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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26. 2017

플랜 B에 대한 사소한 착각

목표한 길을 걷지 못하고 있다면

무대에 서있는 한 여인. 고요한 적막은 여전히 익숙지 않다. 조명이 켜지고 이내 전주가 흐른다. 익숙한 멜로디에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대중적인 곡이지만 그녀의 노래는 아니었다. 노래의 주인공은 저 앞쪽에 앉아 있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는 식의 시선이 불편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그런 눈빛이 비단 그 남자의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가창력은 이미 SNS를 달군 적이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가수들도 키워냈다. 첫 소절을 앞둔 그녀는 보컬 트레이너. 오디션 경연장에 섰다.


<촛불아이>를 시작하며 ‘꿈을 멈추게 하는 사회’를 다뤘다. 꿈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며 문득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해보려 한다.


플랜 B를 선택하면 실패한 인생일까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수없는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과학자, 동물원 사육사, 화가, 만화가를 거쳐 중학생이 됐을 무렵 내 꿈은 미디어를 다루는 것이었다.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PD를 꿈꿨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다짐할 정도로 강한 열망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 꿈이 변한 적은 없었다.


첫 번째 굵직한 갈림길은 역시 수능이었다. 점수대에 미디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전공이 없었다. 다 너무 높거나 너무 낮았다. 어중간한 위치에서 어중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엉뚱한 학과를 저울질하며 마음에도 없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전공은 신문방송학과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내음이 나는 곳이었다.


입학해보니 변수의 연속이었다. 방송반과 밴드부를 해보는 게 목표였는데 오디션 전 주에 덜컥 1학년 대표로 뽑혀버렸다. 그놈의 승부욕이 뭔지. 재수도 했으니 어지간하면 학교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추천받고 떨어지기 싫었던 거다. 어느 학교나 1학기 일정은 빡빡한 법.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병행할 방법이 없었다. 선택받은 쪽은 과대였다.


방송과 공연에 대한 갈증은 줄지 않았다. 마침 입학한 곳이 신설 학과라 동아리가 없었는데 불평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뭐 하나 준비된 게 없다고. 나도 비슷한 걱정은 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없으면 만들면 될 일. 영상학회 1기로 가입했고 노래모임을 만들었다. 플랜 B였다.


제대 후 복학하니 상황이 신입생 때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이번에는 학생회장이었다. 임기를 마치면 마지막 학기만 남는 상황. 언론고시를 준비하기는 촉박한 시간이라 부담스러웠지만 받아들였다. 그래도 막상 남은 학기에 어떻게 시험 준비를 해야 하나 싶었다. 눈높이를 낮추기로 했다. 대형 언론사 공채만 보고 가기엔 준비가 너무 부족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매체에서 사회생활에 돌입했다. 취업 후에도 갈림길은 매번 찾아왔고 여러 선택을 거친 뒤 내 모습은 방송국 PD가 아니었다. 하지만 5년째 (무사히) 미디어 계통에서 일하고 있고, 좋아하는 사진과 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들며 지낸다.


플랜 B에 대한 두려움은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플랜 B를 목표 달성 실패와 동일시하는 착각


1등과 2등, 금메달과 은메달의 관계처럼 B에는 ‘첫 번째가 아닌 것’, ‘차선’, ‘최상이 아닌 무언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저 알파벳일 뿐인데 말이다. ‘B급 감성’이라는 말은 우아하지 못하고 투박하다는 의미다. B컷 사진을 고를 때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사진 문법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를 따질 때가 종종 있다. 초점이 나가거나 구도 틀어진 사진을 걸러내는 편이 더 효율적이니까. 플랜 B하면 다수, 혹은 세대를 아울러 정답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 길, 정제되지 못한 길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플랜 B를 선택할 때 주저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어린 친구들이 더 그렇다. 플랜 B를 목표 실패와 동일시하는 건 착각이다. 플랜 A가 로열로드라면 플랜 B는 방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는 방법론일 뿐이다. 꿈을 개척하는 길은 단연코 하나가 아니다.


자주 걷던 산책 코스가 있다. 아파트 가득한 동네라 그냥 근방을 한 바퀴 돌뿐이었지만 나름 정석이라 생각했던 경로가 있었다. 한 번은 그 길이 지루해졌다. 직진해야 할 곳에서 오른쪽으로 틀어봤다. 그쪽으로도 집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5분이나 걸었을까? 이상한 카페가 나타났다. 그 동네는 기껏해야 프랜차이즈 카페 몇 곳이 전부였다. 휴일에 집에 있기만 하면 늘어지는 스타일이라 조용히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분위기도 아늑했고 커피 맛도 좋았다. 노트북을 쓸 수 있는 콘센트도 있었으니 금상첨화. 무엇보다 손님이 적어서 집중하기 쉬웠다. 나는 그날 조금 돌아간 덕분에 아지트를 얻었다.


곡선은 직선보다 빠르다. 돌아가는 선택은 방황이 아니다. 오히려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때가 많다. 중요한 건 그 선택들로 나아갈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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