향성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주말이 되면 여기에 더해 지난주 일을 하며 동료들과 나누었던 대화나, 트러블 생겼던 문제들이 벌컥벌컥 떠오른다.


나는 회사가 좋다. 아니 이 회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플라스틱이 없는' 제품을 만들고자 진심으로 노력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금보다 더 보편적으로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가 목표가 아닌 탓에 늘 '함께', '공존', '친환경'을 고민하고- 따라서 이에 수반되어야 하는 '합리적이지만 수평적인 의사결정 방식', '성장', '존중', '배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이런 '가치'대화 이외에도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방법, 그리고 최고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는 아주 복잡한 회사다.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 "순이익이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치'를 '매출'만큼 중시하기 때문에 사실 나는 너무 혼란스럽고 고민도 깊어진다. '돈'을 목표로 하는 회사들이 '기능 좋은 물건, 품질 좋은 물건'과 '편리한 서비스'만 고민해도 30년을 가는 기업이 손에 꼽힐 만큼인데- 가치까지 생각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그 덕에 돈이 아닌 '가치' 기반의 '단기 순이익' 측면에서만 본다면 손해 보는 결정도 종종 한다...ㅜ) 그런데도 자꾸만 '이 회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에 초조해지고, 회사 전체 전략에 동의가 안되면 '자꾸 저 전략이 맞을까?'고민하고, 검증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난 원래 열심히 일하는 부류의 사람이지만, 이번엔 내가 생각해도 몰입의 정도가 좀 심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네 회사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고민할 이유가 있어?", "집에 돌아오면, 너도 네 사적 생활을 위해 고민해야지." 하는 말을 종종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늘 '그렇지, 내 회사도 아닌데 내가 좀 과하지-'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곤 한다. 그렇게 과도하다 생각하면서도, 문제는 몇 분 되지 않아 다시 회사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는 사실이다.


2년 전쯤 읽고, 인생의 책 리스트에 자리를 잡은 '스토너'라는 소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책의 주인공 스토너는 한 대학교의 '교수'인데,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찌어찌 교수가 된 사람이다. 교수가 된 이후에도 이렇다 할 빛나는 직업적 성과로 이름을 날리지 못했고, 가족과도 불화했으며 사랑했던 연인과도(사실상 불륜의 형태였고) 그 사랑을 끝까지 이루진 못했다. 이렇게 보면 참 불행한 인생 아니었나? 싶지만, 사실 그 우중충한 분위기의 소설 속 스토너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기 직업을 좋아했고, 그것을 붙들며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내내- 사람 사이에서 큰 사랑을 얻지 못하고 '학문이 좋아 조용히 학문 속에서 부유하다가 뚜렷한 업적 없이 죽은 사람의 생'은 나쁜가? 하는 질문을 했었다. 그에 대한 내 답은 '본인이 좋았다면, 남들이 연민해도 사실 좋은 거 아니야?'였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사랑받고, 더 안온한 관계를 맺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것도 기질적으로 안 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스토너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것은 '일에 대한 생각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라는 주변인들의 질문과, 사실 나 스스로 '얼마나 더 내 시간을 투여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회사가 나를 평생 먹여 살려줄 것도 아닌데... 나는 이렇게 온통 회사를 생각해도 되는 걸까? 삶의 다른 측면을 더 고루 생각해야 하지 않나? 나는 자꾸만 절로 '과도하게 일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뭘까? 아니 그러면 되는 이유는 뭘까?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은 '회사'라는 말을 '업'으로 바꾸면 말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회사가 나를 버려도, 또는 내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결국 나를 먹여 살릴 것은, 내 시간을 채워줄 것은 결국은 '회사'가 아니라 '내가 해 나갈 나의 일'이니까 말이다. 사실 매일매일 회사에서 마주하는 업무와 복잡한 관계들, 내 개인의 욕구와 조직의 욕구 사이에서의 갈등 등- '회사에서의 너의 매일이 행복하냐?'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좋아하는 동료와 '좋아한다.'말하기엔 좀 애매한 동료들이 있고,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일과 '아 진짜, 하고 싶지 않아.' 생각하게 되는 일도 산적한 곳이 바로 '회사'니까.

그럼에도 잘 되었음 하는 이유는 아마 좋은 가치와 의도를 가진 회사이기 때문이고, 기왕 힘들다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과도 잘 맞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들이 내게 '흥밋거리'를 제공하며, 결국 그 흥미를 기반으로 노력하여 뭔가를 이뤄냈을 때- 그것이 연봉으로 직결이 안된다 한들(... 되어야겠지만 ㅋㅋ) 그 경험은 내 머릿속에, 몸속에 문신처럼 남을 것임을 안다.


억울하게도 연휴 내내- 크게 한 것도 없이 D가 불쑥불쑥 찾아왔다. 그럴 땐 키워드 검색도 해보고, 메일함도 열고, 메모함도 열어서 열심히 메모하는 나를 바라본다. 죽을 때 '일'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였으면 좋겠지만, '일'로 충족할 수 있는 기쁨도 충분히 느껴본 상태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 말고 '도대체 내가 이 회사와 함께 정확히 하고 싶은 게 뭔가?'를 좀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남들이 '측은하다!'말해도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흥미로움'과 '만족스러움'에 가깝다면 내 삶에 있어서는 '열일'이 정답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쓴 글이라 '스토너'에 대한 줄거리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맥락 파악용으로만 참고해 주세요. 하지만 [스토너]는 분명 좋은 소설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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