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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Jan 31. 2023

지난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경험은 문신처럼 몸에 새겨진다.

1. 이직을 했다. 이직 전 나는 6개월간의 ‘자기 고용 기간’을 가졌다. 내가 그 기간을 ‘백수’ 즉, 흰 백에 손 수라는 단어로 구성된 ‘일이 없는 기간’이라 부르지 않고 ‘자기 고용 기간’이라 부르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고용해 무언가 생산성 있는 일을 해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이 6개월간의 자기 고용 기간의 성과는 1. 여행 책 원고를 쓴 것 2. 출간 계약을 성사시킨 것 3. 궁금했던 분야에서 일해보기(결론적으로, 이 분야는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2. 이렇게 ‘자기 고용 기간’의 성과만 나열하니, 그 기간이 꽤 성공 적여 보이지만 반면에 이 기간은 ‘불안’의 시기이기도 했다. 사실상 생활비는 ‘내 통장’에서 충당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비어 가는 잔고를 보며, 그리고 책 출판 계약까지 마치자, 그러니까 하루 24시간 동안 해야 할 어떤 생산적 목표가 사라지자 마음속에 슬금슬금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3. 이 무렵 나는 다시 조직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다. 애초에 ‘자기 고용 기간’을 가진 것도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기간이었지, 완벽히 독립한다! 가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자기 고용 기간 동안 나는 ‘혼자’ 보다 같은 문제를 ‘동료’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생활/업무 공간이 어쩔 수 없이 분리되는 직장생활(물론 100% 재택근무 조건이 아닌 경우지만!)이 밸런스 있는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 문제는 이 결심 후부터였다. 아무래도 마케터로서의 ‘직무’ 관련 공백이 있었으니,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상상하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경력직인 내가 ‘6개월’의 공백동안 직무를 온전히 손에서 놓고, 책을 썼다는 말을 회사가 받아들여 줄까? 쉬면서 업무에 대한 감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두려움을 만들었다.

5. 그럼에도 나는 꼭 지원하고 싶은 회사에만 지원했다. 여러 차례의 이직을 하면서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없다면 조직생활을 밀도 있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돈만큼이나 내 ‘시간’이 중요한 나로서는 하루 8시간 이상을 돈을 벌기 위해 ‘무의미한 행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6. 그렇게 평소 관심을 가졌던 브랜드에 입사 지원을 했다. 이미 한 두 차례 연봉 조건이 맞지 않거나, 기업에서 내가 탐탁지 않아 입사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지원서를 제출한 뒤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놀랍게 원서 제출 2일 만에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람인의 ‘지원자’ 수는 가볍게 100명 이상을 훌쩍 뛰어넘었었기에,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연락을 받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7. 면접은 즐거웠다. 회사는 내가 제출한 포트폴리오로 내가 어떤 업무를 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고, 내 가치관과 기업의 비전이 잘 맞는지 등을 확인했다. 나는 회사가 내게 뭘 기대하는지, 나는 **이 중요한데, 그런 것들을 이 회사에 기대해도 되는가?를 확인했다. 딱딱하지 않았고, 꽤 유쾌하게 대화해서 좋았다.

8. 그리고 얼마 후 입사 제의를 받고 그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나와 면접을 봤던 분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J님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이 사람이 그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내용을 쓸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같이 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9. 그 말을 들었던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마케터로서 공백이 있던 6개월만 생각했지, 지난 수년의 마케터로서 살아왔던 시간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10. ‘경험’은 힘이 세다. 온몸으로 겪으며 지나온 시간들은 몸과 머리에 어떻게든 자국을 남긴다. 그 ‘자국’은 나와 이미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나조차 조 잊고 살아가기 일쑤지만, 결국 필요할 때 내 몸의 일부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마치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1년 수영을 쉬어도, 물속에 다시 들어가면 알아서 수영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11.  이 모든 경험을 하며 문득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 그 시간에 했던 나의 노력과 경험들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쉽게 평가 절하하는 나의 ‘노력’의 시간들이 결국은 몸에 차곡차곡 남아 미래의 나를 위기에서 건져주고, 더 즐겁게 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2. 살다 보면 어떤 날은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왜 이렇게 사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내가 선택해 겪기로 한 고생이라면, 그 시간이 기꺼이 내 몸에 잘 축적되어 결국엔 내 몸을 구성하고, 내 능력치가 되어줄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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