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넷: 영화의 가치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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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햄넷의 첫인상은 클래식하다고도 할 수 있고 진부한 느낌이 든다고도 할 수 있다. 극장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 그 자체가, 그 언제인가 그 경험이 삶에서 제일 즐거운 것이었던 때의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진부하다고 느낀 건 미장센 때문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 평론 교과서에 나올 법한 장면들이 많다. 아그네스가 자궁 안의 태아처럼 숲 한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장면, 반복되는 어두운 굴과 문의 이미지(자궁이나 질을 연상시키는), 그리고 물의 이미지들. 이 상징들이 너무 오래되고 깊이 각인된 것들이라 '비평가들을 위해 넣어둔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감독(시드 로윈스키 연출, Maggie O'Farrell 원작)이 셰익스피어 시대의 이야기를 고전의 문법으로 풀려 했다는 건 알겠다.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잘 만들어서 다 괜찮다. 두 주인공의 화면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과 숲과 바람의 소리들, 화면의 색감과 움직임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전반부는 그렇게 심장이 두근대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영화는 세 파트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내용 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그렇다. 중반부, 이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인 아들의 죽음이 벌어지는 파트에서는 배경에 음악이 사라진다. 쌍둥이 딸이 페스트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던 그날 밤, 아들은 딸을 안고 속삭인다. 자기가 죽음을 속여 대신 가겠다고, 넌 여기 남으라고. 그리고 정말로 아들이 죽음을 맞는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아그네스 그리고 윌리엄의 연기는 이 중반부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나는 이때부터 쏟아지는 하품과 싸워야 했다. 대단한 연기지만, 인물의 감정에 몰입되는 게 아니라 연기를 감상하게 되었다. 감독은 연극을 화면으로 옮겨놓은 것같은 연출을 사용한다. 그리고 나는 연기를 감상한다. 졸렸다.


후반부에서 영화는 연극 〈햄릿〉을 실제로 상영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그네스는 관객의 하나가 되어 연극을 본다. 처음엔 아들의 죽음을 이렇게 이용한다는 분노, 그러다 주인공 햄릿에 완전히 감정이입하고, 마침내 연극을 통해 아들의 죽음에 대처하는 윌리엄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와 화해한다. 그 내부의 변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 후반부에서 감독은 음악을 최대한 활용해 관객의 감정을 아그네스의 상태와 일치시킨다. 음악이 시키는대로 내 감정이 일렁거린다. 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그대로 느낀다.


영화는 아들의 죽음과 상실이라는 사건을 직접 보여주는 중반부와 그 상실을 연극을 통해 보여주는 후반부를 대조적으로 연출한다. 중반부의 현실은 더 연극적이고 후반부의 연극은 훨씬 더 깊은 몰입감을 가져온다.


이 후반부에 와서 영화가 '상실'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영화는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답이구나.


또다른 아카데미 후보작《센티멘탈 밸류》도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지금 감독들이 스스로 묻고 있는 것 같다. OTT와 숏폼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에,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햄넷》은 그 질문에 조용히 답한다.


영화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 스토리는 사람을 치유한다.


그리고 나는 납득이 되었다. 숏폼 그만 좀 보고 영화를 더 많이 봐야겠구나 최소한 그 만큼이라도 내 감정을 위해 해주자라고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