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단조의 월요일

뮤직홀 '베토벤하우스'에서

by 심온 Simon

연말의 어느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이었다. 아침부터 인천공항 너머 외딴 들판까지 차를 몰았다. 서두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긋하지도 않았다. 모처럼의 여유라는 것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산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가끔은 누군가 짜놓은 공간에 몸을 툭 놓아두는 편이 낫다. 뮤직홀은 그런 용도에 적합한 장소 중 하나다.


홀에 들어서면 일단 공간감에 젖는다. 사람 몸체만 한 스피커가 양쪽에 서 있다. 가까이 가면 오래된 먼지와 따뜻하게 달궈진 진공관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 그 덩어리에서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첼로가 예리하게 선율을 타다가 멈칫하고, 이내 다른 현들이 뛰어들어 묵직하게 서사를 진행시킨다. 콘크리트 벽이 음파를 받아 되돌려준다. 푹신한 가죽 소파에 몸을 묻으면 그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죽은 체온을 머금어 천천히 부드러워진다.


그날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 작품번호 104번이 연주되고 있었다. 작곡가가 미국에서 고향 보헤미아를 그리며 쓴 곡이라고 한다. B단조. 조성에 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장조의 눈부심도 단조의 눅눅함도 아닌 어떤 중간 지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체념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고, 그냥 힘을 뺀 상태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에 어울리는 조성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일 거다.


그런 종류의 그리움은 잘 모른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다는 감각 자체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첼로가 깊이 우려내는 선율이 홀을 가득 메울 때에도, 감정이입보다는 관찰에 가까운 자세가 된다. 저 소리가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판단하지 않고, 그저 음파의 굴곡으로만 듣는 것. 그편이 자연스럽다.


브라운 톤의 소파 쿠션들이 괜히 첼로의 음색과 어울리는 듯했다. 맨 뒷자리 옆으로 작고 길쭉한 창이 나 있었다. 폭이 손바닥 두 개 정도. 그 틈으로 겨울의 찬 햇살이 슬며시 홀 안으로 스며들었다. 햇살은 허벅지 위까지 와서 멈췄다. 따스함이라기보다 밝음에 가까웠다. 산미가 딱 알맞은 커피가 유일한 단짝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협주곡과 햇살과 커피. 세 가지만이 공간을 채웠다. 거의 텅 빈 객석은 오히려 마음을 평온으로 메웠다. 약 40분에 걸친 협주곡 동안 서사는 단절 없이 흘러갔다. 곡이 휙휙 바뀌지 않아 좋았다. 진득하게 하나에 오래 머무는 것.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귀한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강제로 짜인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주가 끝났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감동도, 허무도 아닌 어떤 평평한 상태. 그것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자극적인 웅장함이 아닌 감각적인 웅장함은 이토록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어쩌면 무언가를 느끼러 온 게 아니었다.