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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l 19. 2022

복날, 난생처음 만들어본 간장 닭볶음탕

그냥 넘기긴 좀 그렇고 해서 냉장고를 뒤적뒤적

오늘이 복날인데
집에 가면 와이프가
삼계탕을 했으려나 모르겠네

체육관 코치는 40대 초반이다. 따지고 보면 나랑 나이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코치는 와이프와 통화 중이었다. 오늘 초복이다 삼계탕 먹자. 하고. 출근하는 와이프 붙잡고 자기 퇴근시간 맞춰 삼계탕 타령을 하고 있네. 내 남편은 안저래서 다행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복날이라고 뭘 특별히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엄마는 뭔가 만들었었겠지만 말이다. 엄마는 민속명절을 잘 챙기곤 했다. 출근해있는 내게 전화해 단오라서 오곡밥을 했다거나 동지라서 팥죽을 했다거나 하고 말하곤 했다. 그게 대수인가. 근무 중이라 바쁘기도 했고 명절에 특별한 감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대충 흘려듣곤 했다. 엄마는 굳이 바쁘다는 날 붙잡고 먹고 가라거나 (혹은) 가져가라고 했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이제는 알지만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찾아먹는 음식이 아니니 가져와봐야 냉장고에서 두 달쯤 뒤에나 발견될 것 같아서 아냐, 난 됐어. 하고 사양했다. 엄마는 내가 됐다고 해도 몇 번을 더 권했다. 그만 끊자는 뉘앙스로 건성건성 대답해도 엄마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알았다 근무 잘하고. 얘, 너 밥은 먹었니? 참, 엄마 고기 샀는데 좀 줄까? 집에 쌀은 있니?"


평생 엄마는 그래 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찍 가버렸다. 이럴 거였으면 왜 그렇게 잘해줬을까. 집에 쌀이 떨어지든 고기가 떨어지든 알아서 사 먹으라고 내버려 두지.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해주던 팥죽이니 오곡밥이니 전복죽이니 이런 거 줄 때 잘 먹어둘걸. 그립고, 그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체육관에서 초복이니 삼계탕이니 하는 얘기를 듣고 보니  떠올랐다. 아빠가 아침에 휴대폰을 보면서 스치듯 하던 말.


"야, 오늘이 초복이냐?"


"몰라"


엄마는 무슨 날이면 그에 맞춰 아빠에게 뭔가 맛있는 음식들을 해줬을 것이다. 애들이 없으니 우리라도 먹자며 한상 그득히 차려서 말이다. 엄마는 손이 컸다. 둘이 먹든 넷이 먹든 먹다 지칠 지경으로 진수성찬을 차리곤 했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항상 배 나온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여보, 나는 당신이 내가 만든 거 맛있게 먹을 때마다 무척 행복해." (아빠한테 들었다)


아빠는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아서 그 많은 음식을 배 터져 죽을지언정 전투적으로 먹었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왔다. 체육관 마치고 아빠가 데리러 왔다. 차 안에서 넌지시 물었다.


"아빠, 오늘 복날이라던데 우리도 뭐 좀 먹을까?"


"됐어,  집에 국 끓여 놓은 거 있잖아. 그거나 대충 먹고 때우지 뭐."


"아니, 그래도 좀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닭볶음탕 용 닭 있는데 그걸로 뭐 좀 만들까?"


"네가 힘들 텐데. 뭐 만들게."


"아니, 그냥 뭐 저번에 김치로 닭볶음탕은 만들어봤으니까 이번에는 당면 넣고 찜닭 스타일로다가 만들어 볼까 해서. 아까 잠깐 레시피 보니까 감자만 사다 주면 될 거 같던데."


"그래? 그러면.. 알았다."  


아빠는 시크하게 답했으나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마트에 가서 알이 단단한 감자 몇 알과 막걸리 두병을 사서 돌아왔다. 그사이에 나는 냉동실에서 닭을 꺼내 찬물에 담가 해동을 하고 한 조각 한 조각 껍질과 핏물을 제거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확 끼얹어 겉을 살짝 데쳤다. 기름이 둥둥 떴다.


이제 양념을 해야 하는데. 진간장 14숟가락에 커피를 넣고 끓이라고? 아니, 웬 커피를 음식에 넣어. 믹스커피의 커피만 분리해서 넣든지 카누를 넣던지 어쨌거나 커피를 넣으라는 설명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집에 때마침 믹스커피가 있어서 열심히 분리했다. 젠장 프림이랑 섞여서 잘 되지를 않았다. 때려치우자. 아무거나 넣기만 하면 되지. 캡슐커피를 내려서 웍에 확 끼얹었다. 아빠 눈에도 닭에 커피를 처넣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자꾸만 잘되고 있냐 물었다.


"몰라. 그냥 하고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애써 만들고 있으니까 아빠가 다 먹어야 해."


흑설탕도 넣으라길래 찬장 구석에 박혀있는 병을 꺼냈다. 엄마가 사다 놓았던 것이니 최소한 일 년 반은 지난 설탕인데 먹어도 되는 건지. 설탕은 심지어 딱딱하게 굳어 숟가락으로 헤짚어도 가루화 되지 않았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답시고 병 주둥이에 숟가락을 걸쳐 힘을 주니 설탕이 하늘을 날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빠는 그 정체불명의 것은 대체 뭐냐고 물었다. 밥 한번 먹는데 한 시간 넘게 뭐 찾는다고 법석 떨고 사방을 난장판 만들고 있는 꼴에 아빠는 슬슬 열이 받는 것 같았다.


"너 사람 먹을만한 거 만드는 거 맞는 거냐?"


아빠는 설탕을 병째 내다 버렸다.


대충 닭에 야채와 감자를 넣고 커피와 함께 끓이기 시작했을 즈음 생각이 났다. 당면. 맞다. 당면을 한 시간 동안 불려야 한다고 했는데. 부랴부랴 찬장에서 당면을 꺼냈다.


우리 집에선 재료를 찾다 보면 어느 구석에서 뭔가가 나온다. 유통기한이 한 십 년 지난 것도 있지만. 다행히 당면은 올 연말까지는 먹어도 되는 것이었기에 대충 한주먹 쥐어다 쌀씼는 대접에 첨벙 담갔다. 좀 긴 거 같아서 가위로 반을 잘랐는데 딱딱해서 그런지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까르는 바닥에 처음 보는 이상한 게 있으니 신이 나서 물고 뜯고 날뛰었다. 나의 당면은 방마다 침대 소파 안마의자에 옮겨져 반바지 입은 다리에 까슬거렸다. 아빠는 점점 더 열이 받는 것 같았으나 인내심을 가지고 꾹 참는 듯했다. 어쨌든 내가 이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뭐라고 하기도 좀 그랬던 것 같다. 말없이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물었다.


"그거 오늘 안에 먹을 수는 있는 거냐?"


"가만히 있어봐. 이제 뭔가 그럴듯한 거 같아."


레시피엔 없었으나 간이 좀 안 맞는 거 같아서 굴소스를 쭉  넣으며 대답했다. 색깔, 색깔이 더 갈색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 간장 닭볶음탕은 허여멀거 했기에.


졸이다 보니 뭔가 좀 싱거운 것 같아서 간장을 더 넣었다. 간이 된 것 같은데 좀 알싸한 맛이 없는 것 같아서 청양고추를 넣었다. 대충 그럴듯한데 달짝지근한 맛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매실을 넣었다. 다된 것 같긴 한데 약간 닭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서 미림을 넣었다. 끓이고 끓이다가 윤기가 좀 없는 것 같아서 물엿을 또 넣었다. 야채도 계속 추가. 하도 끓여서 감자가 다 부서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대로 불리지 않았던 당면이 맛있게 잘 익었다는 것이었다. 끓이다 보니 닭도 색깔이 갈색으로 변했다. 오, 이제 먹어볼까.

감자가 다 으깨졌지만 진심 맛있게 잘된 나의 닭볶음탕

간장 닭볶음탕 한번 만드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아빠와 남편은 배가 고파 짜증이 날 지경이었고 나는 하도 간을 많이 봐서 배가 불러 한입도 더 먹고 싶지 않았다.


"이제 먹어도 되는 거냐?"


아빠는 막걸리 두병을 식탁에 꺼내놓고 음식이 차려지기도 전에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남편도 정체불명의 음식이지만 일단 냄새가 그럴듯하니 기대하며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두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것은 기억이 안 났다. 과연 우리 집 두 남자가 맛있다고 할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야, 이거 찜닭 같은 맛인데? 괜찮은데."


"우리 부인은 요리를 잘하나 봐. 뭘 만들어도 맛있네."


인터넷에서 글 보다 보면 주부를 무시하는 글들이 있다. 요리하고 살림하는 일은 어마 무시한 노동력과 정성을 요하는데 <수입(Income)>을 창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물론, 청소 이모님 요리 이모님을 고용하는 집도 있겠지만 그분들이 정성을 다한다고 해도 내 가족을 먹이는 주부의 마음보다 그 진심이 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휴직을 하고 반은 수험생으로 반은 주부로 살고 있다. 아빠와 남편의 식사를 챙기고 깨끗한 의복을 준비한다. 나는 주부로서의 내 생활이 좋다. 특히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줄 수 있을 때 행복하다. 비주얼 멋진 닭볶음탕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맛있다며 닭 조각을 앞접시로 옮겨가는 아빠와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다음 복날엔 뭘 만들어볼까. 장어구이를 해볼까. 전복죽을 해볼까.


복날이 뭔지 신경도 안쓰고 살았는데 올해를 시작으로 나도 엄마처럼 가족들에게 보양식을 만들어 먹이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다. 그리고 그런 내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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