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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 Nov 03. 2015

세상을 바꾼 무모한 도전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해발 412미터. 지금은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1973년 완공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국제무역을 담당하는 정부기구와 기업이 입주해 있던 이 건물은 지난 2001년 최악의 테러로 붕괴되기까지 28년 동안 미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며 뉴욕 맨해튼의 남쪽에 우뚝 서 있었다.


1974년 8월 7일 아침, 세계무역센터 앞을 지나던 뉴욕 시민들은 하늘을 오가는 검은 물체를 볼 수 있었다. 사람 모양의 물체는 쌍둥이 빌딩 사이를 여덟 번이나 오가더니 급기야 외줄 한가운데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는 허공에 누워 손을 뻗으며 하늘이 참 가까이에 있다고 느꼈다. 프랑스인 줄타기 아티스트 필리프 프티가 오랫 동안 준비해왔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이듬 해인 2002년 필리프 프티가 자신이 한 예술작업을 회고하며 쓴 책 [구름에 닿다(To Reach the Clouds)]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프티의 이야기는 지난 2008년 <맨 온 와이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적 있는데 이번엔 <백 투 더 퓨쳐>, <캐스트 어웨이>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맨 온 와이어>가 세계무역센터 외줄타기를 준비하는 프티의 6년이라는 기간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면, <하늘을 걷는 남자>는 그가 동료를 모으는 과정과 마침내 건물 꼭대기에 올랐을 때 느낀 공포감을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외줄 위에 선 프티(조셉 고든 레빗)의 모습은 아찔해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손이 땀으로 흥건해진다.


프티가 그날 하늘에서 행한 퍼포먼스는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게 해준다. 그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 두 개를 찾아서 잇고 그 사이를 걸어서 건너는 것이었다. 공군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줄만 타는 아들이 못마땅했고, 결국 그는 집을 나와 서커스 극단을 찾아간다. 파파 루디(벤 킹슬리)와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두 타워 사이를 건너고, 호주의 하버브리지도 건넌다. (하버브리지 줄타기는 이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맨 온 와이어>에 등장한다.)


세상은 그를 허황된 꿈을 꾸는 무모한 사람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는 줄타기 하나에 전부를 걸었고 결국 아무도 하지 못한, 혹은 하려고 하지 않은 일을 해냈다. 그가 해낸 것은 아문젠이 남극을 탐험하거나 메스너가 히말라야를 오른 것과는 다른 종류의 극한 경험이지만,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점에서는 닮았다.



나는 내 꿈에 갇힌 죄수다.


프티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삶은 오로지 두 건물 사이를 걷겠다는 목적이 전부였다. 이는 니체적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건너가는 것도 위태롭고, 지나가는 도중도 위태롭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태롭고, 그 위에 떨며 머물러 있는 것도 위태롭다.


만약 니체가 프티를 봤다면 동물에서 초인이 되려고 한 위태로운 인간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프티는 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다다른 순간, 갑자기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리고는 중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영화는 그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허공에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 순간을 프티는 즐기고 있다. 그는 아래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을 향해 인사까지 한다. 지금까지 위태로워 보였던 프티의 표정은 이 순간만큼은 천진난만하다. 삶의 목적이 초인이 되는 것에 있던 것이 아니라 줄타기 그 자체에 있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장면은 영화의 최대 하이라이트다.



인간은 하나의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위대하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 니체는 이렇게 덧붙였다. 마침내 꿈을 이룬 순간, 평생을 함께해온 외줄과 하나가 된 프티의 행동은 '인간이 곧 다리'가 된 니체적인 위대한 인간의 현현인 셈이다.



프티가 그날 해낸 공중곡예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고, 또 누구도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그가 두 개의 건물을 건넌 1974년 8월 7일 이전과 이후, 뉴욕이라는 도시는 달라졌다. 그전까지 흉물이라고 생각했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보는 뉴요커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행위예술, 낙서예술 등 그동안 이해받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갖게 됐다.


세상은 때때로 이렇게 목적따윈 없는 무모한 도전에 의해 바뀐다.


http://rayspace.tistory.com/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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