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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 Mar 21. 2020

 - 호수 1

<이미지 소설> 키스하는 연인

이미지 소설

                                   

  호수

키스하는 연인


1.

키스하는 연인을 보았다.

호수는 얼어 있었고, 그들은 그 얼음 위에 불안하게 서 있었다. 마주보고 있던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의 먼 뒷편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둘의 간격이 좁아졌고, 입술이 천천히 가까워졌다. 먼 거리에서도 그들이 서로의 입술을 포개고 충분히 서로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나도 먼 기억 속의 어떤 키스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선명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그 소리를 듣고 잠시 흔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서로에게 몰두해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두려웠다. 뭐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그들은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의 말도 입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는지도. 작은 새 한 마리가 내가 서 있던 곳 가까이서 황급히 날아올랐다.

겨울 하늘은 차고 선명했다.



2.

부표들이 출렁거렸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무 다리는 흔들렸다. 어느 덧 얼음이 녹은 것이다.

키스하던 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이후 그들의 행적이 궁금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게 정말 그들이 호수로 빠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보지 않는 사이 내 시야에서 벗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아무런 흔적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얼음 위에 그들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 먼 거리에서 바라봤고 상상 속에 그려낸 두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몰랐다. 한 곳만을 오래 응시하다보면 상상 속의 것이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나는 그런 경험들을 했었다. 그러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어쨌든 사라져버린 그들이 내내 생각났다. 나는 일 주일 일정으로 그 호숫가에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 주일을 연장했고, 일 주일이 지나자 다시 또 일 주일 더 머물겠다고 민박집 주인에게 말했다. 겨울에 얼어붙은 호숫가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있고 싶은만큼 있을 수 있었다.

날이 좀 풀리면 아침 일찍부터 호숫가로 나갔다. 그 사라진 연인을 보기 전까지 나는 멀리서 호수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 둘레를 걸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게 물은 늘 피부병을 안겨준 것이었기에 별다른 환상이 없었다. 다행히 민박집 뒤로 나트막한 산이 있었고 매일 그 산에 올랐다. 산은 온통 시커먼 덤불에 싸여 있었다. 억새에 불을 놓아 한바탕 불꽃놀이를 한 산은 겨우내내 버려져 있었다. 한 번 불살라진 것은 죽음과 가까워진다. 산에 오른 첫날 검은 덤불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그 산은 나와 닮아 있었다. 나도 나를 다 태워버렸다고 느꼈다. 그녀가 나를 태웠건 아니면 스스로 나를 태워버렸다고 느꼈다. 그 산의 검은 상처를 보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생명이 있지만 생명이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그녀를 떠나보내고 알았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다. 겨울에 그들을 지켜봤던 그곳에 서성이며 한참동안 그들이 사라졌던 곳을 바라봤다. 아니, 그 연인이 사라진 다음 나는 매일 그 호수에 갔다. 새들은 풀숲 아래 모여 있다가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날아올랐다. 그 날 그들이 쨍,하던 얼음깨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올랐던 새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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