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수상록
변화를 다루기 시작하다.
새로움에 설레지 않고 익숙한 것에 지루해하지 않는다. 무엇이 정말 좋아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끌리는, 소위 말해 '꽂히는' 대상도 없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거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냉정한 기준도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누그러졌음이 확실하다.
그 와중에 도처의 소음과 혼란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시끌벅적한 스타벅스 대신 여유로운 분위기의 공유오피스를, 한국인 가득한 일본여행 대신 사람들이 일절 없을 한적한 평일의 남해 바닷가를, 주말엔 힙스러운 성수동이나 홍대 대신 비교적 한적한 개화산을 찾았다.
동시에 애매모호하고 문제 해결의 기세가 없는, 불만이 가득한 기운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럴 바엔 아직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모자라지만 착한 챗지피티와 거대 담론을 주고받으며 지혜의 조각퍼즐들을 모아보는 편이 나았다.
새 책을 집필하는 동안 잠시 소홀히 했던,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읽고 싶었던 책들을 곁에 두고 문제를 재정의한다. 일부러 문제를 만들지 않아도 자신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는 해결해보고 싶은 문제들이 있다.
어떤 현상과 기운에 있어 자신의 감정이 불편하다면, 불편함의 원인을 거슬러보았을 때는 두 가지다. 실은 해결할 문제조차 아닌데 단순히 감정이 그렇게 느껴졌다거나, 혹은 어떤 인과관계로, 또는 어떤 구조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음이 탐지된다거나.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은 부분과 가깝다면 공부하고 분석해 보며 필요한 실행계획을 짜고 적용한 후,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확인해 보는 과정은 도움이 꽤 될 것 같다.
삶을 게임처럼 대하게 됐다. 삶에서의 어떤 시기와 상황들은 마치 게임 내 스테이지(stage)와도 같지 않을까.
각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한 목표가 있다. 자가를 마련하고 싶은 어느 30대 직장인은 자가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 주택정책, 투자, 자산관리, 노후플랜 등 복합적인 전술을 활용할 것이고, 새 책을 출간하여 그 책이 잘 팔리고 본인도 유명해지고 싶은 무명의 작가는 요즘 잘 팔리는 책들의 주제는 무엇인지, 내 아이템(소재)은 무엇이 있는지, 디자인은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의 전술을 활용하여 목표를 향해 다가간다.
이젠 전술을 세울 지식이 없어도 AI가 비슷하게 기본적인 형태를 잡아주기도 한다. 텅 빈 화면에 달랑 홀로 띄워진 프롬프트창에 치트키를 치듯 본인의 생각을 두드려보면 된다. 글쓰기 재주가 영 없더라도, 다시 말해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요즘의 AI들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원하는 답에 가까운 결과를 제공한다.
스스로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고 되뇌면 자신을 객체화하게 된다. 삶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도래하는 스트레스가 반감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감정은 쉽사리 어떤 결과를 바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지연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감정은 어떤 스테이지가 성공리에 잘 마무리되면 그때 자기 효능감으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하지만 자신의 성능에 따라—듀얼코어이냐 쿼드코어이냐 그 이상이냐—멀티를 하다가 다운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은 해야 한다. 과부하로 인한 셧다운은 어찌 보면 가장 큰 위험요소다.
한 번에 많은 것을 돌리려다가, 그리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토픽에 관심을 두다가 자칫 그르친다. 연식이 늘어가며 회복속도가 더뎌지는 부분도 감안해서. 한 순간 잃은 건강(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을 꺼놓는 시간들을 확보한다. 잠은 가급적 7시간을 채워보고, 주말 중 하루는 개인정비에 힘쓴다. 즉흥적인 인풋에는 항상 개방되어 있으나 한계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한다.
회사와 사회에 나가있는 시간 동안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적으니 가벼운 산책이나 조깅으로 백지를 확보한다. 알코올의 쾌락을 레버리지하여 늦은 밤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도 좋고, 위스키 한 잔을 입 안에 머금고 아주 천천히, 한 방울씩 목을 타고 흘려보내도 좋다.
꺼놓는 시간과 별개로 우리는 모두 지구별에 최적화된 생을 사는 개체로서, 계절에 따라 시간대는 다르지만 매일 일정 시간 이상 햇빛을 맞는다. 절기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태양의 각도와 강도를, 매일 달라지는 작은 습도와 바람의 변화를, 산과 흙과 물과 꽃이 풍기는 향을 느껴본다.
햇빛은 내가 스스로를 쉽게 켜고 끄게 하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유한함을 자각한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어떤 가수의 노래는 틀리지 않다. 그건 아마 현재에 대한 냉소나 방관이 아닌, 희소가치와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회를 짚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과하지 않을 정도의 나와 주변의 존재에 대한 항시적인 감사함, 파고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적인 호기심과 행동력, 그리고 높은 타율을 위한 꾸준한 연구와 수련을, 내년에도 또 잘 갖추고, 기어이 나는 무엇이든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