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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15. 2017

내비게이션이 되려는 엄빠

신호등이면 충분하다

“잠시 후 우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 덕분에 운전하기 참 편해졌다. 어렸을 때만 해도 명절에 시골집을 가려면 지도책을 펴 들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귀성길 내 역할은 조수석 뒷주머니에 꽂힌 지도책을 꺼내 어머니께 드리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일을 시작하며 운전을 배웠다. 더 이상 지도책은 없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그녀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앞길을 알려줬다. 친절하게 빨간 줄 쳐가며 “좌회전해라, 우회전해라” 알려주니 길을 잃을 걱정도 없었다. 이따금 빠져야 할 타이밍을 놓치긴 했지만 순식간에 다른 길을 알려줬다. 그때마다 운전이 미숙한 나를 탓했다.


덕분에 나는 길을 잘 모른다.


한번은 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서 내비게이션을 설정해둔 채 내 맘대로 운전한 적이 있었다. 좌회전하라는 그녀의 말을 안 듣고 직진이라도 하면 귀가 따갑게 유턴하라고 소리친다. 아마 그녀는 자기가 생각한 길이 가장 완벽한 길이라 믿는 모양이다.


촛불 이후 아이들의 미래는 부모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성장을 막는 어른아이들


‘헬리콥터 맘’이라는 말이 있다. 헬리콥터처럼 자녀 주위를 맴돌며 간섭하고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다. ‘맘’이라고 표현됐지만 아빠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성인이 된 자녀도 통제하려고 든다. 대학 학점관리에 구직 정보를 알아다주고 결혼 상대도 이미 점찍은 스타일이 있다.


아이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교 2학년 때 C학점을 받은 과목이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그 길로 담당 교수를 찾아가 ‘이러면 취업에 불이익이 있으니 성적을 올려 달라’고 했다.


군대에서도 문제였다. 이등병 때 혹한기 행군을 다녀와서 집에 편지를 보냈다. 처음으로 혹한기 훈련이라는 걸 해봤다고. 눈 쌓인 산도 타고 잘 다녀왔다고. 편지를 받은 엄마는 중대장에게 전화해 말했다. “겨울에 산에 올라가는 게 말이 되나요? 훈련 강도를 낮춰주세요”


일을 시작했더니 이번엔 연애가 골치였다. 극성스러운 엄마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연인의 존재를 알 때마다 갖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결국 아이는 연애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이는 오늘도 엄마의 길을 걷고 있다.


누가 이 작은 아이의 미래를 예단할 수 있을까?


내비게이션보다 신호등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은 타의로 정해진 길이다. 사람들이 추천 경로를 따르는 데는 실시간으로 교통 상황을 체크해 변수에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는 기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다. 자녀 앞에 닥치게 될 변수를 전부 예측할 수 없다. 사회의 변화를 파악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예측할 수 없으니 정답이 나올 리 만무하다. 심지어 스스로도 제시한 길이 정답인지 모른다. 


좌회전해라, 우회전해라, 70km로 달려라, 1차선으로 가라, 4차로로 달려라, 국도로 가라, 고속도로를 타라... 그냥 신호등이면 충분하다.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된 아이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야 한다. 부모도 자식도 감정 소모를 줄이는 길이다. 아이의 선택에 살인, 폭력, 절도 같은 불법행위가 보인다면 빨간불을 켜주면 된다. 걱정되더라도 노란불까지다. 그 길을 건널지 멈출지는 아이의 선택이다.


부모의 역할은 신호등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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