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로 가득 찬 하루
[이 글은 의도적으로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습니다]
시애틀 촌구석에서 지내다가 테크의 중심지로 이사 온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허세 섞인 하루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오늘도 규칙적으로 7시 반에 알람 없이 눈을 떴다. 평생 올빼미로 살다가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가 되자마자 규칙적인 생활이라니 역시 사는 곳이 중요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나는 며칠 전에 볶아진 신선한 블루 바틀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얼마 전에 구입한 브레빌 에스프레소 머신이 꽤 마음에 든다. 이젠 우유 거품도 제법 멋지게 만들어 낸다. 라떼 아트로 하트를 만들려고 해보지만 오늘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라떼는 여전히 맛있으므로 괜찮다.
얼마 전에 Restoration Hardward에서 구입한 프렌치 스타일의 식탁에 앉아 라떼와 함께 아침 독서를 시작해본다. 오늘은 노벨상을 수상한 Daniel Kahneman 교수님의 Thinking fast and slow (국문: 생각에 관한 생각)을 원서로 읽어본다. 30분간의 아쉬운 아침 독서가 끝나면 이제 회사 셔틀을 타기 위해 15분간 운전해서 나간다. 가는 동안은 오디오 북을 듣는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미국 가족이 선물해준 오디오북 1년 회원권을 이용해서 이번 달에는 Luck factor를 듣고 있다. 오디오 북을 들으며 오늘은 또 어떤 도전을 해볼까 고민해본다. 하루하루 새로운 도전을 해보다 보면 더욱 멋진 내가 되지 않을까? 도로 오른쪽에 보이는 강물에 비친 북가주의 따뜻한 햇살과 함께 하는 출근길이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회사 셔틀 타는 곳에 도착하니 8시 55분이다. 5분 뒤에 오는 셔틀을 기다리며 회사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선다. 오늘은 용기 내어 같이 줄을 선 앞사람에게 내 소개를 해 본다. 벌써 다섯 번째 만나는 것 같은데 시간이 더 지나면 말 트기 더 어려울 것 같았다. 트위터에서 일한 지 3년이 된 네트워크 엔지니어란다. 잠시 담소를 나누다 버스에 오른다. 회사 셔틀에선 책상이 달린 자리에 앉아 13인치 맥북 프로를 꺼내 일을 시작해본다. 셔틀 와이파이가 조금 느리지만 잠깐 일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들을 나열한 뒤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을 꼽아서 그 일에 잠시 집중한다.
40분을 달려 9시 40분에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스크램블 에그, 수박, 파인애플을 접시에 담아 아침으로 먹고, 오피스에 내려가는 길에 시나몬 롤을 하나 집는다. 달달한 롤을 먹으며 잠시 일하다 보니 목이 말라서 부엌에 가본다. 블루베리 워터와 워터멜론 워터 중 고민하다 더 인기 있는 블루베리 워터 한 잔을 가지고서 자리로 돌아간다.
오후 12시. 오늘은 Pinterest에서 일하고 있는 예전 마이크로소프트의 동료가 오랜만에 나를 만나러 트위터에 들린다. 온라인으로 방문자 등록을 해주고 함께 회사 식당 중 하나로 향한다. 오늘 점심은 미디엄으로 적당히 구워진 스모키 향이 가득한 햄버거와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조개 수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이야기, 핀터레스트에서의 동료의 근황을 묻다 1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나와 같은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이제는 유망한 회사의 엔지니어 매니저가 되어 있어서 그 친구의 경험과 시각이 내 커리어를 계획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래층까지 바래다주고, 내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오후에 마실 커피를 만들러 부엌에 들러본다. 오늘은 Philz coffee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라떼를 만들어 본다. 우리 집보다 더 좋은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라떼 아트는 또 실패.
오후 1시 반. 오늘은 딥러닝 리딩 그룹이 있어서 30분간 딥 러닝 책의 챕터 8 (모델 최적화)을 복습하고 참석한다. 책에 나오는 이론과 트위터에서 사용하는 Torch의 실제 구현을 대조해서 설명해주고, 트위터 제품에는 딥 러닝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적용하는데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었는지 여러 발표자가 돌아가며 공유한다. 설명을 들으며 어떤 점이 광고 랭킹에도 쓰일만한 부분인지 노트에 정리해둔다. 수학이 많이 쓰이는 머신 러닝을 이해를 위해 여러 사람의 직관을 듣는 게 내게 많은 도움이 된다.
잠시 일에 집중하다 보니 오후 4시. 뭔가 출출한 것 같아서 식당으로 향한다. 요새 오후 간식으로 꽂혀 있는 건 야채/과일 건강 주스와 육포이다. 식당에 올라가면 Juice bar가 있어서 야채, 과일, 비타민, 음료 등이 종류별로 나열되어 있다. 즐겨먹는 조합은 케일, 시금치, 코코넛 워터, 사과, 배, 바나나, 단백질 파우더이다. 그릇에 담아서 식당 직원분께 드리면 갈아서 스무디를 만들어주신다. 한 잔 들고서 돌아오는 길에 요새 꽂혀 있는 육포를 작은 그릇에 담아 온다. 근래에 회사에 들어오는 육포 브랜드를 바꿨는데 True Jerky라고 두껍고 촉촉하고 매콤해서 좋다.
5시 20분, 퇴근하기 직전에 주말 동안 읽은 Mindset 책에 나오는 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이 트위터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것 같아서 혹시나 이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팀 동료들을 위해 1분짜리 요악, 5분짜리 요약, 그리고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이메일로 정리해본다.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려다, 나의 경험을 곁들이면 더 와 닿는 내용이 될 것 같아서 잠시 고민해본다. 아무래도 적절한 예시가 떠오르지 않아서 집에 가서 책을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기로 한다.
아침과 같은 리듬을 반복하며 6시 50분 집에 도착. 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이 있는 삶에 행복해한다. 저녁 10시. 우리 집 귀요미 토이 푸들을 산책시키러 아내와 손 꼭 잡고 집 앞 공원을 걷는다. 이제 북가주의 우기도 끝나고 따뜻한 봄 날씨가 시작되어 밤공기가 무척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