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에세이
내 이름자엔 봄, 춘(春)자가 있다. 봄은 예쁜데 춘은 어찌 그리 촌스럽다고 느꼈던지 시무룩한 마음에 아버지에게 내 이름자를 왜 봄꽃이라 지었는지에 대해 따지듯이 물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단순했다.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꽃이지, 헌데 이름자는 두 글자니까 앞에 뭐라도 붙여야지 싶어서 어떤 꽃이 좋을까 궁리해보니 아무래도 봄꽃이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왜 하필 봄꽃이 좋았냐고 또 물었다. 이번엔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시무룩이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긴 거울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봄꽃이 얼마나 반가운지.”
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같은 존재가 되고 반가운 존재가 되어라는 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름은 아무리 촌스러워도 이렇게 해석을 하니 마음이 얼마나 벅차고 따숩던지,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의 촌스러움을 그저 묵묵히 견디기로 했다. 견디다 보면 점점 더 숨 막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적응이 되고 다시 보니 썩 괜찮게 여겨지는 것도 있기 마련, 내 이름자는 후자에 가까웠다.
20대까지는 봄꽃이 반가운줄을 몰랐다. 이미 내가 꽃같은 청춘인데 꽃이 반가울리가 있었을까.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산과 꽃이 좋아지면 늙었다는 증표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SNS 프로필 사진에 꽃이 있는건 다수가 우리 어머님 오여사같은 어르신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꽃을 보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던 적이 있었다. 그건 30대 초반, 첫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산후우울증인지는 몰라도 아이를 잠시 맡기고 밖에 나와 정처없이 걷다가 하얗게 핀 벚꽃을 봤을때었다. 하염없이 벚꽃을 바라보는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게 왠 주책이나 싶어 눈물을 훔치면서 벚꽃이 본디 눈물 날 정도로 이뻤던가 싶었다. 그때 알았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산과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마음이 내게도 드디어 찾아왔다는 것을.
돌아보면 20대의 내가 겪는 힘듦은 거의 모두가 출처가 분명했고 어찌어찌 애쓰다 보면 탈출구가 보일 것 같기도 한 것들이었다. 서른이 넘고나서야 출처도 없고 탈출구도 없이 그저 축 처지는 마음을 보았다. 어쩌면 굳이 출처를 묻고 싶지도 않고 탈출구가 궁금하지도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릇파릇하던 기운이 사라진건지 느긋해진건지 헛갈릴 정도로 따뜻한 날 공원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그저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 꽃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 또 살만해지는 경험을 하며 그제야 삼십년만에 내 마음 안에 봄꽃 한 송이가 제대로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또 봄이다.
어제는 아이유의 <드라마>라는 노래에 꽂혀 느릿느릿 설거지를 하며 열 번도 더 넘게 들었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 힘을 다해 빛나리”
마지막 노랫말 가사가 슬프게 아름다워서 혼잣말로 시처럼 읊어보다가 여름, 가을, 겨울을 견디고 죽을 힘을 다해 화사하게 필 봄꽃을 떠올렸다. 창문을 활짝 열면 멀리 보이던 만발하게 핀 진달래꽃에 쉬이 눈을 떼지 못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오래된 과묵함이 사라지고 봄기운이 슬며시 올라왔던 그때나, 벚꽃을 보며 잠시 얼굴에 위안이 피어오르는 나의 오늘에나 봄은 그동안 지치지 않고 찾아왔다.
내 인생도 내 이름처럼 봄 날에 피는 꽃 한 송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별처럼 매일 매순간 빛나고싶은 욕심은 없다. 많은 날을 평범하게 무탈하게 보낼 수 있다면 더없이 감사한 것이고 행여 어렵고 더딘 날이 빠지는 마리카락처럼 수북이 쌓인대도 사계엔 겨울이 빠지지 않듯 의례 견뎌야 하는 인생 코스로 덤덤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저 숨차게 달리는 인생의 후미진 골목마다에 약속한듯 봄날이 찾아오기만 한다면, 그 봄마다 한번씩 나는 한송이의 꽃이 되어 죽을 힘을 다해 만개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