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심다. 지역을 살다.
출판사를 찾고 있습니다. 홉 재배기술과 한국농업,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저희와 결이 맞는 출판사를 만나 이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탈고를 한 상태이며, 일부 글을 브런치에 올릴 예정입니다. 출판을 원하시는 출판관계자분이 계신다면 연락주세요. 고맙습니다. - 홉이든 농부 김정원 드림 jowrney@jowrney.com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태어나서 죽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고교시절 펜팔과 주고받던 편지의 설렘, 수능시험 당일 터져버릴 것만 같던 심장의 콩닥거림, 서울로 상경하여 처음 지하철을 타던 때의 두려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식장을 들어가던 그 순간, 신혼부부 주택 전세금 대출을 받으러 간 은행에서 당했던 수모, 자전거 세계여행을 결심한 뒤 퇴사를 놓고 벌인 사장님과의 단판승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예기치 않은 죽음. 이 모든 삶의 이벤트는 결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 또한 마찬가지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 대체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하자.
2014년 10월. 우리 부부는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것은 귀농을 향한 준비이자 거액의 투자였다. 우리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계농장체험으로 각국의 농업을 둘러보는 것과 더불어 부부사이 호흡 맞추기의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농사짓는 부모님을 보자면 농작업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 잦았다. 의사조율의 과정이긴 한데 겉으로 봐서는 싸우는 것 같기만 할 뿐 아니라, 대충 합의를 보았다간 기량 차이로 인한 희생과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 손발을 맞춰보는 게 필요하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팀워크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3년이란 세월 동안 제법 괜찮은 준비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또 다른 목적은 실컷 놀기 위함이다. 어려서부터 보아 온 농부란 직업은 한가하게 쉴 겨를이 없다. 한겨울 농한기가 있지만 장기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한 번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멈출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후회 없이 놀아야 했다. 좋아하는 자전거로 간 데는 그런 이유였다.
계획했던 3년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2017년 11월. 기내식으로 나온 IPA맥주가 기폭제였다. 수제맥주가 인기라더니 기내식으로 서빙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면, 한국에서의 홉재배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그렇게 귀농과 동시에 우리의 홉역사는 시작되었고 '홉이든'이 탄생하였다. 참으로 대책 없는 모험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 중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홉 농업 황무지인 한국에서 홉 농사를 시작한 것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을 헤매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런 가운데 홉 재배 도서 <한국의 호프재배사>를 발견함으로써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구한말 시작된 한국의 홉 역사 이야기가 원동력이 되어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홉이 어려운 것은 같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숙명이고 우리는 언제나 시대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었다. 한국 농업은 지금까지 없었던 다른 차원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의 위기를 맞은 농촌에서 벼재배에 버금가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기계화가 가능한 작물로서 홉은 훌륭한 대안이 된다. 명망 있는 투자가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성공의 패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가치를 찾아내어 어떤 공식을 따라 하는 게 아닌 그저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홉과 농업분야 아니겠는가.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명맥이 끊겼던 홉 재배를 다시 이어가면서 분명 우리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홉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비록 우리 세대에 홉 정착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기록을 통해 그간의 시행착오를 남겨두어야겠다고 우리는 합의하였다.
누군가가 움직이면 세상은 변한다. 이 한 걸음에 누군가가 바뀐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남긴다.
2023년을 맞으면서
(주)홉이든 농업회사법인 대표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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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장소영 Stacey Jang
단국대학교 영어영문과를 거쳐 의식주 무역업계에서 15년간 일하면서 해외경험이 많은 아웃소싱 전문가이다. 3년간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35개국 15개의 농장체험을 하고, 고향인 경북 의성에 2018년에 귀농하였다. 현재는 종자관리사로 한국에서 사라진 맥주의 꽃인 홉을 재배하고 홉 종자를 보급하면서 한국의 미래농업과 농촌과 시골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SNS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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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
김정원 Jowrney Kim
유한대학교 산업일본어과 졸업. 전공과 무관하게 만화가를 꿈꾸며 서울로 무작정 상경. 알바로 접하게 된 웹디자인을 시작으로 IT업계에서 디자인, 코딩을 하며 20년을 보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이 기점이 되어 아내 Stacey에게 세계여행과 귀농을 제안했다. 현재는 홉 농사를 지으며,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알콩달콩 농사를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