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자주해."
내 말을 들은 K는-K는 나의 오랜 연인이다.- 자기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냐며 서운한 기색을 잠시 보이고는 요즘 많이 힘드냐며 걱정해 주었다.
K는 내가 그의 삶의 전부라고 종종 말하는, 나를 무척 아껴주는 연인이다. 가끔은 나도 그런 그의 마음이 신기할 정도로 그는 나에게 꾸준하고 깊고 다정한 사랑을 준다. 지금은 연락을 끊은지 몇 년 된,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어떤 남자애는 자기 애인이 바뀔 때마다 '너를 만나는 데에 내 평생의 운을 다 썼다.'라는 글과 함께 SNS에 사진을 올리곤 했었는데, 내가 정말 그렇다. 내 30년 인생에 운이 좋았다고 할 무언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K를 만난 일이다.
그런 그에게 요즘 뛰어내리는 상상을 한다고 말하는 나는 잔인한 연인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회사를 피해 다녔다. 도무지 나는 회사라는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나를 잘 팔기 위해 외모를 단장하고,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정장을 갖춰 입고, 이력서에 넣기 위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잘 팔릴 수 있는 문장들로 내 인생을 예쁘게 포장한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운 좋게 서류에 통과라도 되면 눈을 부릅뜨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 내가 일시키기 좋은 사람인지 분석하려는, 태어나 처음 보는 면접관들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미소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숨 막혔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그런 내가 결국 회사에 다니고 있다니. 역시 먹고사는 문제 앞에 개인의 치기 어린 자존심 따위는 하찮을 뿐인가.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사실 나는 이전부터 사회에 속해 있었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곧 사회에 나온 것이라고 동일시하기엔 보통 말하는 사회는 더 큰 무언가지만- 나는 역시 사회에 나오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결국 들고 말았다.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나 자신이 위태로워 보일 때, 정신이 아픈 것도 나고 그 정신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도 나일 때 나를 지켜야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나는 나를 지키는 마지막 수단으로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이제는 남산 공원에서 남들은 예쁜 야경을 보며 낭만에 젖고 있을 때,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덜 아프게 한 번에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조금은 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p.s. 이 자리에 앉기 까지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