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원작 애니메이션 <타이밍>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하기 힘든 장르 중 하나다. TV용으로는 그나마 <뽀로로>, <아기공룡 둘리> 같은 성공작이 있지만 순수하게 극장용으로 제작된 작품 중 흥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마당을 나온 암탉>(2011, 220만명), <블루시걸>(1994, 50만명) 정도밖에 없다. 호기롭게 덤볐던 <천년여우 여우비>(2007, 48만명), <파이스토리>(2006, 26만명), <날으는 돼지: 해적 마테오>(2004, 12만명), <원더풀 데이즈>(2003, 22만명), <오세암>(2002, 14만명) 등 전부 나가떨어졌고, 미국에서 성공한 <넛잡>(2014)마저도 한국에선 고작 46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서 쓴 잔을 마셨다.
이런 험한 장르에서 민경조 감독은 외길을 걸어왔다. 대원동화, 일본 도에이 스튜디오를 거쳐 TV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 시즌2>, <까치의 날개>를 만들었고, 장편 <오디션>(2008)에 이어 <타이밍>을 연출했다. 만들어지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으니 민 감독은 희귀종처럼 보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든 오성윤 감독과 함께 한국에서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 전문 감독이다.
대체 왜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안 될까? 아마도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나마 아동용은 꾸준한 시장이 있지만 성인용 애니메이션은 도대체 먹히질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겨울왕국>(2013) 같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1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인사이드 아웃>(2015) 500만명, <토이 스토리 3>(2010) 145만명 등 픽사 작품 흥행 성적도 좋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까지 관객층이 넓게 형성돼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역시 26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결국 작품의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성공작으로부터 찾아야한다. 최근 10년간 유일한 성공작인 <마당을 나온 암탉>과 실패한 작품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실 명필름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220만 관객이 대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나마 아직까지 이 기록은 높은 벽처럼 남아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부 팔린 황선미 작가의 동화를 영화화했다. 여기에 <접속>의 김은정,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나현 등 시나리오 작가들이 각색에 참여해 스토리에 공을 들였다. 즉, 애니메이션 성공의 필수 조건은 스토리라고 보고 이미 검증된 이야기를 선택해 최대한 영화의 성공 공식을 대입해 가다듬은 것이다. 여기에 미술과 음악 등 기술적 완성도 역시 추구했지만 이미 디즈니의 눈높이에 길들여진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림보다는 암탉이 용기를 내는 스토리로 더 기억되고 있다.
만드는 작품마다 대박을 내는 픽사 역시 스토리에 공을 들인다. 픽사는 태생부터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이 강점이었지만 사실 우리는 픽사의 기술력보다 <토이 스토리>의 버즈와 우디, <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 등 캐릭터와 스토리로 픽사의 작품을 더 많이 기억한다. 존 래시터 CCO는 스토리가 새롭지 않으면 개봉을 앞둔 작품이라도 뒤엎고 다시 만들 정도로 스토리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애니메이션은 장르 특성상 다른 부산물로부터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르다. 예컨대 한국영화가 관객을 끌어모으는 요소가 될 수 있는 배우들의 스타성, 소재의 리얼리티 등이 애니메이션에는 없다.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스토리와 캐릭터 자체로 승부해야 하는 장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그림이나 기술력이 아닌 스토리다.
<타이밍>은 강풀 작가의 웹툰으로 이미 검증된 스토리와 캐릭터를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위험한 장르인 애니메이션에서 민경조 감독은 안전제일의 선택을 한 것이다. 감독의 욕심이야 왜 없었을까마는 일단 침체된 장르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나는 <타이밍>을 두 번 봤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번, 그리고 올해 12월 10일 개봉을 앞두고 VIP 시사회에서 또 한 번 봤다. 그림체나 성우 목소리 등 기술적인 아쉬움은 논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그걸 기대한 게 아니니 말이다. 다만 작년에 봤을 때는 영화가 중반부터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실망스러웠는데 올해 개봉을 앞둔 버전은 이를 깎고 다듬어서 최소한 스토리의 리듬을 유지하는 정도는 된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한국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시장이 검증되지 않았으니 시도하는 사람도 적다. <타이밍>은 어린이용이 아닌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 올해 유일한 개봉작이다. 강풀의 원작을 빌려와 강풀의 팬심에 의존하고 있어 웹툰과의 큰 차별성이 없고 만듦새도 투박하지만 아직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인 듯하다. 그러나 시도 자체를 기억해두자. 한국의 애니메이션 인력이 언제까지 디즈니의 하청 작업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에 필요한 건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