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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28. 2017

아이들이 만드는 카스트제도

아파트에 감정 이입하는 나라

봤어?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장난기가 많았지만 그만큼 생각도 깊었던 친구였다. 친해진 계기는 딱히 없었다. 그냥 3년 내내 같은 반이 된 덕이었다. 우린 ‘절친’은 아니었다. 그래도 교실에서 잘 지내고 게임도 같이 하고. 함께 있으면 재밌었다.


나는 그 친구가 사는 곳을 몰랐다. 특별히 ‘알아야 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지만 친구의 입으로 들은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3년째 얼굴을 맞대니 사는 데는 알아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간 어느 날, 친구와 거리를 두고 교문을 나섰다. 여차하면 미행할 셈이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친구는 학교 앞 작은 사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하면 나오는 낡은 집에 살았다. 현관을 열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친구는 도망치듯 문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또 미행까지 하려했나 싶다.


다음날 집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봤냐는 친구의 질문에 “어쩌다보니 보게 됐다”고 둘러대는 나. 유복하지 못했던 그 친구는 누군가에게 집을 보여주기가 항상 부담스러웠다. 하필이면 집이 학교와 가까워서 친구들이 볼까봐 항상 숨듯이 집에 들어갔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그 뒤로도 잘 지냈다.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그날을 돌이켜보면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서로에게 미안한 고등학생 둘만 남아있다. 친구는 왜 숨어야 했고, 나는 왜 미안했을까.


아이들은 자라며 입고 있는 옷 색깔 만큼이나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휴거와 부거, 신분 나누는 아이들


휴거. 임대아파트 브랜드 이름에 ‘거지’를 붙여서 비하하는 말이다.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임대아파트를 ‘가난한 아파트’로 폄하하면서 생겨났다. 비슷한 이유로 부거, 꿈거도 있다는데 참 잘못된 등식이다.


주소에 적힌 아파트를 확인하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더 챙기는 어린이집, 입학식 날 살고 있는 아파트 별로 줄 세우는 초등학교, 임대아파트 사는 학생이 학생회장이 됐다고 끌어내린 학부모들. 아파트가 신분의 벽이 되고 있다. 어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에 아파트 이름을 딴 학급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오래된 주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엄마가 너 휴거라고 놀지 말래


부모들의 악습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련만.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이어지니 문제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서로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묻는다. 전세인지 월세인지 확인한다. 휴거면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도 못한다. 주거 물량을 늘리기 위한 방법론일 뿐인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아이, 부모 모두 차별 받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같은 브랜드 단지 내에서도 선긋기가 횡행한다.


아파트에 감정이입하는 나라


2004년은 한 아파트가 63빌딩의 아성을 꺾은 날이다. 주인공은 도곡동 타워팰리스다. 그해 타워팰리스는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이 됐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미국의 WTC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시어즈 타워나 홍콩 국제상업센터, 파리 에펠탑을 상상하던 내게는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한 나라의 상징이 아파트라니. 싫었다. 너무 싫었다.


우리나라 가정이 보유한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이다. 대개 그렇다. 아파트가 부 그 자체로 여겨지니 과시욕이 일고, 철저히 왜곡돼 이제는 신분을 나누는 기준이 됐다.


그리고,


왜곡된 물질만능주의는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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