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변요한, 안재홍
올해 서른. 1986년생으로 나이는 같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셋 다 전통적인 미남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외모를 가졌다. 한 명은 삐딱하고, 한 명은 소심하며, 한 명은 푸근하다. 류준열, 변요한, 안재홍 이야기다.
류준열과 변요한은 <소셜포비아>(2014)에서 만났고, 류준열과 안재홍은 <응답하라 1988>에서 형제로 출연 중이다. 변요한과 안재홍은 함께 출연한 작품은 없지만 <소셜포비아>와 <족구왕>으로 신인남우상 경쟁을 벌인 사이다.
우선 류준열 이야기.
독립영화계의 문제작 <소셜포비아>는 올해 봄 다양성영화로 개봉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생>의 스타 변요한이지만 영화를 보면 변요한 못지않게 눈에 띄는 남자가 있다. 'BJ 양게' 역을 맡은 류준열이다.
홍석재 감독은 그에 대해 "오디션을 볼 때 이미 그는 양게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 같았다"며 "촬영할 때 양게가 너무 튀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편집하면서 그저 '준열 씨 사랑해요'만 외쳤던 기억이 난다"고 극찬했다.
이 영화에서 류준열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영화는 무거운 톤으로 전개되는데 류준열이 등장하면 영화는 생기를 얻는다. BJ 역할로 그는 사건 현장을 생중계하며 쉴 새 없이 떠드는데 애드리브로 분량의 대부분을 채웠다고 한다.
이렇게 데뷔작으로 끼를 발산한 류준열이지만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은 2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데뷔작은 2014년 단편 <미드나인 썬>으로 29살때였다. 그동안 그는 뭘 하다가 이제서야 나타난 걸까?
한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의 길은 갑자기 열렸다"고 말했다. 원래 교사가 되려고 했던 그는 교대와 사범대 진학을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연기자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올라간 눈꼬리와 홑꺼풀 눈으로 반항기 가득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그는 최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선 정봉(안재홍)의 동생 정환 역을 맡아 혜리와 심쿵 연기를 보여주며 여심까지 자극하고 있다. 또 얼마 전 엑소 수호, 지수, 김희찬 등과 함께 촬영을 마친 청춘영화 <글로리데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고작 2년차 늦깎이 배우 류준열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는 중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을 연기해 뒤늦게 스타가 된 변요한은 독립영화계에선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였다. 2011년부터 <재난영화>, <토요근무>, <목격자의 밤> 등 단편영화에 출연했고, 작년 개봉한 독립영화 <들개>에선 취업에 실패한 뒤 사제폭탄을 만드는 정구 역을 맡아 울분과 순응의 경계에 선 청년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영화를 본 봉준호 감독은 그에게 두 얼굴을 가진 배우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변요한은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꿨지만 그 길로 곧장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연기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지 않아서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스물네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09학번으로 입학해 연기를 배워 여기까지 왔다.
<미생> 이전 그는 <우는 남자>와 <마돈나>에 출연했고, 올해 초에는 이제훈, 조진웅, 윤계상 등이 소속된 사람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미생> 이후 개봉한 <소셜포비아>는 다양성영화로는 꽤 많은 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이는 변요한의 힘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진중한 연기를 주로 펼쳐왔던 그가 대중에 이름을 알린 첫 캐릭터가 '까불이 벽치기' 한석률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는 배우의 길을 택한 변요한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하나의 그릇에 가두지 않고 늘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는 스타보다는 연기자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배역에 욕심을 내는 중이다.
"거짓 감정을 꾸미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현재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가상의 인물 이방지 역을 맡아 '세기의 자객'이자 아웃사이더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연기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안재홍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족구왕>이다. 낙천적인 복학생 홍만섭 역할로 그는 작년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후보에 올랐다.
건국대 영화과 출신인 그는 홍익대 영상영화과 출신인 우문기 감독과 2013년 중앙대 안성캠퍼스를 배경으로 <족구왕>을 촬영했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건 바보 같아요."라는 만섭의 대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족구와 한 여자에 대한 우직한 사랑을 품은 남자는 안재홍이기에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캐릭터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이 영화로 충무로에서 '차세대 송강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안재홍 역시 처음부터 배우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수능을 본 뒤 전공을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 비디오 보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건국대 예술학부 영화전공 05학번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 대학로에서 1년 동안 연극을 하던 중 건국대 교수이기도 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2011)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유준상을 따라하다가 폭언을 듣는 영화과 학생 역할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에서 해원의 전 남자친구로 출연했고, <우리 선희>(2013), <자유의 언덕>(2014) 등에선 연출부나 제작부로 현장을 지켰다.
그를 '될성 부른 떡잎'으로 알아보게 만든 영화는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2012)였다. 이 영화에서 안재홍은 우유부단한 재수생 승준 역할로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남자배우상을 공동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인들의 제작 공동체인 '광화문시네마'의 첫 작품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두번째 작품인 <족구왕>의 주연으로 발탁된다. 족구 실력이 형편없었던 그는 '쿵푸팬더'처럼 보이기를 원했던 감독의 요구로 살을 더 찌워 촬영에 임했고, 결과는 김지운 감독이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나온 역대급 병맛 영화"라고 말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후 그는 윤성호 감독의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에서 뒤늦게 사랑을 고백한 10년 친구, <썸남썸녀>에서 건실하지만 인기 없는 짠돌이를 연기했다.
현재 그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류준열의 형으로 우표 모으기가 인생의 낙인 만년 재수생을 연기하고 있으며, 영화도 부지런히 촬영중이다. 개봉을 앞둔 수지 주연의 <도리화가>에서 류승룡의 판소리 문하생을 연기하느라 판소리를 공부했고, <마지막 잎섹>에선 류덕환의 친구 역을 맡아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또 심은경 주연의 <널 기다리며>에선 형사 역에 캐스팅되는 등 그는 지금 충무로가 노리는 신선하면서 친근한 얼굴 1순위다.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3명의 동갑내기 배우들. 뒤늦게 빛을 본만큼 그들에겐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이들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