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lnoc Mar 22. 2019

안경, 노란머리, 눈썹, 영화<우상>

맹목적 우상 추종과 파멸

우상(Idol, 2019)

브런치 무비패스 #14

감독 이수진

주연 설경구, 한석규, 천우희


우리 또한 맹목적으로 어떤 이를 좋아하거나
맹목적인 믿음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객 스스로 고민해 본다면 더 좋을 것 같다 - 이수진 감독


영화 <우상>의 이수진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강요하는 것이 아닌 사유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이 영화에 잘 스며 들어 있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닭의 얽힌 살들처럼 복잡하게 얽힌 영화 속 이야기에서부터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적 사건들과 내 삶에 관한 생각들까지 영화가 끝난 이후 진짜 생각이 시작된다.
 

영화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리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나도 영화를 감독이 의도한대로 정확히 이해했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다. 하지만 여러 의문점이 들기에 영화의 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하며 그 여운이 더 오래가는지도 모르겠다. 수 많은 관전 포인트가 있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영화의 세 주인공 한석규(명회), 설경구(중식), 천우희(련화)의 두드러진 외모적 특징으로 이 영화가 전하려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정리해보려 한다.


*스포 있음

명회의 안경

영화 <우상>, 구명회

명회의 우상은 명예다. 그리고 스스로 대중의 우상이 되는 것을 갈망하다. 작중 전직 한의사이자 현 정치인인 명회는 항상 안경을 쓰고 있다. 언론과 대중 앞에 서있을 때 그의 안경은 청렴하고 신뢰감있는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한편으로는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완성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안경 너머 그의 눈은 어딘가 불안하다. 그 눈은 끊임없이 명예를 갈망한다. 안경뒤로 욕망의 눈을 가린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지 모르는 목격자를 집요하게 찾아나선다. 자신을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아들의 눈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자신이 죽인 사람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안경을 너머 거울을 통해 바라본다. 마치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것 처럼. 결국 그는 수 많은 방해물들을 헤치고 안경을 방패삼아 우상이 된다. 마치 우상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 처럼.


중식의 노란머리

영화 <우상>, 유중식

중식의 우상은 혈육이다. 중식은 중년의 남성이지만 노랗게 탈색된 머리로 등장한다. 그리고 명백한 혈육임을 증명하듯 그의 정신지체 아들의 머리도 같은 노란색이다. 누가 봐도 이 둘은 가족이다. 영화는 왜 이 둘의 머리가 노란색인지가 설명하지 않는다. 중식의 우상을 드러내기 위한 강렬한 영화적 장치라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있는 이유가 될 듯 하다. 


중식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진다.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이 사건의 열쇠가 될 수 있는 련화를 찾아나선다. 수 많은 어려움 끝에 찾아낸 련화. 련화의 본국 송환을 막기 위해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명회의 지지자로 나서며, 자신의 혈육이 아닐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련화에게 혼인신고서를 내민다. 그만큼 중식은 혈육과 가족을 갈망한다. 명회를 위한 강연회에서 그는 검정색 가발을 쓰기도 한다. 련화를 위해 자신의 우상을 잠시 잠재운다. 하지만 명회가 그의 아들을 죽게 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우상을 파괴한 명회에게 분노하며 명회의 우상을 파괴해버린다. 중식이 꼭 지켜내야할 우상은 타인에 의해 사라지고 없다.


련화의 눈썹

영화 <우상>, 최련화

련화의 우상은 생존이다. 련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은 끊어버리는 “종이 다른” 잔인함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을 버리는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눈썹은 있을 때보다 없을 때 그 존재감이 더 큰 듯 하다. 단지 눈썹이 없을 뿐인데 련화의 얼굴은 한층 괴기스럽다. 어쩐지 사람의 얼굴이 아닌 동물의 얼굴 같기도 하다. 련화의 눈썹이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중식의 노란머리에 대한 설명이 없듯이 없다. 련화의 눈썹이 없는 때는 불법체류자 수용소에 있을 때다. 자신의 생명이 가장 위협받고 있는 그 순간의 “종이 다른” 강력한 절박함을 눈썹의 부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앞에 설 때 련화는 눈썹이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실제 눈썹일 때도 있지만, 무척 부자연스럽게 그리고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명회의 가족과의 식사 장면에서 련화의 눈썹은 유독 부자연스럽다. 생존앞에서 한없이 이기적이고 잔인해지고 마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감추려는 듯 하다. 하지만 결국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업신여기는 이들을 섬뜩하게 협박한다. 련화의 우상인 생존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뱃속 아기의 생존이 끝나버렸을 때 련화는 자신이 증오하는 이들과 자신의 생존을 위협했던 이들의 생존을 끊어버리며 자신의 생존마저 스스로 끊는다. 련화는 자신의 우상을 스스로 끊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르지만 같은 모습의 청춘, 영화<레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