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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May 17. 2022

언니가 면접 준비 도와줄게

너를 보면 스물세 살의 내가 보여서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목요일 아침 열 시 필라테스 예약을 취소했다. 화요일 목요일 오전에만 수업을 하셔서 놓치면 또 한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내 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만나는 사람이 있다. 체육관에서 만난 아이, 스물세 살 유림이. 순경 공채 면접이 코앞인데 면접에 하도 자신 없어하길래 무슨 오지랖인지 내가 먼저 나섰다.


"유림아, 언니가 면접 도와줄게. 시간 맞춰보자."

"진짜요? 언니 땡큐~ 땡큐~ 땡큐♡"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다. 이주일 남짓 운동을 같이 했을 뿐이다. 평일 주중 열 번 수업 중 내가 이틀 빠졌고 유림이가 하루 빠졌으니 일곱 번 만났다. 다시 말해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아이의 사연인 즉 작년에 필기와 실기 모두 고득점으로 합격하고 면접에서 탈락의 고베를 마셨다고 한다.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자기보다 점수가 낮은 친구들이 합격했다고 기뻐하는데 웬만하면 합격시켜주려고 보는 면접에서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복기하며 그냥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확 그만둘 수도 없다. 투자한 시간과 돈이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책상 앞에 앉았겠지. 그 나이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이 꿈과 비전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불합격이란 애간장이 녹는 아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스무서너 살의 나는 매일을 전쟁 속에서 살았다. 지금은 더 심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십 년 전에도 취업시장은 빙하기였다. 기성세대처럼 정량평가의 기준을 넘기는 것은 차라리 쉬웠다. 책상 앞에서 몇 달 고생하면 (어쨌든) 학점도 뚝딱 토익점수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방학은 자기 주도 학습의 장이였고 나는 성실했다. 그런데 갑자기 채용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스펙타파 경험 중심의 창의적 인재라는 키워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서울시내를 누비며 이력서에 도움 될만한 경험을 쌓느라 몸고생 마음고생이 말도 못 했다.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과외하며 용돈도 벌었고 스펙 관리한다고 점수도 수시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하루에 몇 장씩 자기소개서도 썼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봉사 활동하랴 인턴 하랴 제대로 잘 시간이 없었다. 영어 말하기 시험을 보러 가다가 시험장 복도에서 쓰러지기도 했고(환불해준다) 봉사활동 중에 어지러워 공중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버텼다. 꿈이 있었으니까. 나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회사원>이 꿈이었다는 게 좀 웃프지만.


당시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 3순위 안에는 고정불변으로 <대한항공>이 있었다. 아빠가 평생 다녔던 회사였다. IMF를 비롯해 경제위기는 몇 번이나 찾아왔다는데 우리 집은 평온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어렵지도 않게 현상유지를 하며 큰 걱정 없는 성장기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회사. 그 안정성이 좋았다. 복리후생으로 ZED라고 불리는 항공권 혜택이 있었다. 노쇼가 있어야 탑승할 수 있었기에 클로징 40분 전까지 마음 졸여야 하는 등급의 항공권이었지만 유류할증료를 제외하고는 무료였다. 덕분에 돈이 없어도 해외여행을 실컷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대한항공에 가고 싶었다. 대입 때 인하공전을 나오면 지상직 직원으로 빨리 입사할 수 있다는 말에 입학원서를 냈는데 수능 등급을 못 맞춰서 떨어졌다. 그러곤 그 옆에 붙어있는 4년제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재단 소유 학교라 자격이 맞는 몇몇에게 사무실 인턴 경험이 주어지고 그 특전으로 대졸 공채 때 최종면접만 합격하면 입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까지는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흔한 말을 믿었다. 순조롭게 대학생활을 하고 과 전체에서 단 3명 선발되는 인턴쉽 프로그램에도 합격했다. 부지런을 떨며 관리한 나의 점수와 이력(경험 등)을 드디어 보상받는구나. 설레었다.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했다. 본사에 출근하는 내 모습이 영원할 것만 같이 주인의식 뿜 뿜 해서 다녔다. 직원 자녀라는 사실에 부서원들은 가족이라고 부르며 소소한 배려를 해주었다. 합격만 시켜주면 충성을 다하리라. 마치 내 탄생과 함께 주어진 소명이 회사의 무궁한 발전인 듯 가슴에 열정을 품었다.


같이 인턴 하던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재단 소유 학교와 서울 몇 개 대학에서만 비공식 적으로 추천받아 나와 같은 조건에서 근무하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라고 칭하긴 하지만 사실상 경쟁자였다. 속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나보다 못한 애 나은애 하며  탐색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나는 그 안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 입장이었다. 여름방학을 통째로 인턴쉽에 갈아 넣었다. 만족할만한 평가도 받았다. 이제 면접한 번만 보면 끝나는 일이었다.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내 꿈의 회사가 눈앞에 있었다.


당시 외벌이 아빠가 퇴직을 일 이년 남짓 남겨놓은 시점이었기에 반드시 한 번에 취업하고 싶었다. 주변 학교 선배 언니 오빠들은 나이가 어려서 천천히 준비해도 된다고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대한항공 최종 면접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타 기업에도 줄기차게 자기소개서를 써댔다. 주로 외국계와 대기업 중심이었지만 몇몇 알짜 중견기업에도 지원서를 제출했다. 약 백 여곳 정도 문을 두드렸던 것 같다. 고맙게도 20% 정도의 승률로 면접에 초대받았다. 약간 자만할 만큼 좋은 실적이었다.


그런데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분명히 나를 불렀던 회사가 면접만 보았다 하면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아.."라는 회신을 해오는 것이다. 면접스터디원들과 모의 면접하면서는 분명 잘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말이다.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 결국 내가 생긴 게 비호감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면접비를 받긴 하지만 당시 한 번당 12만 원씩 하는 메이크업을 매번 면접마다 받고 가기는 부담이었다. 그러나 공채시즌이 끝날 때까지  모든 면접에 전문가의 손길을 빌어 채비하고 참여했다. 예쁘게 해 주세요.


면접 스터디를 하루에 두 개씩 했고 입이 아프도록 계속 말을 했다. 푹 찌르면 툭하고 기계적인 답변이 줄줄 나왔다. 스크립트에 쓴 예상 질문과 답변은 이제 좀 뻔했다. 난 이렇게 잘하는데 왜 면접에 합격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는 사이 대한항공 면접날이 다가왔다. 꼭 합격해야 하는데.


평소보다 더 예쁘게 하고 아에이오우 입을 풀었다. 대기실에서도 평가하는 직원이 있다고 해서 한 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다. 오늘 잘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걸면서. 인턴쉽 때 만났던 친구가 면접대기실에 나타났다. 집도 같은 일산이라 출퇴근 길을 같하며 유독 가까워진 친구였다. 친구는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면접 대기실에서 그 친구는 토익점수 낮은 게 마음에 걸린다고 걱정을 했다. 나는 토익이 전부가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 위로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 면접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정말 최악의 면접이었다. 면접관이 아는 얼굴이었음에도 부담감을 내려놓지 못한 나는 간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멍청한 실수를 했다. 면접을 보다 말고 엉엉 울어버린 것이다. 모두가 당혹스러워하는 와중에 감정을 못 추스른 나는 연신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고 면접은 침묵 속에서 끝났다. 마지막 질문은 왜 우셨는지.. 였다.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멍청하게 그 말을 듣자마자 또 울어버려 답변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꺽꺽거리기만 했다. 이제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인사는 공손하게 했다. 면접 어떻게 봤냐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만큼 잊고 싶은 면접이었다.


이상한 짓만 안 하면 합격시켜준다는 면접에서 친구가 합격한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외려 나의 불합격이 이유가 궁금할 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친구는 나를 위로했다. 비록 다른 회사에 가지만 오랫동안 친구 하자며. 가진 자의 여유로 보여 그랬을까. 속상한 마음에 몇 년간은 그 친구와 연락은 하고 지내되 만나지는 않았다. 친구가 회사에 막상 입사해보니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작은 투정마저 받아줄 수 없을 만큼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증권 인사팀 대리 ○○○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저희 회사 대졸 공채 최종 합격하셔서 입사 연수 안내차 연락드렸습니다~"


대한항공 합격자 발표가 나고 바로 그다음 날 면접 본 회사가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모든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아침부터 늦게 일어났다. 여의도까지 가야 하는데 샤워할 시간도 없어 고양이 세수를 대충 하고 가방에 화장품 몇 가지를 쓸어 넣었다. 만원 지하철에서 까만 창문에 얼굴을 비춰보며 어떻게 칠하고 있는지 모를 화장을 했다. 면접시간 오 분 전쯤 간신히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은땀이 줄줄 났다. 목이 무척 말랐는데 대기실에 도넛뿐이라 난감했다. 주스는 다 떨어졌다고 했다. 잠깐이라도 회사 약력이니 이런 것을 적은 종이를 봐야 하는데 너무 급하게 나오다 보니 깜빡 잊었다.


숨을 다 추스르지도 못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거울은 한번 보고 싶었는데 곧장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다음 조로 입장할 것이니 복도에 서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증권회사에 맞는 자기소개는 준비하지 못했는데 머릿속으로 뭘 말해야 할지 생각하려 하자마자 우리 조 입장 신호가 났다. 협소한 공간에 면접관이 꽤 많이 앉아있었다.


"자기소개 한번 해보세요."


옆에 남자는 회계 자격증 보유자 그 옆엔 서울대 출신 홍콩 금융권 근무 경력자 또 그 옆엔  대기업 재직 중이라는 예쁜 여자 등등


"금융자격증 하나 없습니다. 근무경력도 인턴쉽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제 장점입니다. 저는 기존 관행에 물들지 않았기에 ○○증권의 직원으로서 선배님이 그림 그리는대로 따라갈 자신이 있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능력으로 나를 어필할 구석은 없다는 판단이 섰다. 머리에 쥐가 난다는 표현이 있는데 자기소개하면서 잠깐 정신이 멍해졌다. 말을 끝마치고 침묵이 흘렀다. 망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갑자기 가운데 앉아있는 면접관이 풋하고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같이 웃었다.


"밸류에이션이 뭔가요?"

 *밸류에이션 :  기업의 현재가치를 평가하는 프로세스


공통 질문이었다. 첫 번째 면접 자부터 줄줄줄 학자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끔하고 정돈된 답변을 했다. 학교에서 재무관리 들으면서 대충 배우긴 했는데 공부 열심히 하고도 D를 받았던 과목이었다. 기초 재무 용어조차 모르던 나는 식은땀이 흘렀다. 내 순번이 다가올수록 할 말이 정리가 안돼 무서웠다. 옆 사람 답변을 들으며 대충 밸류에이션이라는 게 뭔지 추론하는 사이 내 순번이 왔다. 당황스러움에 기가 막혀 웃었다. 내게 꽂힌 면접관의 눈들이 무서웠다. 나는 헛소리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


"밸류에이션의 정의에 대해서는 앞서 답변드린 면접자와 같은 답변을 드릴 거라 지루하실 것 같습니다. 대신 저는 제가 좋아하는 회사의 기업가치를 나름대로 분석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면접관들은 딱 봐도 "쟤 모르네." 하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으나 가운데 면접관이 주변을 물리고 말했다.


"해보세요. 좋아한다는 회사가 어디죠?"


"제가 좋아하는 회사는 <대한항공>입니다. 대한항공의 수익부문은 여객사업과 화물사업이 있으며 몇 월부터 성수기로 여객이 어떻고~  IT사업의 호황으로 화물이 어떻고~ 주요 수익노선은 어디인데 경쟁 항공사는 어떻고~ 유가가 하락하여 객단가가 어쩌고~"


혼자서 한참을 얘기했다. 나에게 주어졌을 법한 답변 시각을 훨씬 초과한 것 같은데 제지당하지 않았다. 꿈의 회사를 소개하자니 할 말이 많았다. 면접임을 잊은 듯 나는 목소리를 높여 연설을 해댔다. 말을 끝맺었을 때 모든 면접관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워서 또 웃었다. 면접관들도 웃고 나도 웃고 옆 지원자들도 웃고.


"대한항공이라는 회사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거기 지원 안 하고 우리 회사에 왔나요?"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대한항공은 긴장해서 면접 때 저를 다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게 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많겠지만 저는 가슴보다 논리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합니다. 대한항공에 불합격했지만 그 덕에 저는 이 면접장에서 제 논리로 대한항공을 분석하여 말씀드릴 기회를 얻었습니다.  쓰임이 ○○증권에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증권에서 저라는 원석을 발굴해 다이아몬드로 다듬어 준다고 한다면 사람으로서 어떻게 의리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운데 면접관이 피식 웃었다. 그 답변을 마지막으로 나에겐 더 이상 아무 질문이 오지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나가보세요."


63 빌딩(면접장)에서 나와 여의나루 역까지 한참을 칼바람을 맞고 걸었다. 서러웠다. 예상 질의응답으로 준비한 멋진 말들이 많았는데 하나도 하지 못했다. 한강을 바라보고 섰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제는 불합격하고 오늘 면접은 망했네. 내년 상반기 공채 또 준비해야겠네. 진짜 힘들다. 집에다가 뭐라고 말하지. 엄마와 아빠 번갈아가면서 전화를 해대고 있는데 받지 않았다.


그때 타이즈에 헬멧을 쓴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학생,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여기서 혼자 뭐해요. 나쁜 생각 하면 안 돼요. 얼른 집에 가요."


며칠 뒤 합격자 오리엔테이션이 소집되었다. 회계 자격증을 소지한 오빠도 서울대 출신 언니도 그 자리에 없었다. 내 면접 조에서 오직 나만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11년도 하반기 ○○증권 대졸 공채 경쟁률 이백 대 일 최종합격자 이십 명. 그중에 막내. 나.


면접. 스물넷의 나는 면접이란 정답 있는 공식이라고 생각했다. 서점에만 가도 수도 없이 많은 면접 책이 있고 예상 질문과 모범답안이 있다. 합격자들의 답변을 모방하고 응용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닌 내가 태어나고 불합격한 뒤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나는 대면 면접에서는 수도 없이 불합격했다. 엄한 데서 이유를 찾다가 청춘을 다해 꿈꾼 회사에 인턴쉽까지 하고도 떨어졌다. 뒤늦게 깨달은 것은 면접에는 정답이 없으며 그날 내가 만나는 면접관과 나의 궁합은 운이 8할이라는 사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합격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한다면 나다워야 한다는 것. 꼭 합격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덤비면 일단 진다. 내 얘기를 덤덤하게 하되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그냥 모른다고. 대신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면 된다.


한 가지 인위적으로 신경 쓸 부분은 외적인 이미지이다. 예쁘라는 게 아니라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면접장에 입장하면서부터 웃는 얼굴로 면접관과 눈 맞춤을 한다면 훨씬 유한 분위기에서 첫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첫인상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미지라는 것이 진짜 모호하고 어렵다. 나의 경우는 웃지 않으면 시니컬해 보인다는 말에 카드를 물고 입꼬리 올리기를 비롯한 표정 근육 연습을 한 시간씩 했다. 나중엔 이가 위아래로 8개가 완벽히 보이는 미소를 가질 수 있었다. 고양이 상 얼굴을 커버하기 위해 눈꼬리를 살짝 내려 그리고 이마를 보이도록 머리를 정리했다. 


증권사를 퇴사하고 경찰이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몇 개 유명회사 면접을 보았었다. 면접의 감을 잡고 난 뒤의 나는 나다움과 미소로 무장하여 어떤 면접에서도 지지 않았다. 특히 에미레이츠항공과 베트남 항공에 합격함으로써 가슴에 남았던 항공사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요즘 시대에 제일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공무원 면접에 합격해 현재의 인생을 살고 있다(당시 채용 To의 50% 만 합격했다. 면접에서 함량 미달이라며 수많은 필기합격자를 걸렀다. 불합격자들 사이에서는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림아, 너 이렇게 준비하면 면접 망해."


나는 유림이랑 모의 면접을 하며 답변을 고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같이하고 있다. 오늘까지 세 번 만났고 면접 전까지는 두 번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 아이의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답변 속에 경험을 녹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쁘다. 간절함 때문에 내가 아닌 내가 면접을 보고 또다시 불합격하는 악순환을  끊어주고 싶다. 삼십 대 중반이 지나고 보니 이십 대는 참 짧은 것 같다. 가장 활발하게 놀고먹고 즐길시기를 직장 구하는데 다 들어부으며 찌들기엔 그 젊음이 너무 아름답다.


"아 정말요? 힝, 언니 알았어요 이렇게 하면 어때요? 이게 나아요? 오 알았어요 오케잉~♡"


밝은 에너지. 난 유림이의 에너지가 정말 좋다. 스물넷의 나도 너와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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