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선꽃언니 Apr 12. 2022

경찰 체력평가 대비 훈련 시작

TRACK(트랙)과의 인연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팔을 더 높이 치셔야죠. 그렇게 뛰면 기록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건강해지기만 해요.

벌써 4월의 반이 지났다. 올해 1차 순경 공채 채용시즌이다. 필기시험 합격한 사람들은 과거의 내가 그랬듯 치열하게 기록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드넓은 트랙을 달리는 그들을 보며 나의 과거가 몽글몽글 떠올랐다.


학창 시절의 나는 체육과목을 정말 싫어하던 아이였다.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불편한 교복을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알이 배기는 느낌도 싫었고 끈덕끈덕하던 살의 촉감도 싫었다. 수행평가 때문에 줄넘기나 뜀틀을 하거나 할 때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어찌어찌 고득점을 받곤 했다. 운동을 싫어했지만 운동신경은 또래의 중간은 갔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유학하면서는 한국사람이 하나도 없는 웬 시골마을에서 살았다. 놀랍도록 아무것도 없는 그곳엔 오로지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이 있을 뿐이었다. 가끔 뛰노는 야생 토끼와 코요테를 벗 삼아 지루한 날들을 보냈다. 친구가 필요했다. 월마트 라도 한번 데리고 나가 줄 '차 있는' 친구. 학교엔 몇 가지 동아리가 있었는데 흔히들 말하는 '인싸' 들은 TRACK&FIELD(육상부)를 하곤 했다. 사지육신이 멀쩡하기만 하면 만만한 게 육상부였기에 많이들 활동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모래로 뒤덮인 작은 운동장이나 보다가 가운데 잔디가 깔린 400m짜리 트랙을 눈앞에 두고 무척 감탄했었다.


사람들과 모여있다는 그 느낌은 참 좋았다. 한국에서 체육 평가를 보면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었기에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문제였지만 말이다. 평소 명량하기만 하던 그들은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을 가고자 하는 목표의식이 확실한 자들이었다. 필드에만 서면 웃음기는 싹 가시고 사활을 건 레이싱을 해대는 그들 틈바구니에 까맣게 타고 있는 깡마른 동양인인 내가 있었다. 나는 코치가 요구하는 거리를 완주하지 못했다.


"You can do it(할 수 있어)"


흑인들은 "할 수 있어" 그들 특유의 그루브가 담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내 뒤꽁무니를 따라 뛰면서 말이다. 내가 완주해야 다음 훈련을 하는데 기어 다니다 시피하는 날 놀리며 쫒았다. 그들이 지루함을 달래는 방법이었다. 난 안 좋은 쪽으로 주목받는 상황이 싫어 늘 열심히는 했다. 목에서 피맛이 나는 날이 계속되었지만 어린 날의 나는 그게 뭐라고 자존심을 부렸는지. 트랙을 하면서 비로소 친구를 사귀었는데 포기하자니 아까워 오기를 부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데 말이다.


여느 날처럼 땡볕에 트랙을 돌고 있을 때였다.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 멀리서 들리다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 눈을 떴다. 그렇게 새파란 하늘이 있을까. 쏟아지는 태양빛을 등지고 놀란 얼굴들이 빙 둘러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있다. 현실감이 확 돌아왔다. 동시에 오른쪽 옆구리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우려 들쳐 안았다. 고통 때문에 똑바로 설 수 없었다. 엠뷸런스, 나를 태운 엠뷸런스는 한참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엑스레이 몇 장에 진통제 몇 알. 의사는 Muscle folded(근육 접질림) 한 것이라며 집에 가라고 했다. 진단이 맞는 걸까. 나는 두 달이 넘도록 정상적인 직립보행을 하기 어려웠고 한국에 와서도 몇 년 동안 비 오는 날이면 옆구리가 시큰거려 파스를 붙이곤 했다. 물론 악몽이 되어버린 트랙은 부상 이후 다시 처다도 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몇 년 살았다.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았던 증권회사를 퇴사했다. 뭐에 씐 듯 경찰공무원에 매료되어 시험을 쳤다. 동기들 중에 꼴찌였지만 어부지리로 필기시험을 합격했다. 문제는 체력평가였다. 한 삼주만에 몸을 만들어야 했다. 육상 종목이 두 개나 있었다. 단거리랑 장거리. 노량진에 유명하다는  체력 학원에 등록했다. 체력평가를 합격해야 임용이 될 테니 거기 모인 사람들도 기록에 필사적이었다. 또다시 나를 잡아먹을 듯 광활한 위용의 트랙이 앞에 펼쳐졌다. 운동은 운동다워야 하는데 항상 내 앞의 트랙은 절박한 순간의 산처럼 다가와 애를 먹이는 것이었다. 아식스에서 나온 타사질이라는 신발을 사서 신으라고 했다. 기록이 나와야 하니까 스파이크가 달린 가벼운 신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 빼고 다들 그 신발을 신고 있었다. 꽤 비싼 신발이었는데 훈련을 한다고 등록하고 보니 멀쩡한 운동화 두고 육상화까지 사야 할 판국이었다. 뭐 사면되지 할 수 있는데 내 입장에서는 원래 운동하는 애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트랙 도는 게 싫으니까 별것도 아닌 게 다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노동의 공식은 20대 후반이던 내게 또다시 찾아와 시련의 한 달을 안겨줬다. 물론 평가 때는 들개처럼 뛰었고 체력검정도 어찌어찌 통과했다. 일주일 정도 온몸에 알 이배겨 제대로 걸어 다니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경찰관이 되었다.


경찰관으로 8년 정도 근무하면서 매년 체력평가가 있었다. 다행히 구기종목이라 그냥 하는 데까지 하는 걸로 갈음하고 대충대충 넘겼다. 죽도록 운동하는 것은 십 대 후반에도 했고 이십 대 후반에도 했으니 이제 운동을 한다면 예쁜 운동이나 하고 싶었다. 가령 필라테스나 폴댄스 요가 이런 것 말이다. 밖에서 뭘 하는 게 많다 보니 기본적으로 체력은 어느 정도 관리했지만 사활을 걸고 운동하는 것은 이제 내 인생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삼십 대 중후반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또다시 트랙 앞에 섰다. 한 바퀴에 400미터. 내가 준비하는 시험은 별도의 반이 개설되지 않아 순경 공채 합격생들과 함께 해야 한다. 가장 어린 친구가 스물셋이고 가장 나이 많은 친구가 스물여덟이다. 그들은 준비한 지 좀 되었는지 코치가 뭘 시켜도 일사불란하게 착착 움직인다. 허벅지며 팔이며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근육에서 그들의  노력이 보였다. 다음 주면 실기가 있어서 준비 막바지라 그런지 폭발적인 스퍼트며 기록이며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나는 이번에도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지금 저 친구들이랑 같이 하실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다른 훈련부터 하지요."


순경 채용 합격생들은 혼자 다른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익숙한 시선. 내가 무엇을 하는지 누군지 궁금하겠지. 니들 선배다 인마. 내가 니들 미래야.


오랜만에 달리려니 우웩 날도 더운데 입고 있는 옷조차 무겁다고 느낄 만큼 숨차고 힘들었다. 옛날에 하던 씁씁후후 호흡을 해 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러나 힘들어서 죽을 거 같은 마당에 그런 건 되지가 않았다. 코치는 야속하게도 한 바퀴 더를 외쳤다. 이미 내 팔다리는 내 몸에 붙어있는 조직 같지도 않았다. 흐느적거리며 "그만"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나는 바닥에 누웠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트랙 한복판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옛날 새파란 하늘이 내 얼굴로 내려앉았다.


한참을 파란 하늘을 음미하며 호흡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봤다. 뭉그적뭉그적 스탠드로 걸어갔다. 순경 공채 팀 아이들이 내 몸짓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코치는 내가 민망할 것 같았는지 농담을 던졌다.


"선 배딩 하는 줄 알았네요. 하하하."


실기까지 칠 개월 남았다. 운동은 하면 늘 것이고 다만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순경 공채 1차 준비생들은 교육생이 되어 후배가 될 것이고 가을께 2차 준비생들을 만나겠지. 그즈음엔 20대의 젊은 그들이 보기에 경이로울 기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 목표다. 30대의 저력을 보여주겠다(ㅋㅋㅋ). 피부가 구릿빛으로 그을리고 근육통으로 고통받는 날들이 모여 그날이 오길 고대하며 오늘도 아침부터 채비하고 나섰다.

윗몸일으켜기 기록측정계

심지어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어린 시절 친구들 조차 지금은 운동을 하지 았는다. 엄마가 되어 살림하거나 워킹맘이 되어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싱글인 친구들은 고탄력 피부 시술을 받고 스파 같은 것을 하러 다닌다. 필라테스나 플라잉 요가 같은 예쁜 운동을 하고 한 달에 한번 미용실에 간다. 예쁘게 화장하고 벚꽃구경을 다닌다.


나는 십 대에도 이십 대에도 삼십 대에도 일관성 있게 운동을 좋아한적이 없다. 그러나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트랙 앞에 선다. 긴 머리는 잔머리 하나 빠지지 않게 질끈 묶고 말이다. 트랙은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날 따라다닌다. 얼마나 건강하게 살라고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내 인생이 트랙을 부르는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다른 이들은 책상앞에서 그 시간을 보내는 반면 나는 트랙위에서 내 앞날을 찾는다. 내일도 들입다 뛰어야 하는데 온 몸이 쑤신다. 그러나 꾹 참고 열심히 해 보련다. 트랙과의 인연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보며 실기 끝나면 나도 남들처럼 미백 레이저 한번 대차게 받아봐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