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홉이든 HOPEDEN Mar 11. 2023

홉이든 탄생

희망을 심다. 지역을 살다.

출판사를 찾고 있습니다. 홉 재배기술과 한국농업,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저희와 결이 맞는 출판사를 만나 이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탈고를 한 상태이며, 일부 글을 브런치에 올릴 예정입니다. 출판을 원하시는 출판관계자분이 계신다면 연락 주세요. 고맙습니다. - 홉이든 농부 김정원 드림 jowrney@jowrney.com



왜 홉을 선택했을까

시작은 단순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맥주 주재료는 맥주보리와 홉이었다. 트랙터와 콤바인이 있었기 때문에 기계화가 되는 맥주보리의 생산은 언제든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홉은 정보도 재배하는 이도 없었기에 도전하기에 좋다는 판단을 했다. 어차피 우리는 어떤 작물을 해도 농사라는 것을 처음 해보기 때문에 어려울 것도 한 몫했다. 


한국 농업을 보면 지역마다 작물을 특정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며 지역 특산물로 만들었는데, 현재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경북 의성 하면 '마늘'을 떠올리지만 예전엔 사과 재배가 훨씬 많았던 곳이다. 하지만 흔히 농부들은 돈 되는 작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재배가 가능하면 시도해 본다. 블루베리, 아로니아, 최근엔 사과대추, 샤인머스켓이 그렇다. 이른바 유행을 좇아 작물을 선택하고 재배한다. 대부분의 농가는 영세한 탓도 있다. 최소 공간에서 최대 수익을 올리는 일은 항상 한국 농민의 관심거리다. 


그건 우리 부모님도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세계여행중일 때 '사과대추'로 작물 전환을 하셨다. 그 당시 유행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귀농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에 대한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고 했다. 귀농을 하면서 애초에 5년 정도 부모님의 관행농법에 토를 달지 않고 배우기로 했지만, 실제로 함께 농작업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부딪히는 경험을 했다.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 안 되는 상황들이 있다. 하지만 홉은 달랐다. 그들도 모르는 작물이었기에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수 없었던 것. 아마 우리처럼 고향으로 귀향해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는 분이라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농사를 지을 때의 그 해방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홉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들의 우리의 스승이며 최고의 파트너임은 분명하다.


“홉?! 그게 뭐로?” 

“넝쿨과 다년생 식물인데요, 다 자라면 6미터도 넘어요. 대롱대롱 달리는 꽃을 수확하는 거고요. ‘루풀린’이라 불려지는 노란 꽃가루가 맥주의 쌉쌀한 맛과 향긋한 풍미를 내는 성분이에요.” 


작물을 홉으로 정하기에 앞서 전문 농부이신 부모님께 상의를 드려야 했다. 사진과 영상을 곁들여 열 올려 가며 소개해 보지만 부모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난생처음 들어본 농작물인 데다 판로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말씀을 끝낼 분들이 아니시다. 남들 하지 않는 작물을 해야 한다며 일단 새로운 작물을 반기셨고, 더 나아가 실무를 거론하시는 게 아닌가. 


“6미터나 자라는 거라면 지주대를 튼튼하게 잘해놔야 할 낀데… 종근 파는 사람은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이라 카드나” 


새로운 작물에 대한 관심은 지칠 줄 몰랐고 마침내 봄이 오면 시험생산을 해 보자며 이야기를 마쳤다. 우리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잘 맞길 기도하면서 한 걸음걸음 내딛는다.



홉 농장 견학

부모님과 협의는 끝났지만 아직 홉 농사를 시작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혹시 한국에도 홉 재배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많지는 않지만 몇 군데 홉 재배를 위한 도전하는 곳이 있었다. 앞뒤 따져볼 것 없다. 무작정 연락을 하고 방문 약속을 잡아야 했다. 연락처를 얻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마저 어떤 곳은 심하게 방어적인 자세를 보여 가고 싶은 맘이 없어질 정도였다. 우리 같이 귀찮게 하는 사람이 적잖이 있었나 보다.  


어렵게 두 군데의 홉 농가를 찾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두 5년 이상된 어엿한 농부로 국내에 어렵게 홉을 정착시킨 공로자였다. 이야기마다 그간의 고군분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홉은 6미터 이상 자라는 덩굴 식물이기에 지주대 설치가 필수다. 목재 구하기가 어려워 고민 끝에 건축용 쇠파이프를 설치했는데 몇 해 안 가 휘어 버렸다는 사연, 모두가 종근 수입에 매달릴 때 씨앗을 구해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결국 발아에 성공했다는 얘기, 지방 사회에 섞여 들어가기 위해 겪었던 고초 등. 짧은 만남에 그간의 시행착오와 소중한 경험담을 스스럼없이 들려주시어 무척 감사하였다. 초보 농군에게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홉 농장 견학을 통해 우리만의 강점을 재발견했다. 농업 경험 전혀 없이 어렵게 시작한 홉 농부에 비하자면 우리는 좋은 상황이었다. 바로 반 세기 넘도록 농사 하나만을 해오신 부모님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물론 홉을 직접 들여오거나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한 영어 능과 해외 현지 경험이 필요하다. 그 부분은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근접 가능하다 본다면, 농사 장인 두 분은 초보 홉 농군에게 천군만마 그 이상이다. 게다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시지 않는 분들이다. 우리의 역할은 연세 드신 부모님을 돕고, 한평생 다져오신 농업 노하우를 이어받아, 배우고 익히는 일. 그리고 세대 간의 간극을 이해하고 조율해 가며 가족과 농업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겠다.



홉밭 준비하기

농장 견학도 하고 홉 농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시작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한단 말인가. 어떤 방법으로 시설을 만들고 종자는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언제 심고 언제 수확하는 걸까? 홉의 질병과 병충해는 어떤 것이 있지? 관수 시설은 어떻게 하지? 공부를 해야 하는 수밖에. 인터넷을 뒤지니 외국 서적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저 없이 주문하고 일주일 뒤에 책을 받았다.


 4권의 책 중 2권은 꽤 쓸만했다. 홉 농부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정보가 다 들어 있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한국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있지만 뭔가 한발 나아가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나도 홉 농업에 대한 책을 쓸 날일 기대해 본다.


먼저 시험재배로 100주 정도 선에서 진행해 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다행히 홉 종근을 파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종자를 파는 것도 허가 필요한 일을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매년 3월에 홉 종근을 분양한다고 하니 예약을 해 두었다. 종자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지주 설계에 들어가기로 했다.


몇몇 홉 농가를 둘러보았지만 지주대에 대한 고민은 깊어만 갔다. 왜냐하면 농가별로 방법이 제 각기 달랐기 때문. 방부목 두 개를 이어 놓은 곳, 전신주를 세워 놓은 곳, 직경 넓은 건축용 쇠파이프나, 파이프 하단에 콘크리트를 추가로 시공해서 세운 곳.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 두고 고민했다. 먼저 자재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버지께서 거래하는 농자재 철강업체를 방문해 견적을 내보았다. 방부목이나 전봇대는 일반적으로 구하기는 힘들었고 설령 찾았다고 해도 가격 부담이 클 것 같았다. 쇠파이프가 현실적인데 햇수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는 홉 덩굴의 하중에 휘어질 열려가 있고 강풍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시멘트 시공된 파이프는 주문제작을 해야 했고 가격도 부담되었다. 결국 원형 파이프 대신 사각관으로 결정하고, 자재를 덧대 상부를 잇는 구조로 부실한 하부를 보강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설계도를 그렸다. 드론으로 홉을 심을 밭을 촬영하고 가 실측을 하여 파이프와 간격을 조율했다. 텔레비전에 설계도를 띄워 놓고 부모님과 열띤 토론의 시간도 가졌다. 여러 번 수정을 거치면서도 부모님과 머리를 맞대 조율해 가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씨앗으로 싹틔우기

생각지도 않던 씨앗 발아를 하게 된 건 어느 홉 농부의 말씀 때문이었다. 종자 발아로 자란 것은 종근에 비할 바 아니라며 적극 권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홉은 싹틔우기가 매우 어렵다. 어렵다고 하니 더욱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게다가 발아 경험이 많으신 어머니께서 자신감을 내비치신다. 한번 해 보자며 씨앗이나 얼른 구해 오라신다. 해외 유명 사이트를 통해 홉 씨앗을 주문했다. 까다로울 것만 같던 수입 절차는 홉 농사 선배님들의 과거 검역 이력이 있어서 우리는 비교적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제일 처음 도착한 홍 씨는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3종으로 5개씩 들어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외마디가 나왔다. 어쩌란 말인가 텃밭에 심을 것인가. 난 진지하게 홉 농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허탈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발아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량도 넉넉지 않았고 춘화처리로 4~6주를 하기엔 마음이 급했다. 침종 처리 하루하고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때가 3월 중순. 이들을 A그룹으로 지정했다.  


두 번째 도착한 것도 홉씨도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1종으로 200개였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실험을 할 수 있지.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좀 넉넉하였기에 그룹을 두 개로 나누어 한 그룹(B-1)은 침종을 하고 한 그룹(B-2)은 휴면타파를 시도하였다. 침종은 이틀간 두었다가 3월 하순에 파종하고 휴면타파한 것은 4주 뒤인 4월 하순에 파종하였다. 이들을 B그룹으로 지정했다.  


세 번째 어렵게 구한 홉씨는 일본에서 온 것으로 7종 350개였다. 이들은 모두 휴면타파 4주간 처리한 뒤 모종 포트에 옮겼다. 이때가 4월 말이었다. 이들을 C그룹으로 지정했다.  이제 하늘에 맞기는 일만 남았다. 마침 종자 판매 안내문구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 


"발아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초보 농부의 발아 성공률이 90%인 경우도 있고 경력 30년 농부의 발아 성공률이 10%인 경우가 있는 것도 자주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종자는 발아 난이도 별 다섯 개."




홉 세상 밖으로

겨울에 구매 계약해 둔 종근이 봄이 되자 배송되었다. 그런데, 설치를 마치지 못한 지주대에 문제가 생겼다. 사나흘 간 이어진 봄비가 화근이었다. 1미터 깊이로 파묻은 사각관 파이프는 구덩이 주위가 물러져 몽땅 쓰러져 버린 것. 누구는 울상이었고 누구는 웃었다. 앞으로 몇 번이고 넘어야 할 시련 가운데 하나였고, 반복되는 시행착오에서 배움을 얻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괜찮아, 파이팅!  


비가 그치자 바람이 세다. 금세 땅이 말랐다. 서둘러 지주대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쓰러진 지주대는 상부가 이어진 구조라 일으켜 세우는 일은 예상보다 수월하였고 마무리 작업도 순조로웠다.  급한 대로 부모님 애호박 농사에 쓰고 남은 끈을 유인줄로 매달고, 뽀얀 보랏빛 싹이 나기 시작한 종근을 정성껏 파묻었다. 3주가 지나고 4월 말. 짚풀 사이로 빼꼼히 초록빛 아기 잎이 돋았다. 한 뼘 남짓한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6미터나 자란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첫 해엔 외형보다는 그저 튼튼하고 건강하게만 뿌리내려주길 기도할 뿐. 무척 궁금하긴 하다. 열매가 달리긴 하는 걸까?  


얼마 후 씨앗 발아도 진전이 있었다. 그룹 A의 세 가지 품종 모두 새순이 하나씩 나왔다. 그토록 어렵다는 발아를 단번에 성공하다니 너무 기뻤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장 늦게 심은 그룹 C에서도 새순이 나왔는데 고작 한 품종뿐이고 1주일 만에 발아에 성공했을 뿐 나머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리고 B그룹은 지금(7월)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 어렵다는 씨앗 발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 발아율은 약 3%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이라 준비도 미흡했고, 시작이 늦은 것도 원인이겠다. 정성과 지식을 더해 내년엔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새순이 나온 뿌리 주변에 거름을 뿌려 주고 스무날이 지났다. 1미터를 훌쩍 자란 덩굴은 땅바닥에 누워 기어오를 동아줄을 찾아 촉수를 뻗고 있었다. 고정핀도 아직 준비 못했는데 성장이 빠르다. 하는 수 없이, 급한 대로 지주대에서 내린 유인선 끝을 고추 작대기를 써서 땅에 박아 넣었다. 쑤욱 찔러 들어가는 것이 땅이 촉촉한 모양이다. 한동안 물은 안 줘도 되겠군. 고정된 유인선에 넝쿨을 감을 땐 법칙이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북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감아 주어야 한다. 남반구의 넝쿨식물은 반시계 방향으로 감아 올라간다.  에콰도르 적도지역에서 경험한 자연현상을 홉 농사에서 재발견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구나. 유인선에 감긴 홉은 훨씬 편안해 보였다. 첫해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쑥쑥 자라거라.



농업인 자격 갖추기

2018년 1월 초. 귀농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이 몇 가지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해당 면사무소를 찾아 전입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위장전입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면사무소에서는 이장에게 연락하여 확인을 거친다. 전화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시골 생활의 예의가 아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이장님을 뵈러 갔는데 다 알아요 하는 얼굴이었다.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전해 들은 듯하다. 얼마 후, 농업경영체 등록을 할 때에 이장님의 도장이 필요해 또 한 번 뵈었는데,  귀농귀촌에 있어 그리고 지역사회에 이장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중요하단 걸 알 수 있었다. 


귀농 귀촌에 있어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이장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중요하단 걸 알 수 있었다.  귀농 지원 정책에 대한 상세 내용을 듣기 위해 의성군 농업 기술 센터를 찾았다. 담당 직원의 응대는 대체로 충실하였다. 가장 궁금했던 주택 및 사업 자금 신청 절차는 나중에 직접 해 봐야 감이 올 것 같다. 나눠 준 홍보물은 귀농 정책뿐 아니라, 우리 지역의 일반 현황, 귀농 귀촌 현황, 농산물 재배현황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귀농인 커뮤니티 연락처도 받아두었으니 언젠가 문을 두드려 보도록 하자.



홉 꽃이 피다

유인선을 따라 감은 덩굴이 4미터 정도 되었을 때 희한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줄기 상단 부분을 부풀리기 시작하더니 며칠 뒤 이파리 아래 노란 꽃을 피워냈다. 홉꽃은 이쁘지 않다. 농사일 마치고 기절하듯 잠들고 난 다음날 거울에 비친 내 머리와 같다.  보름이 또 가고 노란 꽃은 연둣빛 구화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대부분 5미터 정도로 자란 덩굴은 더는 자라지 않고 부피를 불려 가고 있었다. 양팔 벌린 가지 아래로 달랑달랑 구화를 매달았다. 첫 해에도 이렇게 자라면 뿌리가 되려 약해지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면서도 점점 풍성해지는 구화를 보니 기분이 무척 좋다. 이쯤이면 수확도 기대해 볼 만하다. 먼저 꽃을 터트린 품종은 윌라맷이었지만, 출발은 늦었어도 소출이 좋은 쪽은 캐스케이드였다.




태풍이 온다

장마철에 들었다. 비가 충분히 오는 건 좋았는데 난데없이 7월에 태풍이라니. 그것도 우리 지역을 관통할 것이라 기상청은 예보했다. 홉 농부에게 바람은 두렵다. 5미터가 훌쩍 넘은 덩굴이 유인선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당장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어머니의 지도하에, 지상 1.5미터 지점에 수평으로 줄을 쳐주고 끈으로 덩굴을 묶어 줄에 고정시켰다.  그 정도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줄기가 서로 엉키거나 뿌리 쪽이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걱정, 바람이 너무 세도 걱정. 농부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은 최대한 하되,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며칠 새 비는 많이 내렸지만 태풍의 경로는 동해 쪽으로 더욱 치우쳐 빠져나갔다. 우리 지역은 무사했지만 전라도 지방엔 폭우에 농경지 침수 피해가 크다고 하는데 부디 큰 피해 없길 빈다. 전라도의 어느 선배 홉 농부가 걱정되는 날이다.




외국친구와 함께 일하기

 우리 농장엔 다양한 외국 친구들이 찾아온다. 카우치서핑, 웜 샤워스, 우프, 워크어웨이. 다양한 플랫폼이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집 떠나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몸과 마음을 편히 둘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3년 간 우리가 경험한 감사함을 다른 여행자와 나누고 실천하는 마음에서 홉이든 은 호스팅을 하고 있다. 호스팅의 좋은 점은 3가지로 요약된다.  


농사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농번기라면 더욱 그렇다.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이 된다. 외국 친구는 새로운 문화와 영감을 주며 이는 지방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작은 시골마을이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귀농을 하고 정착했지만 늘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여행담과 삶의 이야기가 우리를 가슴 뛰게 만들고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동안 폴란드, 영국, 브라질,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우리 농장을 다녀갔다. 호스트를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외국 여행자들이 한국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시작하는 해라 많은 것이 미흡하다. 조금씩 준비를 갖추어 나가면 더욱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제 맥주 양조장을 찾다

홉은 우리 부부가 제안한 신규 아이템이고, 부모님의 주력품목은 사과대추와 애호박이다. 그리고 수십 년간 통상적으로 해 오시던 작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벼는 당연하고 마늘, 고추, 양파, 깨, 오이, 가지, 토마토, 온갖 나물에, 옥수수, 콩만 해도 네 가지. 과일도 있다. 수박, 참외, 매실, 살구, 자두, 복숭아, 사과, 배. 올해는 기력이 달려서 감자와 고구마는 안 하셨단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건강 먹거리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귀농을 한 우리. 부모님 하시는 일을 도우며 배우는 것임은 분명한데 일이 끊일 날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주력은 홉이기에 농번기를 피해 틈틈이 수제 맥주 양조장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처음 가게 된 곳은 부산에 있는 양조장으로, 세계 여행 중 만난 ‘그녀’와의 인연이 낳은 결과다. ‘맥주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자전거 여행을 하던 그녀를 만난 건 2016년 여름이었다. 이미 유럽의 많은 맥주 양조장을 다녔고 이번엔 미국 여행에서 우리와 인연이 닿았다. 맥주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린 그녀를 통해 맥주뿐만 아니라 맥주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맥주를 사랑하는 그녀가 지금 수제 맥주 양조장에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뻤다.  


부산 송정에 위치한 와일드웨이브양조장에서 그녀의 책 ‘두 바퀴로 그리는 맥주 일기’ 출판기념 파티가 있었다. 마케팅 매니저답다.  책 후반부에 우리 이야기도 실었단다. 각자 한 권씩 구입하고 사인을 받았다. 여행 때나 일할 때나 늘 열정적인 그녀가 좋다. 지인 덕으로 대표와 양조사도 소개받고 W양조장만의 특색 있는 사우어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앞으로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  부산의 또 다른 양조장은 광안리 해변에서 유명한 고릴라브루잉. 영국인이 설립한 곳으로 홉밭을 가지고 있다 하여 더욱 관심이 갔다. 풍부한 홉향과 쌉쌀한 맛이 살아 있는 IPA로 그들이 대표하는 맥주이다. 그들의 홉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생홉으로 만든 계절 맥주는 어떤 맛일까. 국내에 양조장과 홉 농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은 불과 3곳(2018년 기준) 뿐인데 무척 궁금하다. 미리 약속을 잡고 갔기에 운영진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나중에 그들 농장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수확철에 다시 만나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곳이다.  그 외에 남양주, 안동, 문경을 다녔으나 이야깃거리는 아직 부족하다. 한 해 두 해 앞으로 홉 향 솔솔 풍기는 고품질의 소규모 양조장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불확실한 미래


"홉 농사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판로가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확실한 판로는 있지만, 한국은 홉 농산업 전반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는 것이 옳겠다. 한편으로 국내엔 아직 재배 농가가 많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수제 맥주 시장의 급격한 성장 추세로 시장성이 있어 보이지만 국산 홉의 수요 전망은 미궁 속이다. 제조사들은 수입산을 선호한다. 미국, 호주, 독일 등에서 들여오는 수입산에 비해 아직 국산 홉은 품질 검증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양조장이 만들어가는 마니아 층을 타깃으로 하는 독특한 수제 맥주 문화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그렇기에 생협을 이용한 계절 맥주에 대한 실험과 요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200 종이 넘는 품종과 400여 가지의 성분이 어떻게 특유의 향과 맛을 내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작물이다. 멜라토닌과 유사하게 홉 성분 중에는 졸음이나 수면유도를 위한 진정 효과가 있으며, 샛노란 꽃가루 루풀린에는 천연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맥주 시장뿐만 아니라, 앞으로 의학, 미용, 식품 분야에도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농업은 단시간에 답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하물며 생소한 작물을 이제 알아가기 시작한 우리에게 미래가 불확실한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홉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올 첫해는 건강한 홉을 재배하고 튼튼한 뿌리를 얻는 것이 목표다. 소량 수확하게 된다면 직접 재배한 생홉을 넣은 맥주를 즐기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홉이든 탄생

우리는 이름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편이다. 우리의 정체정, 즉 존재의 이유의 시작이며 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쉽고 편하고 기억하기 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외쳤다. 그럼 우린 '홉이든'으로 하자!  문득 동생이 숲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숲이든'이었다. 


홉이든이 탄생한 이유는 홉을 통해 한국농업의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맥주가 유명한 독일, 벨기에, 영국, 덴마크와 같은 유럽국가와 수제맥주가 급부상한 미국. 특히 미국과 독일은 전 세계 홉 생산량의 90%를 차지할까. 이른바 농업 선진국인 그들이 홉 재배를 한다는 것은 농업의 미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한때 한국도 당당히 홉 생산국이었지만 열악한 한국 농업 현실은 홉을 외면했다. 홉이든의 탄생은 농부 주도로 신작물을 발굴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국산 홉 부활시켜 역사를 이어가고, 도시와 농촌을 잇고 그 간극을 줄이며, 선진 농업을 찾고 배우고 연구하여 한국농업의 미래를 제시하는 일을 하는 데 의미가 있다. 


홉이든의 철학.

오늘을 심고, 내일을 열다.


홉이든의 핵심가치.

-지역사회의 발전과 문화교류에 힘씁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아직 남아있는 소중한 우리의 자산을 발굴하고 알립니다. 

-2개를 가지기보다 3개를 나누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합니다. 

-저희가 먹고 마시는 최상의 기쁨을 고민합니다. 

-품질은 타협하지 않고 최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세대 간의 디딤돌 역할을 해냅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버리지 않습니다. 

-혼자 빠르게 가기보다 함께 느리게 가길 원합니다.



//// 각주 /////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현지인들이 여행자를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내어주는 의미로 무료 숙박 혹은 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무료로 운영되다 보니 간혹 도난, 마약 등 범죄가 있는 경우가 있으나 극히 일부의 잡음이다. 리뷰를 꼼꼼히 읽고 판단하면 많은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채널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피곤해서 이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웜샤워스(Warmshowers)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채널. 대부분 자전거 여행 경험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호스트를 하기 때문에 공통된 주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땀범벅이 된 자전거 여행자에게 따뜻한 샤워는 최고의 기쁨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이용했던 서비스이며 현재 한국에서 호스트로 등록되어 있어 많은 여행자를 만나고 있다.


우프(WWOOF)

유기농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란 의미로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이다. 장기여행과 농업에 집중되어 있어 관심사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좋다. 개인적으로 세계여행 중 가장 많이 이용한 서비스이지만, 나라마다 등록비를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한국에서 우프 호스트를 등록하려 했지만 호스트조차도 등록비용을 지불(미화 100불/년) 해야 해서 포기했다. 비용보다 우리가 알던 우프의 철학과는 좀 다르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워크어웨이(Workaway) 

여행자가 현지에서 일을 하며 장기가 체류할 수 있는 채널. 호스트는 호스텔, 농장, 가정집, 학교 등으로 요리, 청소, 아기 보기, 동물보기, 집짓기, 컴퓨터, 음악, 예술 작업등 다양하다. 하루 4-5시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은 우프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워크어웨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농장에 큰 도움이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농장체험 세계일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