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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Mar 20. 2017

등잔 밑은 아직도 어둡다

최고의 멘토를 찾는 방법

하루는 동네 영화관을 찾았다. 시간은 딱 자정. 밤을 잘 못 새는 편인 나는 심야영화를 즐기지 않는다. 스크린 앞에는 나를 포함해 열 명이 채 안 되게 앉아 있었다. 제목은 <건축학개론>.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셨을 거라 믿는다. 그래. 실연 직후였다. 내 생애 가장 궁상스러운 영화 관람이었을 거다.


사실 꼭 보고 싶은 영화긴 했다. 출연 배우 면면이 괜찮았고, ‘납득이’라는 캐릭터도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의 습작’이 깔린 덕분이다. 눈앞에 펼쳐진 영화의 감성과 화면의 색채가 참 좋았다. 하지만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 ‘아무 놈 대잔치’였다. 어떻게든 수작 부려 보려는 선배도, 못된 상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택시 기사에게 분풀이하다 얻어맞은 남주인공까지. 별 비중도 없던 납득이가 상영 시간 내내 가장 훌륭한 남자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왜 불편했을까? 수많은 영화 리뷰에서 다뤘던 ‘첫사랑의 미숙함’ 뿐만은 아니었다.


“저 따위로는 살지 말아야지”, 그 반발심이 더해져서였다.


븅신들을 멘토로 설정해야 해요


한 강연에서 방송인 유병재 씨가 청중들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그는 이 발언 전에 정확한 맥락을 위해 비속어를 사용하게돼 양해를 구했다. 이 글에서도 딱 두 번만 사용하려하니 너무 불편해하지 마시길..) 신기했다. 내 가치관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저 사람처럼 되자’보다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죽어도 저렇게는 늙지 말아야겠다”
“내가 하던 안 좋은 버릇도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걸 보면 고치게 됩니다”


살다가 ‘진짜 별로다’ 싶은 사람을 한 명은 보게 된다. 그가 나와 맞지 않아서든 사회적 가치에 반했든 간에. 한번은 일하다가 오지랖에 ‘내로남불’이 우주 단위인 사람을 보게 됐다. 자기 행동은 생각지 않고 남 지적하는 건 일상이다. 이런 사람은 상상의 나래도 넓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고 다니더라.


이런 사람들의 내면에는 ‘나는 완벽하다’는 오만이 숨어 있다. 나아가 ‘너희는 내 완벽에 일조해야해. 티끌도 용납할 수 없어’라는 암묵적 명령까지. 경계해야할 사람이다. 나중에 동료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연히 좋은 평가가 내려질 리 없었다. 심지어 그 사람과 친하다고 여겨진 사람까지도.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며 삶의 교훈을 얻는다. 대단하고 멋져 보이는 사람의 인생을 따르는 것은 어렵다.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르지 않는 건? 어렵지 않다. 내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에 반대로 내 생각과 행동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동경할 누군가를 바라보며 자란다.


멘토들이 몰락한 우리 사회


멋진 사람을 동경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누구나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개인이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고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의 이야기로 승화된다. 우리는 태어나 위인전을 읽고 ‘이 사람처럼 돼야지’라고 생각한다. TV를 보며 ‘저 사람을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난다.


그리고 배신당한다.


한국 사회는 꾸준히 멘토를 원했다. 최근 들어 더 거세진 느낌이다. <세바시>, <어쩌다 어른>, <말하는 대로> 같이 강연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늘고,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강연 서비스가 증가했다. 하나의 산업군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멘토는 없다.


(일부 존경받는 분들이 있지만)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군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덕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기업가, 언론인, 의사, 선생님, 종교인 같은 분들 말이다. 현실은 이따금 막장 드라마보다 막장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일 안하는 권력자, 횡령과 비리를 일삼는 사장들, 갑질의 스페셜리스트를 꾸준히 만났다.


어린 친구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마찬가지다. 탈세, 학력위조, 성추문, 도박 등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한 영화감독과 배우의 오묘한 만남이 유명세를 탔다. 위법이 아닐지 모른다. 허나 도덕적 결함이 있다. 비난 여론이 많은 만큼 그들에게서 교훈이나 지혜를 얻기는 힘들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아이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의외로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위인보다 주변 사람


대형 강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소통 구조도 일방적이고 질문하기도 마뜩찮은 분위기 속에서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까. 강의가 잠깐 재밌었을지 몰라도 이후 공허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잖다.


내게 지혜를 주는 사람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 비슷한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내 생각을 가감 없이 꺼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속는 셈 치고 기대어 봐도 좋다. 그들이 내 인생을 환상적으로 바꿔 놓기는 어렵겠지만 방향은 알려줄 수 있다.


내 옆에 있는 ‘븅신’도 지혜를 주고

내 옆에 있는 ‘친구’도 지혜를 준다.


멀리서 찾지 말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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