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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Sep 02. 2023

아무도 몰래 학자금을 갚았다.

學자금의 이율은 이름과 달리 상당히 높았다.

나는 17년도 첫 수입이 생긴 이후부터 23년까지 아무도 몰래 학자금을 갚았다. 

아무도 몰래 학자금을 갚았다는 의미는, 내가 학자금 대출로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가족 이외에는 누구도 몰랐다는 의미이며, 마찬가지로 비밀리에 갚는 날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입학 연도인 12년도부터 발생한 빚은 약 3천만 원가량이었고 여기엔 개인적으로 쓸 요량의 헛된 생활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 rupixen, 출처 Unsplash


어쨌거나 저쨌거나 월급에 비례하여 연 1-2백 정도를 의무상환 하였고 성과급이 들어오면 성과급의 절반가량을 또 성실히 납부했다.

성실히라는 말의 기준은 여기서는 조금 예단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나의 학자금 대출은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대출금을 납부하였기 때문이다.




© ecees, 출처 Unsplash


12월 초가 되면 장학재단에서는 나의 거취를 신고하라며 부지런히 메일과 문자를 보내고 4월이 되면 올해의 의무 상환금액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나는 연말 즈음은 늘 서글픈 마음으로 거취를 신고하였다. 그리고 돈을 납부할 수 있는 계좌가 열리는 가장 첫날 입금을 하였다. 6월이 넘어가면 회사로 대출정보가 가기 때문이었다. 미리 돈을 완납하지 않으면 월급에서 자동으로 차감되는 촘촘한 시스템이 바로 학자금대출이었다. 나는 매년 필사적으로 인사담당자가 내 월급만 수동으로 작업하기 전에 의무상환액을 완납하고야 말았다.





© moneyknack, 출처 Unsplash


5월 31일 이전에 돈을 내지 못하면 급여담당자는 내게 학자금대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건 내가 다니는 작은 회사에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5월은 성가시고 예민한 미션이 있는 달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공인인증서 재발급이, 장학재단 사이트의 괴랄하고도 주기적인 비밀번호 변경이나 가상계좌번호 채번과 같은 일.




나의 대학 친구들은 어째서인지 소득 분위가 10분위거나 회사에서 지원을 해 줬다. 공무원의 딸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대출 아닌 부모님의 지원으로 해결을 했다.

나는 학자금을 지원해 주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시절 부부 공무원의 자녀는 꽤나 유복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았다. 소득 분위가 10분위인 친구들은, 볼멘소리는 했지만 매 해마다 가족여행을 다니곤 했다. 학기 중에 며칠씩 결강하고 해외를 다녀오는 친구를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 duonguyen, 출처 Unsplash

인터넷 세상에는 알바와 학교를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에는 학자금 대출이 아니라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하거나 학기 중에도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인터넷에는 말이다.

나와 친구들은 이런 문제와 영 동떨어진 대화를 했다.

그 문제는 친구들에게는 아니고 내겐 맞았으므로 그저 나는 모은 돈이 없는 헐거운 소비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가끔은 생활비 대출을 받아서 기숙사 비를 냈고 또 마구 쓰기도 했다. 헛되게 마구 쓰면서 친구들에게 여 보란 듯 펼칠 때도 있었다. 봐봐, 나는 태생적으로 돈이 없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잘 써서 못 모은 거야. 그래서 없는 거야.

물론 아무도 묻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 rupixen, 출처 Unsplash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사실 성실한 근로자이며 정직한 채무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상환하고 남은 대출금이 천만 원에 못 미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약간의 억울함과 뿌듯함으로 가족들에게 축하를 요청했다. 學자금의 이율이 상당히 높았기에 매년 원금을 3백만 원 정도씩 갚으면 4년이면 충분했다. 이제까지 갚아나간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올해 4월이었다.

승진을 하긴 했는데, 어쩌면 소득 구간이 바뀐 것도 맞을 것 같은데 상환 고지서에는 잘못된 숫자가 찍혀 있었다.

700만 원.



미친. 욕이 절로 나왔다. 이걸 한 번에 어떻게 갚아?

아무도 나에게 한 번에 갚으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5월 30일까지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나에겐 줄곳 마이너스 1천6백만 원이다가 드디어 플러스가 된 통장이 하나 있는데, 월급을 열심히 모아서 어느덧 4백만 원이라는 잔고가 생긴 통장이었다.



© andretaissin, 출처 Unsplash

잔고를 덜어다가 상환을 했다.

마이너스 삼백만 원.




헛헛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서 가족들에게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장하다고 얘기해 달라고도 덧붙였다. 돈은 다 갚았는데 예민함이 따라왔다.

나는 언제 플러스가 되지?




© tamanna_rumee, 출처 Unsplash

사람들은 나에게 저축을 좀 하라고 얘기한다. 모은 돈이 없다, 마이너스 통장이 꽉 찼다고 얘기하면 낭비를 그만하라고 한다. 내내 그런 말들 속의 나는 자제력이 부족 한 척, 헛된 돈을 쓴 척 부끄럽게 웃고 말았다. 그게 좋았다.



그리고 보라. 

나의 낭비는 끝이 났다. 


나의 낭비는 정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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