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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홉이든 HOPEDEN Nov 06. 2015

피로는 강물 따라 저 멀리

뉴질랜드 New Zealand, Waikan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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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hopedenkorea


우프란? 
WWOOF(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유기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금전적인 교환이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화교류와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회를 만드는 운동(프로그램)입니다.


(2014.12.27 - 2015.1.4)

와이카나에 타운에서 강을 따라 동쪽으로  6km쯤 달리자 네 번째 우핑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덤불에 가려져 지나칠  뻔하였다. 대문 안으로 길게 이어진 수풀 터널을 지나자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똑똑! 우프 호스트 로젤리아(Rozellia)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 한다. 


“어서 와요. 반가워요.”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참, 메시지 받았나요? 물탱크가 바닥나서 물을 못 써요. 먹을 물은 있지만 씻지도 못 하고 많이 불편할 건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뉴질랜드도 호주와 마찬가지로 지방에는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 집집마다 빗물로 물탱크를 채우는데 그 간 우핑지에서의 경험으로 물 절약은 생활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탱크가 바닥난 모양이다. 물 공급 회사도 휴가 중이라 다음 주는 되어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머물  수밖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한참 뒤 로젤리아는 저녁식사 준비가 되었다며 우리를 불렀다. 식탁에서는 '뉴질랜드식 초록 홍합 파스타’가 놓여 있었다. 이 나라 초록 홍합이 유명하다고 들었지만 드디어 먹어 보게  되는구나. 촉촉한 파스타 누들, 고소한 홍합살과 홍합에서 나온 주스 국물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매우 맛이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원래 요리사였다고 한다.  역시! 이곳에 있는 동안 매 끼니 훌륭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맛있는 식사 후의 이 포만감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첫 날 먹었던 홍합 파스타! 꿀맛!!


다음날 아침, 로젤리아는 숲 터널 길 건너에 있는 텃밭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텃밭의 흔적은 있었지만, 허리까지 자란 잡초들로 가득한 그 곳은 그저 풀밭 같았다. 1,300 평방미터(약 400평) 쯤 되는 넓은 땅이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이곳을 정리하고 개간하는 일이다. 작업용 장갑과 작업복을 착용한 우리를 보고 박수를 친다. 

우선 호미와 삽으로 잡초를 정리한 후 길을 내고 텃밭의 모양을 복원하였다. 그러고 나서, 옆 소나무 숲에서 솔잎을 가져 와서 길 위에 깔아 주었다. 텃밭 주변은 예초기를 사용하였다. 우리 밭이라 생각하고 매일 4~5시간 정성껏 다듬었는데, 다만 문제는 흘린 땀을 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삼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물 공급은 되지 않았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되겠어, 강으로  가자!"


다리 아래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던 골짜기를 기억한다. 인적도 드물고 여기서 2km도  되지 않는 거리다. 수영복, 세면 도구와 수건을 챙겨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옷을 훌러덩 벗고 강물로 들어갔다. 무릎까지 잠기는 정도의 깊이. 알몸으로 개울에서 놀던 어릴 적  그때가 떠올랐다. 

아, 시원하구나! 하루의 피로까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수돗물이 안 나와도 끄덕 없다. 


물이 나오지 않아 하루에 한 번은 이곳을 찾았다


오랜 만에 예초기를 휘두른 저니는 늦잠을 잔다. 군대 때 반년은 제초만 했을 정도로 예초기 작업은 자신 있다더니 무리한 모양이다. 아침 산책을  다녀온 스테이시는 뭔가 신나는 일이 있는 듯 저니가  일어나자마자 말을 건넨다.


“여보 양털 깎아 보고 싶다고 했죠?”
“그야 그렇지만 머 마음대로 되나..."
“아침에 산책하다가 옆집 양목장 주인을 만났는데요, 오늘 양털 깎는 날이래요. 구경 와도 좋다던걸요?”
“진짜? 우왕~ 어서 가보자"


마구간 같은 창고 안에서 3명의 남자가 한참 작업 중이었다. 두 사람은 양과 씨름하며 털을 깎고 있었고, 한 사람은 등급별로 양모를 나누어 분류하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품질이 좋아 보이는 몸통 부위는 압착기를 걸쳐 포대에 담긴다. 부드럽고 따듯하다. 머리, 배 부위는 따로 모아 두고, 오물이 많이 붙은 엉덩이와 다리 부위는 버린다.  


한 줄로 서서 이발을 기다리고 있는 양들. 저 큰 양은 몇 살이나 되었냐는 질문에, 양의 이빨을 한 번 보더니 유스(Youth), 2살 정도라고 한다. 성인 남자 덩치의 유스는 1년에 한 번 깎기 때문에 양질의 털을 얻는다고 한다. 영(Young)이라고 부르는 어린 양은 3-4개월 마다 깎는데 체중을 재어보고 판단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시원한 듯 얌전했지만 간혹 몸부림 치는 녀석들은 이발기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한 번 해보라고 이발기를 내미는 아저씨. 얼떨결에 양털깎이 체험을 하게 된 스테이시. 혹여나 양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발기를 밀어 본다. 양털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놀라운 경험을 선사해준 이웃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건물을 나왔다. 바깥에는 이발을 마친 녀석들이 모여 있다. 맨들 해진 모습이 영락없이 염소다. 소중한 털을 줘서 고마워.  


처음 양털을 깍아본 스테이시의 놀란 표정


한 해의 마지막 날. 로젤리아의 자녀 가족들도 하나 둘 모였다. 그들의 가족 함께 바비큐 파티도 하고 맥주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다가 그대로 지쳐 잠들어 버린 우리. 눈을 뜨니 새해가 밝았고, 이곳에서의 생활은 끝나가고 있었다. 남은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강을 찾았다. 맺했던 구슬땀은 우리의 피로와 함께 이  강물 따라 저 멀리 흘려 보냈다.


한참 멀칭 작업중인 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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